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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도 태울뻔한 안동 산불… 무엇이 화마를 춤추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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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도 태울뻔한 안동 산불… 무엇이 화마를 춤추게 했나

입력
2020.04.26 20:22
수정
2020.04.2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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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티 ‘강풍타고 고속도로 뛰어 넘어’ 

 고속도 인근 주민 “도깨비불 같았다” 

 ‘보름달 달집’ 구조의 송곳 산세 

경북 안동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에서 살아 남은 새끼돼지들이 26일 안동시 남후면 한 양돈장을 돌아다니고 있다. 세명일보 제공
경북 안동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에서 살아 남은 새끼돼지들이 26일 안동시 남후면 한 양돈장을 돌아다니고 있다. 세명일보 제공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산불이 축구장 1,100개의 면적에 해당하는, 산림 800㏊를 불과 44시간만에 태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해마다 봄철 대형 산불 원인으로 거론되는 국지성 강풍이 첫손에 꼽힌다. 여기에 송곳처럼 가파르고 험준한 산세도 빠른 확산에 좋은 여건이 됐다. 정월 대보름 달집 타 들어 가듯 밑에서 붙은 불은 빠르게 위로 번졌고, 정상의 불은 다시 강한 바람을 타고 뜀뛰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번 산불은 지난 24일 오후3시39분쯤 풍천면 인금리 야산에서 시작됐다. 당일 밤 동쪽으로 인금리 바로 옆 남후면 하아리와 상아리로 번졌고, 주민 300여명이 마을회관과 청소년 수련관으로 긴급 대피했다.

하지만 다음날 오전 산불 기세가 잦아들면서 밤새 피했던 주민들도 속속 귀가했다. 산림당국이 이날 헬기 24대와 지상진화인력 1,600여명, 산불진화차 13대 등 장비 50여대를 투입해 화마와 사투를 벌인 결과였다. 주불 90%가 잡혀 완진을 앞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꺼질 것 같던 불은, 그러나 25일 낮 되살아났다. 초속 8m 안팎의 강풍이 인공호흡을 하듯 죽어가던 불을 살려냈다. 불은 순식간에 하아리와 상아리로 번졌다. 불길은 하아리에서 폭 180여m의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국가지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병산서원 턱밑까지 올라왔다. 도산서원과 함께 안동을 대표하는 서원이다. 병산서원과 인근 사찰 3곳 등은 다행히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어 동쪽으로 고하리와 단호리로 불이 확산하자 소방 당국은 30여대의 소방차를 동원, 두 마을을 포함 7개 마을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화마가 민가로 덮치는 것을 막았다.

경북 안동 유리요양원 입소자들이 인근 야산에서 난 산불로 25일 오후 경북도립 안동노인전문 요양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세명일보 제공
경북 안동 유리요양원 입소자들이 인근 야산에서 난 산불로 25일 오후 경북도립 안동노인전문 요양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세명일보 제공

불은 동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봄철 서쪽에서 불어오는 국지성 강풍인 양간지풍(襄杆之風)이 화마를 춤추게 하더니, 오후 4시쯤에는 인금리에서 직선으로 6㎞ 떨어진 중앙고속도로 인근까지 다다랐다. 이 곳에 있던 유리요양원은 입소자 80명을 긴급히 경북도립안동 노인전문병원으로 이송했다. 이어 불길은 폭 50m가 넘는, 왕복 4차선의 중앙고속도로를 훌쩍 뛰어 넘었다. 중앙고속도로 인근 마을 주민은 “설마 불티가 도로를 넘겠나 싶었는데 정말 도깨비처럼 뛰어 넘는 걸 보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며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 번졌다”고 말했다. 2시간 만에 발화 지점에서 동쪽으로 직선 거리 8㎞가 넘는 검암리까지 확산됐다.

강원도 지역에서 주로 부는 양간지풍은 해마다 봄철 국지성 강풍으로,‘양강지풍(襄江之風)’으로 불리기도 한다. 남북으로 자리한 양양과 강릉 중간 지역이 서쪽으로부터 맞는 바람이라는 뜻이다. 이번에는 그보다 내륙이고, 남쪽인 안동이지만 서쪽의 소백산맥이 대관령과 비슷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봄철 남고북저의 기압 배치 상황에서 서풍의 기류가 형성될 때 주로 발생한다. 국지적으로 강한 돌풍을 동반하며 산림이 우거진 영동지역 봄철 대형 산불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지난해 4월 4일 강원도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도 양간지풍 영향을 받아 초속 35m의 강풍을 타고 속초ㆍ고성 지역으로 확산했다.

안동 산불 현황
안동 산불 현황

강풍과 함께 무엇보다 신록을 힘겹게 피워내고 있던 바짝 마른 나뭇가지가 연료 역할을 했다. 당시 해당 지역에는 건조주의보가 내려져 있었다. 여기에 또 송곳처럼 험한 산세도 ‘도깨비 불’이 활개치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을 제공했다. 이 같은 산세가 소방 당국의 진화 작업에 방해가 됐음은 물론이다. 남후면 일대는 산이 가파르기로 유명하다.

화재 원인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산림당국과 경북도는 진화가 완료되는 대로 발화 원인을 본격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이번 산불 진화의 어려움은 태풍급 강풍을 타고 산불이 산발적으로 퍼진 데다 건조한 날씨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며 “산세까지 험해 인력 접근이 쉽지 않았던 등 큰 산불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안동=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ㆍ권정식 기자 kwonjs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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