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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오! 베트남] “소득 올라 7인승 차도 구입” 빠르게 달라진 베트남

입력
2020.01.30 01: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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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30대 중산층 가장이 말하는 3년 사이의 변화 

 급여 크게 오르고 생활은 윤택, 부동산투자 등 불로소득에 관심 

 사회기반시설 개선 기미 못 느껴, 박항서 좋았지만 이제는 싫어 

지난 3년 사이 한국과 베트남은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2016년 한해 154만명이던 한국인 방문객 수가 2019년 429만명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을 정도다. 그간 베트남은 한국의 모든 분야에서 ‘핫 플레이스’로 자리잡았지만, 베트남을 이해하는 데에는 아직 부족함이 있다.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바람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고 있는 30대 중산층 가장을, 2017년 3월 인터뷰 이후 3년만에 다시 만나 베트남 사회의 변화를 들여다 봤다.

3년만에 다시 만난 딘 비엣 지웅씨가 그간 자신에게 생긴 변화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3년만에 다시 만난 딘 비엣 지웅씨가 그간 자신에게 생긴 변화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 이름은 딘 비엣 지웅. 올해 서른 여섯살로, 호찌민시내의 한 은행에 다니는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국인처럼 생겼다는 소리를 듣는 여섯살짜리 남자아이의 아빠다.

지난 3년간 내 자신과 가족 모두에게 많은 곡절과 변화가 있었다. 직장을 그만 두고 사업을 하기도 했고, 체질에 맞는 것 같지 않아 다시 지금의 회사에 들어왔다. 건축자재 공장을 지으려는 한국기업이다. 환갑을 넘긴 지 얼마 안된 아버지가 1년 전 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셨고, 아내도 유방암 치료로 일을 그만뒀다가 얼마 전 같은 회사에 다시 취업했다.

그 와중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오전 7시에 문을 여는 유치원에 아들을 맡기고 아내를 출근시킨 뒤 시내 사무실로 출근한다. 아침식사는 우유와 빵, 과일로 아들만 먹이고 우리 부부는 ‘스트릿푸드’로 대신한다. 맛나고 간편하다. 3년 전 1만5,000동(약 750원)이던 바로 그 음식값이 지금은 딱 두 배가 됐다. 그래도 맞벌이들은 대부분 우리 부부처럼 아침을 해결한다.

가격을 왜 이렇게 올리냐고 그 상인한테 물은 적이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때문이라는 답을 들었다. 하긴, 우리가 장을 보는 쿱(소비자협동조합)마트에서 사는 돼지고기 가격도 30% 이상 올랐다. 베트남에서는 전염병 걸린 돼지를 몰래 도살해서 팔고, 구덩이를 파기 힘들면 강물에 던진다. 아침에 먹는 반미(베트남 샌드위치) 가격은 앞으로 더 오를지 모른다.

◇대중교통은 제자리 걸음

오토바이로 출근하는 것도 바뀌지 않은 것 중 하나다. 2019년에 완공된다던 전철은 아직도 ‘공사중’이고, 자동차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버스가 있지만 불편하기 그지 없다. 운전대와 담배를 같이 잡고 있는 운전기사가 부지기수이고, 요금 받는 차장은 창문을 열고 발을 올린다.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계속 타다가 여유가 되면 자동차를 사는 이유다.

온 가족이 여유롭게 탈 수 있는 7인승 미쓰비시 익스펜더를 작년에 구입한 것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와 살림을 합쳤는데, 주말 외식이라도 나가자면 차가 필요했다. 그러나 오직 주말용이다. 출ㆍ퇴근 시간에 호찌민시내를 자동차로 누비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3년만에 다시 만난 딘 비엣 지웅씨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상품을 배송기사로부터 받고 있다.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자동으로 은은한 불을 켜주는 전등이다. 한밤중에 자다 일어나 화장실에 갔을 때 만나는 눈부신 불빛이 싫어 구입했다고 한다. 생활이 점점 윤택해지고 있다.
3년만에 다시 만난 딘 비엣 지웅씨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상품을 배송기사로부터 받고 있다.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자동으로 은은한 불을 켜주는 전등이다. 한밤중에 자다 일어나 화장실에 갔을 때 만나는 눈부신 불빛이 싫어 구입했다고 한다. 생활이 점점 윤택해지고 있다.

3년 전이라면 자동차 구입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제일 작은 기아 모닝이 당시 5억동(약 2,500만원) 수준이었고, 7인승 승용차는 5,000만~6,000만원은 줘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3,700만원에 구입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된 모델인데, 2018년부터 아세안 역내 관세가 철폐되면서 가격이 많이 싸졌다. 베트남은 작년에 전년 대비 2배 가량 많은 19만대의 차를 수입했는데, 나도 거기에 일조한 셈이다.

개인적으로 걱정이 많다. 대부분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주차장이 없는데 차는 늘어나고 있다. 동네 골목도 얼마 안 가 주차장이 될 것이다. 최근엔 단속이 시작되면서 곳곳에 유료주차장이 생기고 있지만, 월 주차료가 1면당 200만동(약 10만원)에 이른다. 대중교통 정책 실패로 국민들이 치르는 대가가 크다.

