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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진 교수의 마음거울] 마스크 벗고 립스틱 바를 날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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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진 교수의 마음거울] 마스크 벗고 립스틱 바를 날 기다리며…

입력
2020.04.14 04: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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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Figure 1게티이미지뱅크
Figure 1게티이미지뱅크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원리에서 시간이 차원의 하나에 불과함을 입증하였다. 그는 시간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처럼 직선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강물처럼 굽이굽이 흐른다고 하였다.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비상 상황을 맞아서 일상 활동이 제한되고 있다. 이전에 활발히 활동하고 교류하던 때와 비교하면 시간이 매우 지루하게 느껴진다.

전 세계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누구나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다. 외로움은 부정적인 생각과 우울의 원천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에서 여왕이 소년 카이를 얼음왕국으로 데려간 것도, 샤를 페로의 동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서 사악한 요정이 공주를 100년간 잠재운 것도 근본적으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었다는 외로움에서 나왔다.

기존의 가족과 직장의 개념이 해체되고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면서 앞으로 우리는 누구나 외로움에 오랫동안 직면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쩌면 인류의 사회 문화의 기본 질서를 급변시키고 미래의 문제를 미리 등장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도 나의 외로움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나의 고통을 정확히 이해해 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올해의 화두인 ‘느슨한 연대’는 앞으로 외로움의 해결 방안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따로 또 같이 지내는 방법,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을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지금 전 세계 주요 박물관, 음악관, 미술관 등은 온라인 무료 공연과 전시를 하고 있다. 이런 곳을 통해서 정신을 재충전해보는 것도 좋다.

온 국민이 감염 공포에 휩싸여 있다. 누군가 옆에서 헛기침만 해도 깜짝 놀라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손을 씻는다. 반복적인 손씻기는 강박장애에서 흔하게 보이는 증상이다. 감염을 반복적으로 걱정하는 강박 사고가 손씻기라는 강박 행동으로 나온다. 환자는 비합리적인 생각 때문에 강박 증상을 보이지만 현재 우리는 주어진 상황 때문에 강박 증상을 경험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우리나라 의료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졌다. 바이러스에 대한 방역뿐 아니라 정신적 문제에 대한 예방도 동시에 시행하고 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요리사가 한 상의 요리를 차리기 위해서는 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하는 고되고 긴 기간이 필요하다. 미술 작품을 그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붓질이 필요하고 좋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매일 수 시간씩 고된 연습을 해야 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불만족스러운 현재 상황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를 사용한다. 성숙한 방어기제인 이타주의는 자아가 건강할 때 나온다. 현재까지 전 세계의 의료진들은 최전방에서 바이러스에 맞서 싸우며 봉사와 희생의 덕목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의료진의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 이미 의료진의 심리적 고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에게 계속 이타주의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보다 합리적인 방역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지만 소를 잃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다음에 또 소를 잃지 않기 위함이다.

경제에도 굴곡이 있고 사람 인생에도 굴곡이 있다. 다만 그 바닥이 어디까지인지 상승이 언제 시작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어쩌면 그런 불확실성이 있어 인생이 의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확실성은 불안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미지의 세계는 호기심과 도전 정신을 일깨운다. 불확실성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시간의 강물을 따라 잘 흘러갈 수 있는 첫 번째 단계이다.

의학에서는 병을 앓고 있던 여자들이 립스틱을 바르는 것이 일시적으로 위축되고 우울했던 시기를 벗어나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신호라고 해석하며, 이를 ‘립스틱 신호(Lipstick Sign)’라고 한다.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고 립스틱을 바를 수 있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바란다.

김정진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정진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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