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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붕괴, 난민 대이동… 독일 명문 극단이 그려낸 202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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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붕괴, 난민 대이동… 독일 명문 극단이 그려낸 2028년

입력
2019.09.19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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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이체스 테아터, 20, 21일 ‘렛 뎀 잇 머니’ 공연 

 10년 뒤 세계의 혼란ㆍ가능성 담으며 현재에 질문 

136년 역사의 독일 도이체스 테아터가 20, 21일 한국 무대에 올리는 '렛뎀잇머니'의 한 장면. LG아트센터 제공
136년 역사의 독일 도이체스 테아터가 20, 21일 한국 무대에 올리는 '렛뎀잇머니'의 한 장면. LG아트센터 제공

기후 악화로 유럽연합(EU)에 이주민이 급증하며 사회적 부담이 커진다. 한편으로는 심각한 떨림과 기억력 이상을 동반하는 질병 ‘트레머’가 확산한다. 혼란의 시기 어느 국가도 주권을 행사할 수 없는 인공섬 ‘오션시티’가 건설되고, 이곳에 한 제약사의 연구소가 우선 들어서 트레머 환자 머리에 칩을 심는다. 미국에선 캘리포니아가 독립하고, 달러와 인공섬 암호화폐로 거주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한다. 지속적인 재정 불안에 시달리던 이탈리아는 EU를 탈퇴한다. 스페인과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이 이탈리아의 뒤를 따른다. 2026년 유럽 토지의 60%가 염류화 하는데, 2045년쯤에야 가능하다 여겨졌던 일로 지속적인 폭염의 결과물이다.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136년 역사의 명문 극단 도이체스 테아터가 극 ‘렛 뎀 잇 머니(Let them eat money)’에서 그리는 2028년까지의 모습이다. 논리를 갖추기는커녕 연출가의 허무맹랑한 공상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이 시나리오는 독일 안팎 과학ㆍ환경ㆍ경제 전문가와 시민 수백명의 토론을 거치고 1년 넘게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했다. 연출가 안드레스 바이엘은 18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10년 후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런 이슈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미리 고민해보자는 취지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극에서 다뤄지는 쟁점이 극장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나아가 전 세계에서 논의되길 바란다”고도 했다.

‘렛 뎀 잇 머니’ 연출가 안드레스 바이엘이 18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LG아트센터 제공
‘렛 뎀 잇 머니’ 연출가 안드레스 바이엘이 18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LG아트센터 제공

‘렛 뎀 잇 머니’의 구체적인 탄생 배경은 이렇다. 바이엘은 2007~2008년 독일을 뒤흔들었던 재정위기의 원인 제공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 ‘라즈베리 엠파이어’를 접하고 10년 후 닥쳐올 혼란을 막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되묻기 시작했다. 그는 작품 기반을 다지기 위해 2017년 겨울 도이체스 테아터와 독일 훔볼트 포럼을 주축으로 ‘어떤 미래?!(Which Future?!)’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각 분야 전문가와 시민이 열세 번의 워크숍을 거쳐 가상 미래를 그렸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가을 작품이 탄생했다. 극에는 프로젝트 과정 중 언급된 유로존 붕괴부터 난민 대이동, 인공지능(AI)에 의해 대체되는 노동, 환경 파괴, 기후 악화 등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등장한다. ‘렛 뎀 잇 머니’는 지난해 9월 베를린에서 초연했다.

‘렛 뎀 잇 머니’는 극에 등장하는 저항단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전문가 워크숍 기간 나온 한 참여자의 외침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인간은 먹어야만 존재한다’는 주제의 워크숍 날이었죠. 인류의 식량 부족이나 영양 불균형 문제 보다는 돈이 논의의 중심이 되는 상황에 한 참여자가 불만을 갖더라고요. 그러더니 갑자기 외쳤죠. ‘돈이나 쳐 먹어라!(Let them eat money!)’ 이 문장이 많은 걸 함의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품의 주요 문구로 따온 거예요.” 바이엘의 설명이다. 극 중에서 ‘렛 뎀 잇 머니’는 각종 문제를 야기한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행보를 지속한다. 무기를 손에 넣고 표적을 납치해 직접 인터뷰를 하며 이를 대중에게 생중계하기도 한다.

렛뎀잇머니의 한 장면. LG아트센터 제공
렛뎀잇머니의 한 장면. LG아트센터 제공

작품이 디스토피아의 풍경 만을 그리는 건 아니다. 바이엘은 “극 속에서 묘사되는 위기는 단순히 종말로 가는 과정이 아닌, 새 시작을 위한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작업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가 아닌 것도 비슷한 이유”라며 “이르면 내년, 늦으면 2021년쯤 공연 전후의 일들을 점검하는 대규모 토론이 다시 시작되는데, 여기서 도출되는 이야기들이 프로젝트의 완성이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베를린에서는 공연이 끝난 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 현지 정치인들이 다수 참여해 생각을 주고 받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한국 공연은 20, 21일 이틀 간 LG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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