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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우왕좌왕 정책이 ‘코로나 님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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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우왕좌왕 정책이 ‘코로나 님비’ 불렀다

입력
2020.01.30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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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뉴얼ㆍ불투명 행정에 ‘감염증 난민’ 우려]

‘우한 교민 격리시설’ 주민 반발에 천안서 하루 만에 아산·진천 변경

지역민, 정부 일방적 결정에 격앙…“우리사회 내부갈등 해결 시험대”

정부가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 공무원 교육시설에 우한 교민을 격리수용 할 것으로 알려진 29일 오후 아산 주민들이 농기계로 경찰인재개발원 진입로를 가로막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 공무원 교육시설에 우한 교민을 격리수용 할 것으로 알려진 29일 오후 아산 주민들이 농기계로 경찰인재개발원 진입로를 가로막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우리 사회에도 ‘감염증 난민’ 문제가 현실로 등장했다.

정부가 중국 우한에 전세기를 투입해 교민들을 귀국시켜 충남 천안시 시설에 수용할 계획을 검토하다, 갑작스럽게 29일 이들의 수용 지역을 충남 아산시와 충북 진천군으로 확정하면서다. 우한 교민들의 수용으로 피해를 볼 것이라 여긴 현지 주민들의 분노에 직면하면서 정부가 우왕좌왕한 결과다. 공공 이익을 위해 집 마당을 내줄 수 없다는 이른바 ‘님비현상’이 벌어지면서 결국 우한 교민들은 어디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난민 신세가 되는 국면이다. 전세기로 교민들이 귀국하는 30일 아산ㆍ진천 주민들은 이들의 길을 막아서는 대규모 노상 집회를 열 계획이다. 대형 감염증 유행이라는 국난을 앞에 두고 집단이기주의가 빚어낸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2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중앙사고수습본부는 관계부처 합동 3차 회의를 열어 30일과 31일 전세기를 통해 중국 우한에서 귀국하는 교민과 유학생 720명의 임시 수용시설로 충남 아산시 경찰인재개발원과 충북 진천군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을 확정해 발표했다. 이들 귀국자는 공항에서 신종 코로나 증상여부 검사를 거쳐 무증상으로 드러날 경우 해당 시설로 보내지며 1인 1실 방역 원칙에 따라 외출과 면회가 금지되는 철저한 통제 아래 14일간 지낼 예정이다.

우한 교민들의 수용지가 아산과 진천으로 확정되자 이날 오후 두 시설 인근 주민 수백명이 트랙터 등 농기계를 몰고 나와 도로 진출입로를 막고 거리 농성에 들어갔다. 집회는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주민들은 촛불을 들고 나와 “수용 절대 불가”를 외쳤다. 시위에 나선 주민들은 “정부가 지자체, 주민과 사전 협의는커녕 기본적인 안내조차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우한 교민 수용지를 결정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외치며 지정 철회를 요구했다. 신종 코로나 유행지를 간신히 벗어나는 교민들을 거부하기는 지자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방의회와 시민단체들도 잇따라 성명을 내며 ‘님비’에 힘을 실었다.

오세현 아산시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수용 반대 입장을 내면서 “합리적 기준도, 절차적 타당성도 결여돼 있다”라며 “(정부는)지방정부와 단 한 번의 협의도 없었다. 더 나은 대안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아산으로 결정한 기준을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오 시장은 인근 신정호 등 관광지와 아파트 단지를 들어 유동 인구가 많고, 음압병동 등 신속대응 시스템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면서 “입지가 적절치 않다”고 따져 물었다.

[저작권 한국일보]29일 오후 충북 진천군 덕산면 두촌리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앞에서 덕산면 주민이 정문 진입을 막아서며 중국우한교민 수용에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20200129 진천=고영권 기자 /2020-01-29(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29일 오후 충북 진천군 덕산면 두촌리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앞에서 덕산면 주민이 정문 진입을 막아서며 중국우한교민 수용에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20200129 진천=고영권 기자 /2020-01-29(한국일보)

전문가들은 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우한 교민 수용시설을 놓고 벌어지는 님비현상을 촉발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확한 정보를 빠르고 투명하게 국민에 제공해야 한다는 위기관리 기본원칙을 간과하다 보니 해당지역 주민 협조를 얻는데 실패해 님비현상은 물론, 지역갈등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불덩어리를 국민들에게 던져놓고, 지역 주민간 싸우도록 방치하는 행태’와 다름없다는 비판이다.

실제 정부는 우한 교민 귀국계획을 발표하면서 수용 시설에 대해선 함구해 왔다. 앞서 언론을 통해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과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이 수용 시설로 검토되고 있다고 28일 알려졌지만 이에 대한 확인을 미뤘고, 이후 석연치 않게 장소가 뒤바뀌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산과 진천 주민들은 천안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해 이튿날 수용 지역이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형국이다.

정연정 배재대 공공행정학과 교수는 “절차상 너무 미숙했던 정부 대응이 님비를 일으킨 상황”이라며 “정부가 내부적으로 준비를 마친 후 격리시설 지정을 발표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국가위기 상황 때 주민갈등 예상 시나리오에 대한 매뉴얼도 마땅히 준비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주민갈등 사안이 향후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교민 보호는 국가의 의무란 점을 정부가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이해시키고, 철저한 대책과 보상책을 마련해 반대진영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홍수정 서울시 갈등조정담당관은 “우리 국민인 교민들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기본 임무란 점으로 설득해야 한다”라며 “다른 나라도 똑같이 하는 조치이고, 철저한 방역과 보호는 정부 책임 하에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일방적으로 한 쪽이 피해를 보는 상황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상대적으로 피해 보는 지역이 우려할 만한 안전부분을 철저한 대책으로 내놓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형기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도 “정부는 과학적 접근을 통해 ‘안전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과학적인 대안을 갖고 주민에게 설명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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