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스타트업 리포트]코로나19로 해외서 주목한 스타트업, 폐질환 자가측정 스마트기기 만든 브레싱스

입력
2020.04.27 14:04
수정
2020.04.27 15:11
0 0

[38회]이인표 대표 “스스로 호흡기 지키는 세상 만드는 것이 꿈”

사람이 살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 행위는 무엇일까. 바로 호흡이다. 죽으면 ‘숨을 거둔다’고 표현할 만큼 숨쉬기는 생존의 기본이자 생사를 가르는 기준이다. 그만큼 호흡을 담당하는 신체 장기인 폐 건강의 중요성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폐가 얼마나 건강한지 스스로 알 방법이 없다.

건강관리(헬스케어) 분야의 신생(스타트업) 기업 브레싱스의 이인표 대표는 이 점에 주목했다. 사람들이 각자 폐 건강을 손쉽게 측정하고 알 수 있다면 폐 질환에 조기 대처할 수 있고 나아가서 폐를 튼튼하게 만드는 운동으로 호흡기 질환에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폐는 침묵의 장기예요. 문제가 발생해도 자각 증상이 없어서 절반 이상 망가질 때까지 모릅니다. 기침을 심하게 하거나 호흡이 힘들면 폐 질환이 상당 부분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래서 꾸준한 폐 관리와 질병의 조기 발견이 중요합니다.”

[저작권 한국일보]이인표 브레싱스 대표가 서울 역삼동 회사 사무실에서 폐 건강 관리용 스마트 기기 '불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이인표 브레싱스 대표가 서울 역삼동 회사 사무실에서 폐 건강 관리용 스마트 기기 '불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호흡기 진단하고 폐 운동도 하는 스마트기기, 의사들과 함께 개발

이 대표는 최근 의사들과 함께 개발한 ‘불로’(BULO)라는 스마트 건강관리 기기로 이를 현실화했다. 인체에 무해한 의료용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한 손에 쥘 수 있을 만큼 작고 가벼운 이 기기는 숨쉬기로 폐 상태를 측정해 관련 질환을 조기에 파악하고 폐를 튼튼하게 만드는 운동 기능을 제공한다. “무게가 66그램에 불과해 갖고 다닐 수 있고 80명 이상의 시험을 거쳐 잡기 편하게 디자인했어요. USB로 한 번 충전하면 3주 정도 사용할 수 있죠.”

사용법은 간단하다. 기기의 전원을 켠 뒤 숨을 깊게 한 번 불어주면 된다. 그러면 기기와 연동된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에 폐활량, 폐의 나이, 폐 호흡근의 근력, 들숨과 날숨의 세기 등이 표시된다. “한 번 불면 6가지를 측정할 수 있어요. 일정 세기로 얼마나 길게 내뱉고 얼마나 오래 들이마실 수 있는지도 측정할 수 있죠. 집에서도 체온계 사용하듯 손쉽게 아이들의 폐 건강을 알 수 있어요.”

더불어 호흡 장애와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천식, 폐기종, 폐 섬유증 등 폐 질환 징후도 표시된다. 표시 내용은 인공지능(AI)이 의료기관에서 축적한 호흡기 질환 관련 데이터와 비교 분석해 제시한다.

이를 위해 ‘불로’는 정부의 의료기기 인증절차를 밟고 있다. “의료기기 인증을 받지 못하면 관련법상 병명을 표시할 수 없어요. 의료기기 인증은 행정절차 및 시험 기간이 오래 걸려서 약 1년 정도 소요돼요. 기기 및 소프트웨어의 정확도, 혹시 기기가 떨어져 깨졌을 때 이용자를 다치게 만들지는 않는지 꼼꼼하게 검사하죠. 올해 9월쯤 인증 절차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불로’ 앱은 매일 측정한 호흡 상태를 자동으로 기록해 쉽게 알 수 있는 곡선 그래프로 보여준다. 호흡이 정상이면 완만한 곡선을 그리지만 문제가 있으면 찌그러지거나 작게 나타난다.

이 같은 호흡 기록 관리는 COPD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COPD는 기도가 점점 좁아져 폐쇄되고 폐의 벽이 굳어서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병이다. 급격히 악화하면 사망한다. 치료가 불가능한 불치병이어서 진전 속도를 늦추는 수밖에 없다. “담배를 10년 이상 피운 40세 이상 성인들은 COPD를 염려해야 합니다. COPD의 급성 악화로 응급실을 찾은 사람의 30%가 사망합니다. 급격히 악화하는 것을 막으려면 조기 진단해 꾸준하게 폐 운동을 하며 관리해야 합니다.”

‘불로’는 폐를 튼튼하게 만드는 운동 기능이 함께 들어 있다. 기기에 부착된 운동 버튼을 누르면 호흡근을 강화하는 운동 기능이 작동한다. “폐 질환자들의 재활을 위한 인스피로미터라는 재활운동 기구와 같은 기능입니다. 앱에 표시되는 원 모양에 일치하도록 숨을 깊게 들이마시거나 뱉으면 호흡에 필요한 호흡근들을 튼튼하게 만들 수 있어요. 호흡근이 강화되면 폐 활량이 늘어나죠.”

