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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홍수는 ‘인재’… “관광객은 셀카 찍지만 주민들은 눈물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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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홍수는 ‘인재’… “관광객은 셀카 찍지만 주민들은 눈물 흘린다”

입력
2019.11.15 17:05
수정
2019.11.15 18:5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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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콘테(왼쪽) 이탈리아 총리가 14일 최악의 홍수 사태를 겪은 베네치아를 찾아 배수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베네치아=EPA 연합뉴스
주세페 콘테(왼쪽) 이탈리아 총리가 14일 최악의 홍수 사태를 겪은 베네치아를 찾아 배수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베네치아=EPA 연합뉴스

“언제 문을 다시 열지 모르겠습니다. 고마워요, 모세!”

요즘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폴로 지역의 빵집 겸 카페 ‘파스티체리아 리짜르디니’ 출입문에는 이런 표지판이 붙어 있다. 크기가 작긴 해도 이 빵집은 역사가 무려 277년이나 되는 유서 깊은 관광 명소다. 그간 수많은 물난리에도 굳건히 살아남았으나 53년 만에 닥친 최악의 홍수 앞에 결국 영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모세’한테 감사하다고 했다. 모세는 35년 전 정부가 베네치아의 잦은 범람을 막기 위해 시작한 토목 프로젝트. 그동안 공사를 미적대는 바람에 주민들만 애꿎은 피해를 봤다는 반어적 힐난이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14일(현지시간) “관광객은 사진을 찍고, 주민들은 눈물을 흘린다”는 표현으로 베네치아의 현재 분위기를 전했다. 수위가 187㎝까지 올라간 바닷물이 들이닥쳐 도시 미관이 엉망이 됐어도 외지인들은 색다른 운치를 즐기지만, 삶의 터전이 파괴된 원주민들은 넋을 잃었다는 얘기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현장을 찾아 “나라의 심장이 무너졌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즉각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2,000만유로(약 257억3,000만원)의 긴급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대책도 내놨다. 정부는 기후변화가 베네치아 홍수의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애초 개펄과 석호 위에 거주지가 형성된 베네치아는 물에 취약한 구조인데,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접한 아드리아해의 강우ㆍ강풍 현상이 자주 발생하면서 해수면을 끌어 올렸다는 설명이다.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산마르코광장, 산마르코대성당, 라페니체 오페라 극장 등 유명 관광지는 물론, 도시의 85%나 물에 잠기게 한 대홍수는 ‘인재(人災)’ 이고 원흉은 모세 프로젝트라고 입을 모은다. 이탈리아 정부는 1984년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베네치아의 침수 피해를 방지하려 대규모 토목공사 계획을 수립했다. 핵심은 침수 취약 지점에 최고 3m 높이의 방벽을 만들어 평소에는 물길을 막지 않다가 수위가 올라가면 압축공기로 벽을 밀어 올려 바닷물의 유입을 차단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예산확보 문제 등으로 공사 착공은 2003년에야 이뤄졌고, 2014년 공무원들의 뇌물비리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2016년 완공 계획은 내후년에나 가능하게 됐다. 그사이 공사비는 계속 불어나 원래 목표했던 16억유로에서 최대 60억유로까지 4배 가까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엉터리 기상 예측도 주민들이 정부를 불신하는 요인이다. 해수면이 가장 높았던 12일, 기상 당국은 수위가 145㎝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수차례 예보했으나 결과는 40㎝를 훌쩍 초과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인프라 확충 약속을 믿지 않는 주민들은 예보만 정확했어도 각자 어떻게든 대비를 했을 것”이라며 당국의 안일한 재난 대응이 참사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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