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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 준다고 중소기업 가라니… 물정 모르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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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 준다고 중소기업 가라니… 물정 모르는 소리”

입력
2020.01.04 04:4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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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 넌 누구니?] <2> “한국은 ‘헬조선’ 아닌가요”

“취업 자리 줄고 공무원만 느는데 대학 입학부터 공시 준비 당연”

‘정부, 국정 운영 잘한다’ 31%... X세대보다 24%p나 낮아 불신 팽배

사진은 지난해 11월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9 글로벌 일자리 대전’에서 한 구직자가 채용공고 게시판을 보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진은 지난해 11월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9 글로벌 일자리 대전’에서 한 구직자가 채용공고 게시판을 보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지민(25)씨는 지방대를 졸업한 지 2년 만인 지난해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처음부터 공무원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대학 시절엔 줄곧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잡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대학 졸업까지 했는데 매달 부모에게 손을 벌릴 순 없어 일단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때마침 중소기업에 취직한 청년을 위한 정부 지원책도 나왔다. 하지만 김씨는 3개월 뒤 미련 없이 그만뒀다. 그는 “정부는 보조금 줄 테니 젊은이들이 눈높이 낮춰 중소기업에 취직하라고 하는데 사회에선 적어도 중견기업이라도 들어가야 사람 취급받지 않나. 나도 그런 인식에서 자유롭지 않더라”며 “결국 답은 공무원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대통령 직속으로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며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지만 정작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대한 Z세대의 평가는 냉담했다. “여러 정책을 내놓긴 하는데 우리의 처지를 제대로 헤아린 건 아니라 크게 와 닿지 않는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무엇보다 Z세대는 “눈높이를 낮춰서라도 취직부터 해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시각에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한국일보가 지난달 4일부터 사흘간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의 Z세대 500명과 X세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여론조사에서 X세대는 응답자의 78%가 ‘눈높이를 낮추면 취업할 곳이 많다’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대한 Z세대의 응답률은 52.3%로, X세대보다 25.7%포인트 낮았다.

한국일보가 진행한 Z세대 심층 인터뷰에서 고려대에 재학 중인 정모(24)씨는 “부모 세대야 ‘스펙’이 없어도 웬만큼 다 취직했는데 우리 세대는 그와는 너무 다르다”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쏟아서 취직을 준비하는데 눈높이를 낮추란 말은 전혀 공감되지 않는 기분 나쁜 말이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여론조사와 인터뷰를 종합하면 정부의 취업 대책은 Z세대의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친다. 우선 청년 일자리 대책은 중소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기업에 비해 낮은 처우를 감안해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에겐 세금을 깎아주고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정부 지원금 등을 합쳐 목돈을 쥐어주는 식이다. 중소기업의 구인-구직 ‘미스 매칭’을 해결하겠다는 취지이고 이런 지원들이 더해지면 신입사원은 연 1,000만원 이상 임금이 늘어나는 효과를 본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Z세대는 근시안적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점점 좁아지는 취업문, 이를 뚫기 위해 치러야 할 과도한 기회비용, 취직에 실패하면 사실상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느슨한 사회안전망 등 근본 문제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는 불만이 크다. 대학생 채모(24)씨는 “나이 차서 취직 못하면 사실상 낙오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가장 문제인데, 이런 현실은 그대로 두고 중소기업에 가라고 떠밀면 누가 가겠느냐”고 반문했다. 연세대에 재학 중인 이모(25)씨는 “세금 들여 공무원만 늘리니 결국 대학 입학 때부터 공무원 준비에만 매달리지 않느냐”고 말했다.

비정규직 사원인 김유진(21)씨는 “요즘은 60대 이상 노년층이 취업이 더 잘되는 같다”며 “나처럼 대학도 안 나오고 바로 사회에 뛰어든 청년은 눈높이를 낮춰도 정규직 사원이 되는 건 꿈도 꾸기 힘든 일”이라고 씁쓸한 현실을 전했다.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나 교육 정책에 대해서도 박한 평가가 쏟아졌다. 대학생 이소희(24)씨는 “고등학교 3년간은 쉬지 않고 공부만 해야 하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며 “교육 정책은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처방해야 하는데 항상 즉흥적인 건 현 정부도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5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종로학원 2020 대입 정시지원전략 설명회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입시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5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종로학원 2020 대입 정시지원전략 설명회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입시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말 정해진 정시 비율 확대를 꼬집은 말이다. 이씨뿐 아니라 여론조사에서도 정시 확대에 대해 현재 고등학생들은 46%가 ‘못한 일이다’라고 답했다. 올해 고3이 되는 김선경(18)양은 “또래 친구들은 밥도 못 먹을 정도로 학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교육 환경은 그대로 두고 정부는 그냥 공정해야 한다며 정시 비율을 확대했다”고 말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좀 시간이 걸려도 현실 문제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선행돼야 하는데 정부가 그런 과정 없이 일단 대책만 내놓는 건 문제”라며 “정시 확대 방침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Z세대의 불만은 국정 운영 인식에서도 드러났다. 여론조사에서 질문한 국정 운영 평가에 대해 ‘잘하고 있다’고 답한 Z세대는 31%에 그쳤다. X세대 응답률은 이보다 높은 55%였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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