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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몽상, 망각… 월리스가 그리는 ‘기묘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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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몽상, 망각… 월리스가 그리는 ‘기묘한 세상’

입력
2019.10.11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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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GIOVANNI GIOVANNETTI 제공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GIOVANNI GIOVANNETTI 제공

소설가라고만 칭하기에는 난감한 작가들이 있다. 자신 안에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을 세상에 토해낼 수단으로 소설을 택했을 뿐인 것 같은 작가들. 철학일수도, 미술일수도, 영화일 수도 있었지만 단지 소설을 택했을 뿐인 천재들. 그러나 종종, 이 천재들은 그 자신 안에 있는 것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기도 한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역시 그런 천재들 중 하나일 것이다.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썼고 철학이 취미였다. 토머스 핀천의 후예로 불리며 미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기대됐지만, 2008년 46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10대 때부터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앓았고, 각종 중독과 공포증에 시달렸고, 복용하던 우울증약이 더는 듣지 않자 끝내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짧은 생애 동안 월리스는 3편의 장편소설(마지막 소설은 미완성 유작), 3권의 소설집, 3권의 산문집을 남겼다. 특히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안겨준 두 번째 소설 ‘무한의 재미’는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각주만 300개가 넘는 형식 과잉의 작품으로 20세기 말 미국 문학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문제작에 이름을 올렸다.

‘오블리비언’은 월리스 생전에 출간된 마지막 소설집이다. 지난해 월리스의 에세이 선집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이 국내에 출간되기는 했지만 그의 소설이 국내에 소개되기는 처음으로, 총 8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제목이 된 ‘오블리비언(Oblivion)’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 망각, 간과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이자 소설집의 성격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찰과 묘사, 소설의 오랜 관습을 타파하는 플롯과 형식, 결말에 이르러서도 해명되지 않는 진실까지, 길을 잃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도록, 모호하면서도 강렬하게 독자를 사로잡는다.

표제작인 ‘오블리비언’의 경우, 코골이를 한다고 믿는 부인과, 부인이 환각에 시달린다고 믿는 남편의 이야기를 통해 결혼 16년차를 맞는 부부의 갈등을 그린 이야기다. 부부간의 갈등이라는 고전적 소재를 망상과 몽상으로 풀어내면서, 표면적 갈등과 이들의 기저에 도사리고 있는 근원적 문제를 짚는다. 어떤 게 결혼생활의 진짜 문제인지 모호한 가운데 부부는 의학적 진단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고, 소설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외에도 정신착란에 빠져 한 초등학교의 시민윤리 교실을 인질로 삼은 교사와, 무자각적 인질이 된 학생들의 이야기나(영혼은 대장간이 아니다),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어 울부짖는 아이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애쓰지만 멈출 수 없는 비극(화상 입은 아이들의 현현), 평생을 기만적으로 살아왔다고 고백하는 주인공이 죽음 이후 시점에서 자신이 자살에 이르게 된 이유와 과정을 들려주는 내용 등(굿 올드 네온), 어딘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매섭게 빨려 들어가는 독특한 이야기들이 작가 특유의 끊이지 않는 입말을 타고 이어진다. 한국의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라 부를만한 정지돈 작가는 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한계와 부딪치려고 했을 때만 탄생하는 것이 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소설이 그 완벽한 사례다”

오블리비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ㆍ신지영 옮김

알마 발행ㆍ600쪽ㆍ1만 9,800원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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