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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삭 망한 줄 알았는데”… 복간 10일 만에 10만부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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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삭 망한 줄 알았는데”… 복간 10일 만에 10만부 ‘기적’

입력
2019.01.21 17:48
수정
2019.01.21 19:23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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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절판 ‘내 어머니 이야기’, 김영하 추천 등 힘입어 베스트셀러 역주행

‘내 어머니 이야기’의 저자 김은성 작가와 어머니 이복동녀씨. 2014년에 찍은 모습이다. 올해 92세가 된 어머니는 건강이 쇠약해지셔서 거동이 어렵다. 애니북스 제공.
‘내 어머니 이야기’의 저자 김은성 작가와 어머니 이복동녀씨. 2014년에 찍은 모습이다. 올해 92세가 된 어머니는 건강이 쇠약해지셔서 거동이 어렵다. 애니북스 제공.

2014년 절판됐다. 독자들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영영 잊힐 뻔했다. 지난 연말 드라마틱한 반전을 맞았다. 유명 소설가 김영하가 한 TV프로그램에서 “세상에 사라져서는 안 되는 책”이라고 극찬하면서 재출간이라는 꿈 같은 일이 벌어졌다. 기적은 이어졌다. 지난 11일 복간 이후 온ㆍ오프라인 주요 서점에서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다. 절판 5년 만에 베스트셀러 순위 역주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만화책 ‘내 어머니 이야기’에게 최근 연속적으로 벌어진 일들이다. 출판사 애니북스 관계자는 “10만부(2만 5,000 세트)를 찍어둔 상태다”며 “만화책으로는 매우 이례적인 판매량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내 어머니 이야기’는 저자 김은성(54) 작가의 어머니인 이복동녀씨의 굴곡진 개인사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돌아본다. 1927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이씨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격동의 역사를 거쳤다. 책엔 평범한 여성의 평범하지 않는 삶이 애잔하게 녹아있다.

책은 한 집, 한 방에서 함께 지내온 모녀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어머니가 맛깔 나게 이야기를 시작하면, 딸이 부리나케 녹취하고, 객관적 자료까지 나름 살피는 ‘고증’ 작업을 거쳐 만들어졌다. 꼬박 10년 간 공들여 4권을 완성해 세상에 선보였으나 알아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사정이 어려워진 출판사(새만화책)는 더는 제작이 곤란하다며 판권까지 저자에게 돌려줬다. 하지만 저자는 “언젠가 독자들이 다시 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삶이 전해주는 ‘진짜 이야기’의 힘을 믿어서였다.

‘내 어머니 이야기’ 저자 김은성 작가의 어머니 이복동녀씨의 고향은 함경남도 북청의 산골마을이다. 6•25 전쟁 통에 어머니와 생이별을 했다. 그 서러움과 그리움은 60년이 지나도 가시질 않는다. 애니북스 제공.
‘내 어머니 이야기’ 저자 김은성 작가의 어머니 이복동녀씨의 고향은 함경남도 북청의 산골마을이다. 6•25 전쟁 통에 어머니와 생이별을 했다. 그 서러움과 그리움은 60년이 지나도 가시질 않는다. 애니북스 제공.

김영하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하나 진심이 통했다. 방송 다음날 여러 출판사에서 재출간 제의가 빗발쳤다. 책이 그냥 폭삭 망한 줄로만 알고 있었던 어머니가 가장 기뻐했다. “속상해 하실 까봐, 절판 됐다는 얘기도 안 했거든요. 방송에도 나오고, 책도 많이 팔린다고 하니까 많이 좋아하시죠.” ‘국보급 기억력’을 자랑하던 어머니도 올해로 92세다. 인지기능이 많이 떨어졌지만, 책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기운을 차리신다. 함경도 사투리를 입말대로 잘 살렸는지, 뜻은 맞는지 직접 감수에도 나섰다. 저자는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책이 다시 나와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시대의 아픔이 곳곳에 박혀 있지만, 이야기는 무겁지 않다. 어머니는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혼사를 치렀다. 결혼한 지 닷새 만에 해방 되는 통에 남편이 군대에 끌려가지 않게 돼 어머니는 “해방이 너무 싫었다”는 너무나도 솔직한 푸념을 한다. 누구나 웃음이 터질 만한 대목이다. 애정 가득한 잔소리와 타박이 넘치는 모녀의 일상이 이야기 사이사이에 버무려지면서 책은 뭉클함과 유쾌함을 오간다.

저자가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피난길에 나선 어머니가 외할머니를 두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다. “60년이 지났는데도 더 생각이 난다. 고향에 간다면 모(묘)를 파헤쳐 우리 나고(낳고) 키운 어머이(어머니) 뼈라도 만져보면 좋겠다”던 어머니의 사무치는 그리움을 딸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내 어머니 이야기’ 저자 김은성 작가의 어머니 이복동녀의 고향은 함경남도 북청의 산골마을이다. 한국전쟁 통에 어머니와 생이별을 했다. 애니북스 제공.
‘내 어머니 이야기’ 저자 김은성 작가의 어머니 이복동녀의 고향은 함경남도 북청의 산골마을이다. 한국전쟁 통에 어머니와 생이별을 했다. 애니북스 제공.

수 많은 세상 이야기 중 ‘엄마’를 택한 이유는 뭘까. “저희 어머니뿐 아니라 평범한 모든 사람들마다 소중하게 살아온 역사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 책을 계기로 독자들도 누군가의 역사를 찾을 수 있을 거라 봐요.” 실제로 각자의 ‘엄마 연대기’를 써보고 싶다는 감상평이 적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정작 아는 게 없는 어머니의 삶. ‘엄마와 친해지기’는 어떻게 가능할까. 저자의 조언 매우 간단했다. 어머니의 얘기를 허투루 흘려 듣지 말 것, 들었던 얘기라도 맞장구를 치면서 호응해줄 것. 집중해 꼼꼼하게 경청하는 것이 시작이자 끝이라고 했다.

동네 청년들이 대기 순번까지 미리 받아 놓고 징용에 줄줄이 차출되던 알제강점기, 어머니는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억지로 결혼을 서둘러 치렀다. 애니북스 제공
동네 청년들이 대기 순번까지 미리 받아 놓고 징용에 줄줄이 차출되던 알제강점기, 어머니는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억지로 결혼을 서둘러 치렀다. 애니북스 제공

아쉽게도 ‘내 어머니 이야기’는 여기서 멈춘다. 어머니의 건강이 예전만하지 못해서다. “이제 엄마가 기억하는 엄마보다, 제가 엄마를 더 잘 알게 됐어요. 엄마를 이해하면서 제 삶의 이야기도 돌아보게 됐고요.” 만화는 끝나지만, 두 사람의 방에는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진짜 삶의 이야기가 계속될 것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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