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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2.0] “청각장애인 위해 ‘소리를 보는 통로’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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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2.0] “청각장애인 위해 ‘소리를 보는 통로’ 만들었죠”

입력
2019.10.07 04: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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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현 소보로 대표가 서울 강남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소보로 프로그램을 시연하고 있다. 소보로는 ‘소비를 보는 통로’의 줄임말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인공지능 기반 실시간 문자 통역 서비스다. 박형기 인턴기자
윤지현 소보로 대표가 서울 강남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소보로 프로그램을 시연하고 있다. 소보로는 ‘소비를 보는 통로’의 줄임말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인공지능 기반 실시간 문자 통역 서비스다. 박형기 인턴기자

“안녕하세요. 소보로입니다.”

다양한 스타트업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구 선릉로 새롬빌딩. 지난 20일 이곳 1층에 있는 ‘소보로’ 사무실을 찾았다. 윤지현(23) 소보로 대표와 나눈 인사말이 모니터에 빠른 속도로 떴다. “자이지엔(또 뵙겠습니다)” “니 스 션머 밍쯔(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와 같은 중국어도 “再见” “你是什么名字”라는 글자로 또박또박 채워졌다.

소보로는 흔히 아는 빵 이름이 아니다. ‘소리를 보는 통로’의 줄임말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인공지능(AI) 기반 실시간 문자통역 서비스다.

서비스는 소보로 프로그램을 내려 받은 뒤 말을 하면 노트북이나 태블릿 화면에 자막처럼 문자로 변환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발음이나 환경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90% 넘는 정확도를 자랑한다. 띄어쓰기나 맞춤법은 물론 어지간한 사투리도 문제없다. 말하는 사람이 노트북, 태블릿에 연결된 마이크를 사용할 경우 정확도는 더 높아진다. 한국어는 물론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 서비스도 가능하다.

윤 대표가 소보로를 개발하게 된 배경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포스텍 3학년 때 IT 제품을 개발하는 강의 과제로 소보로를 기획해 창업까지 하게 됐다. 박형기 인턴기자
윤 대표가 소보로를 개발하게 된 배경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포스텍 3학년 때 IT 제품을 개발하는 강의 과제로 소보로를 기획해 창업까지 하게 됐다. 박형기 인턴기자

윤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며 교육과 직무(직장에서의 회의 등), 병원 같은 공공서비스 등 3가지 영역에 소보로를 보급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고 밝혔다. 비장애인들은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수 있지만 모두 청각장애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분야다. 이미 연세대와 고려대, 대구대 등 여러 대학교를 비롯해 서울대병원과 은행 등 공공기관 60여 곳, 100곳이 넘는 일반 기업 등 200여 개 단체가 소보로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윤 대표는 청각장애인들은 소보로를 통해 학교 수업은 물론 인터넷 강의 내용을 문자로 통역 받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직장 회의에 적극 참여할 수 있고 노트북과 대형 스크린을 연결하면 넓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강의나 강연을 듣는 것도 가능하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도 큰 도움이 된다.

물론 무료 서비스는 아니다. 이용 시간에 따라 요금이 부과된다. 개인 고객은 시간당 2,000원, 기관이나 기업은 시간당 1만원이다. 지난 해 5월 정식 서비스 출시 후 지금까지 누적 구매 시간이 1만 시간을 훌쩍 넘었다.

소보로 탭. 소보로 제공
소보로 탭. 소보로 제공

소보로의 탄생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 창업IT융합공학과 14학번인 윤 대표는 3학년 때인 2016년 ‘창의IT설계’ 강의를 들었다. 원하는 IT 제품을 기획해 만드는 수업이었다. 아이디어를 고민하던 윤 대표는 예전에 본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를 떠올렸다. 청각장애인 작가가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었다.

“웹툰에 ‘마치 천국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는 대사가 있어요. 초중고 시절 책상만 쳐다보며 어렵게 학창시절을 보낸 청각장애 학생이 대학에 가서 문자통역을 경험한 뒤 밝힌 소회였죠. 전 단순히 수업 프로젝트에서 끝나지 않고 사업화가 가능한 아이템을 하고 싶었거든요. 소리를 문자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윤 대표는 청각장애인을 200명 넘게 직접 만났다. 그들 요구를 소보로 프로그램에 충실하게 반영하고자 했다.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나도 어렸을 때 이런 프로그램을 썼으면 좋았을 것 같다”거나 “후배들이라도 이걸로 제대로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적극 지지해줬다.

그는 2017년 휴학을 한 뒤 1년 넘는 준비 끝에 2018년 2월 시범 서비스를 내놨다. 그 해 5월에는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소보로는 지난 1월 투자사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로부터 5억원을 투자 받았다.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윤지현(앞줄 오른쪽) 소보로 대표와 직원들. 소보로 제공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윤지현(앞줄 오른쪽) 소보로 대표와 직원들. 소보로 제공

소보로에는 직원이 10명 있다. 그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이 윤 대표다. 그는 “소보로가 여기까지 온 건 모두 팀원들 덕분”이라고 고마워했다. 그는 프로그램 개발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최승만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비롯해 직원 이름을 일일이 거론했다.

소보로란 이름은 윤 대표 어머니가 직접 지어주셨다. 너무 마음에 들어 윤 대표가 즉석에서 채택했다. 그는 “어머니가 요즘 자꾸 작명료를 요구 하신다”고 웃었다.

윤 대표는 앞으로 대학교를 넘어 초ㆍ중ㆍ고등학교에 소보로 프로그램을 보급하는 데 집중할 생각이다.

“초ㆍ중ㆍ고는 대학과는 환경, 구조가 완전히 달라요. 인터넷 가능 여부, 전자기기 반입 허가 등 여러 해결할 문제가 많습니다. 대학이나 직장보다 초중고에서 먼저 청각장애인들의 수업 참여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수업을 들을 때 청각장애인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전화 통화나 자동응답시스템(ARS)을 소보로와 연동시키는 시스템도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소보로는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문자로 변환해 서비스하는 어플리케이션(앱)을 개발했지만 서비스를 하지 못하고 있다. 휴대폰이나 태블릿 제조사에서 만든 앱 외에는 녹음 기능을 사용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안드로이드 보안 정책 때문이다. 윤 대표는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청각장애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요청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전화통화와 ARS를 쓸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라며 “해결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소보로 사용 시간이 누적 1만 시간이지만 앞으로 매주 1만 시간이 되는 날을 꿈꾸고 있어요. 소보로를 사용하는 시간이 늘수록 우리 사회의 소통도 더 원활해질 거라 굳게 믿고 있고요.“ 사진 촬영을 위해 회사 로고를 띄운 모니터 옆에 선 윤 대표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윤 대표가 회사 로고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윤 대표가 회사 로고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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