이 대표는 ‘불로’ 제품을 의료기기 인증절차 때문에 건강관리용과 질환진단용 2가지로 나눠서 판매할 계획이다. 우선 간단하게 호흡을 측정하고 폐 운동을 돕는 제품을 다음달에 먼저 내놓는다. 기기 가격은 99달러, 앱은 무료 제공된다. 이를 위해 이 대표는 지난 20일부터 인터넷에서 구입자를 모집하는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다. “다음달 20일까지 한 달간 킥스타터에서 크라우드 펀딩으로 국내외에서 구입자를 모집해 이들에게 먼저 건강관리 제품을 판매할 계획입니다.”

질환진단기능이 들어간 제품은 개발이 완료됐으나 의료기기 인증 절차를 밟고 있어서 완료 시점인 9월 이후에 내놓을 예정이다. 이 제품 가격은 15만원을 예상하고 있다.

이 대표는 병원용 호흡기 진단기기도 따로 개발하고 있다. 병원용 기기는 입에 무는 부위를 교환할 수 있도록 종이로 만들고 감지기 부위를 소독하는 발광다이오드(LED) 살균기를 부착했다. 또 의사용 컴퓨터(PC)에 연결해 의사들이 환자의 상태를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대표는 진단 오차율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 “오차율이 1.7%에 불과해요. 의료기기 인증 기준은 오차율이 3%예요.”

[저작권 한국일보]스타트업 브레싱스에서 개발한 폐 건강 관리용 스마트 기기 '불로'. 불로로 측정한 폐 상태가 스마트폰 앱에 표시된다. 정준희 인턴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스타트업 브레싱스에서 개발한 폐 건강 관리용 스마트 기기 '불로'. 불로로 측정한 폐 상태가 스마트폰 앱에 표시된다. 정준희 인턴기자

◇코로나19로 해외 러브콜 잇따라

브레싱스와 ‘불로’는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 2월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 예정이었다가 취소된 세계 이동통신박람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가 계기였다. 원래 이 대표는 MWC에 참가해 ‘불로’를 알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행사 취소로 낙담하던 중 뜻밖의 낭보를 받았다. “MWC에서 행사 홈페이지에 올린 참가 기업 소개를 보고 유럽과 중동에서 연락이 왔어요.”

원격진료가 허용된 중동과 유럽 등에서는 브레싱스의 ‘불로’를 원격진료용 시스템과 함께 묶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호흡기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불로’를 이용해 측정한 호흡 결과를 병원에 전송해 관리를 받다가 상태가 악화되면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는 시스템입니다. 두바이와 스페인의 원격의료 관련 업체들과 이야기 중입니다. 중국에서도 의료기기 인증 절차가 필요 없으니 함께 개발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MWC가 열렸다면 더 많은 해외 업체들의 관심을 받았겠죠. 그런 점에서 코로나19가 원망스러워요.”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제품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19가 호흡기를 통해 침투하면서 급성 폐렴으로 악화하다 보니 ‘불로’에 대한 해외 기업들의 문의가 많이 늘었어요.”

이 대표는 해외 시장을 겨냥한 의료기기 인증 절차도 밟을 예정이다. “의료기기 분야의 유럽 통합규격인증(CE-IVD)을 준비 중입니다. CE-IVD를 받으면 중동과 동남아 진출이 가능하죠. 이후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을 계획입니다.”

[저작권 한국일보]이인표 브레싱스 대표가 불로를 이용해 폐 활량을 측정해 보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이인표 브레싱스 대표가 불로를 이용해 폐 활량을 측정해 보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폐암으로 타계한 어머니가 만들어 준 꿈

독특한 아이디어의 스마트 기기를 만든 이 대표는 원래 삼성전자에서 스마트폰용 카메라를 개발했다. 중앙대에서 영상공학을 전공해 석사 학위까지 받은 그는 2013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6년간 일하며 ‘갤럭시S’와 ‘갤럭시 노트’시리즈에 들어가는 카메라 개발을 담당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강조한 것이 카메라 기능인 만큼 사실상 스마트폰 개발의 핵심 중 하나를 담당한 주요 개발자였다. 그만큼 회사의 대우도 좋았다.

그런 그가 폐 관리용 스마트 기기 개발에 뛰어든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2016년에 어머니가 폐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주변을 돌아보니 호흡기 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많은데 조기에 이를 파악하고 관리할 도구가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모르는 상태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도록 호흡기를 관리할 수 있는 건강 기기를 만들어보자는 꿈을 갖게 됐죠.”

마침 삼성전자에서 사내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씨랩’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었다. 이 대표는 망설이지 않고 2017년 7월 씨랩에 지원해 삼성전자 사내 스타트업을 만들었다. 여기에 삼성서울병원 의사와 삼성메디슨에서 의료기기 개발을 담당하던 의사들이 각각 합류하면서 이 대표는 2018년 11월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직원 6명의 스타트업을 설립했다. “기기와 앱 개발에 총 2년이 걸렸어요. 기기는 국내에서 외주 생산합니다.”

이 대표는 삼성전자 퇴사를 후회하지 않는다. 새로운 꿈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퇴사 당시 삼성전자의 창업 자금 지원 등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스타트업을 설립했고 5년 안에 다시 복귀할 수 있는 혜택도 받았어요. 하지만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갖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봐요. 꿈이 중요하고 꿈을 이룰 방법을 찾는 것이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꿈은 세상 사람들이 겪는 아픔을 덜어주는 것이에요. 적어도 사람들이 스스로 호흡기 건강을 지키는 세상을 만들어 갑작스럽게 닥치는 죽음을 막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