◇불로소득에도 관심 시작

큰 차를 구입한 나를 보고 주변에서 애 하나 더 낳아도 되겠다고 하지만, 우리 부부는 생각이 없다. 여전히 항암치료 중인 아내의 건강이 결정적인 이유이지만, 자식 하나 생기면 그 밑으로 들어갈 돈이 엄청나다. 장성한 자식을 떼놓을 때에도 집 한 채를 줘야 한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부모에게 기쁨을 주겠지만, 동시에 부담이다.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은 월 700만동(약 35만원)이 들어가는 사립유치원이다.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인데 그 이후에도 돌봐준다. 비용이 지방의 웬만한 공장 노동자들의 월급 수준이지만 믿고 맡길 수 있다. 돌봄 시간이 길어 호찌민시내 맞벌이 부부들이 선호한다. 어머니와 함께 살지만 여전히 아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건 아내의 몫이다.

내 월급은 이직하면서 50% 가까이 올랐다. 그렇지만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부업을 한다. 실제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비슷한 이유로 두세 개의 부업을 한다. 나는 크랩 도매업을 하는 친구에게 투자했다. 베트남 사람들도 소득이 높아지면서 크랩 소비가 늘고 있다. 회사 월급보다 많은 돈을 매달 동업 친구로부터 받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와 합가하면서 비워놓고 있는 이전 집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월세를 놓으면 500만동(25만원)은 벌 텐데, 왜 그걸 빈집으로 두고 있냐고. 하지만 그 집은 내가 나고 자란 집이다. 결혼 때 부모님이 물려준 그 집에 다른 사람이 사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나중에 재개발돼 아파트 하나 분양 받으면 아들한테 줄 요량으로 갖고 있다. 일종의 부동산 투자다.

그러나 많은 외국인들이 베트남인 명의로 땅에 투자하면서 베트남 사람들도 아파트보다는 땅 투자가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도 친구들과 구찌지역에 빈 땅을 좀 사놓고 있다. 미래에 큰 수익을 안겨줄 것으로 믿고 있다.

◇소득 늘고, 생활 편리해졌지만…

일상생활은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편리해졌다. 집안 청소를 이젠 800만동(약 40만원)짜리 로봇청소기가 한다. 3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열쇠를 휴대하는 대신 지문으로 현관문을 잠그고 연다.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다. 휴대폰을 통해 폐쇄회로(CC) TV로 온 집안을 실시간 볼 수 있고, TV와 에어컨 등 가전제품도 조종한다. 영화에서나 보던 것들인데, 지금 모두 내 손에서 이뤄지고 있다.

40세 이하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이런 것들에 열광한다. 나는 얼마 전 거실에 설치된 와이파이 라우터를 켜고 꺼는 기능을 추가했다.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으려 했지만, 유튜브에 빠져 사는 아들을 이기자면 이 방법이 효과가 있다. 언젠가는 인터넷이 끊기는 이유를 알게 되겠지만, 우선은 싸울 필요가 없어 좋다.

베트남 축구팀을 이끌고 있는 박항서 감독의 대단한 팬이었다고 밝힌 딘 비엣 지웅씨가 박 감독 관련 현지 기사를 보여 주고 있다. 사진 속 박항서 감독은 작년 12월 SEA게임 축구 경기 도중 화를 내는 모습.
베트남 축구팀을 이끌고 있는 박항서 감독의 대단한 팬이었다고 밝힌 딘 비엣 지웅씨가 박 감독 관련 현지 기사를 보여 주고 있다. 사진 속 박항서 감독은 작년 12월 SEA게임 축구 경기 도중 화를 내는 모습.

소득 증가로 생활은 점점 윤택해지고 있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도 많다. 의료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보험은 있으나마나 한 수준이고, 그나마 믿고 갈 만한 병원도 없다. 아내는 유방암 수술을 싱가포르에서 했다. 한국도 고려했지만 비자를 따로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병원 근처 작은 아파트를 구해놓고 진료에 맞춰 통원하는 식이었는데, 8개월 동안 10억동(약 5,000만원)을 썼다. 돈은 언제든 다시 벌 수 있는 만큼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어떻게 하면 편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부쩍 늘었다.

◇베트남 축구팀 좋지만, 박항서는 싫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내가 암에 걸리고, 잘 다니던 회사가 베트남에서 철수하는 바람에 직장도 잃고, 그래서 시작한 사업도 변변찮은 와중에 기쁨을 준 것은 베트남 축구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도박 사이트에 약간의 돈을 걸기도 했다. 10대나 20대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지는 않았지만, 베트남 팀이 이긴 날이면 가족과 친구들과 늦게까지 즐거움을 함께 했다. 분명 베트남 축구팀은 국민들에게 큰 에너지가 됐고, 박항서 감독도 영웅 대접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바뀐 분위기도 한국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박 감독이 여전히 인기 있는 건 사실이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그때만큼 겸손하지 않고 자주 화를 낸다. 큰 감동도 더 이상은 없는 듯하다. 지난달 필리핀에서 열린 동남아시안경기대회(SEA게임)에서는 상대편보다 3골을 더 넣은 상황에서도 심판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웬만해선 밖으로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베트남 사람들로선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다. 그 모습은 베트남에 있는 일부 무례한 한국인들의 그것과 흡사하다.

그 때문인지 왜 한국회사에서 일 하느냐고 묻는 친구들이 늘었다. 그럴 땐 ‘한국사람들이 모두 다 그런 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존경받던 박 감독까지 저런 모습을 보이니 힘이 빠진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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