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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깨어있을 때 꾸는 것” 탐험대원들 행복 찾기에 눈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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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깨어있을 때 꾸는 것” 탐험대원들 행복 찾기에 눈 떠

입력
2019.08.2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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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6m에 올라 서로 울며 격려해

“젊음은 잃었지만 늙음을 얻지 않았나” 다시 시작 다짐

줌마탐험대원들이 다울라기리봉을 배경으로 걷고 있다.
줌마탐험대원들이 다울라기리봉을 배경으로 걷고 있다.

13일차는 땅게에서 추상까지 23.2㎞나 돼 새벽 5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날 밤부터 내린 비가 그치지 않아 출발이 6시로 한 시간 늦춰졌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뒤 진창길을 힘겹게 걸었는데 곧 난관에 부딪쳤다. 칼리간다키강이 비로 물이 불어 그냥 건너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결국 말 한 마리를 동원해 한 명 한 명 건네는 수 밖에 없었다. 대원들이 모두 건너는데 1시간 반이 소요됐다. 정태연 씨는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는 것 마냥 비명을 질러대 웃음을 샀다.

가이드와 포터들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비교적 수심이 낮은 곳을 골라 강을 건넜는데 강정국 대장을 따라 강을 건너려던 노윤영 씨가 빠른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무릎을 다쳤다. 윤영 씨도 아마 시간을 줄이기 위해 그랬던 것 같은데 큰일 날 뻔 했다. 다행히 신발과 등산 스틱은 찾았지만 더 이상 산행은 무리라고 판단돼 말에 태우기로 했다.

한 대원이 말을 타고 칼리간다키강을 건너고 있다.
한 대원이 말을 타고 칼리간다키강을 건너고 있다.

계속된 오르막 길을 힘겹게 오른 끝에 파 패스(Paa pass∙4,183m)에 도착했다. ‘파’가 개구리라는 뜻이라는 데 그런 이름이 왜 붙은 것인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땅게가 3,373m였으니 2시간 만에 해발고도 800m를 오른 것이어서 대원들이 많이 지쳤다.

이후 길고 지루한 능선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오랜만에 닐기리봉과 다울라기리봉이 동시에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 탄성을 불러 일으켰다. 두 봉우리가 구름에 가렸다 드러날 때면 모두들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이화영 씨와 김영애 씨는 “이런 비경이면 20시간을 걸어도 지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리할 장소가 없어 점심은 라면으로 때웠다. 새벽에 출발하느라 챙긴 주먹밥과 감자, 그리고 라면의 조합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우리 라면을, 포터들과 가이드들은 현지 라면을 먹었다.

묵티나쓰 가는 길에 주름진 지형. 말로 설명이 잘 안될 만큼 기묘하게 생겼다.
묵티나쓰 가는 길에 주름진 지형. 말로 설명이 잘 안될 만큼 기묘하게 생겼다.

아래는 사막지형이, 중간은 구름, 위는 설산의 조합이 이채로웠다. 완만하게 내리막 지형이 계속됐다. 엄청난 규모의 녹아 내린 듯한 지형이 한동안 계속돼 눈요기가 돼줬다. 코스 막판 아슬아슬한 절벽길이 이어졌다. 말들은 여기를 어떻게 지나갔을까 궁금했는데, 나중 알아보니 좀 더 안전한 길로 돌아왔단다.

막판 만난 강 대장이 내려가서 시원한 맥주 한 잔 하자고 해서 자갈길을 거의 뛰듯이 내려왔다. 키는 내가 더 큰데 강 대장과 보조가이드 파상의 걸음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둘은 날 듯이 내려갔다. 23.2㎞를 11시간 10분 동안 걸었다. 제일 길고 지루한 코스였다.

추상에 도착해서 구름다리를 건너는데 낯이 익어 살펴보니 우리가 카그베니에서 추일레로 갈 때 중간에 들러 점심을 먹었던 곳이었다. 오면서 본 입간판 지도에 지명이 축상(Chhuksang)으로 돼 있어서 추상(Chhusang)과 다른 곳인 줄 알았다. 배우한 사진기자는 그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고산병의 후유증 탓으로 돌렸다. 땅게 숙소와는 비교도 안되게 좋아-현대식으로 깨끗하고 따뜻한 물이 나왔다. 물론 온수공급은 곧 끊겼다-여성대원들이 씻고 빨래를 해 컨디션들이 좋아 보였다.

대원들은 닐기리, 다울라기리봉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멈춰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었다.
대원들은 닐기리, 다울라기리봉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멈춰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었다.

복통으로 대원들에게 누가될까봐 혼자 내처 걸어 숙소에 먼저 도착한 진미장 씨가 걱정됐지만 다행히 다음날 멀쩡한 모습으로 일어나 모두들 안심했다. 밤에 별이 약간 보였지만 거기까지였다.

8월 1일 아침 식사로 미역국이 나왔다. 감자요리를 좋아한다는 주형옥 씨와 문학소녀 감성의 유윤숙 씨가 이 달 생일이란다. 대원들이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대원들은 묵티나쓰로 가는 길 정상에서 초코파이와 사탕 등으로 생일케익을 만들고 어디서 구했는지 초도 하나 꽂아 놓고 또 한번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줘 이들을 눈물 짓게 했다.

전날 하도 고생을 해선지 묵티나쓰 가는 15.7㎞ 길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특이하게 생긴 야생화가 많아 가이드 팸바에게 물어보니 잘 몰랐다. 대신 우리 찔레 비슷하게 생긴 웍띵가라는 관목을 알려줬다. 사과맛이 났고 주스도 만들어 마신단다.

마을에 접어들 때 축제행렬을 만났다. 말 꼬리를 따서 장식해 놓은 모양이 재미있었다. 가이드 팸바와 숙소를 찾아가는데 중간에 좋은 숙소들은 다 지나쳐 마을 제일 끝에 있던 허름한 숙소에 다달았다. 묵티나쓰가 네팔에서 비교적 유명한 관광지 및 종교성지여서 항상 붐벼 좋은 숙소를 구하지 못했단다.

강정국(가운데) 대장 등 쏘랑라패스를 오른 대원들과 부대장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강정국(가운데) 대장 등 쏘랑라패스를 오른 대원들과 부대장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 숙소 주인은 한국에서 일해 모은 돈으로 이 호텔을 짓고 자녀들은 미국에 유학 보냈다고 했다.

강 대장이 다음날 쏘랑라패스 등정에 대해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새벽 4시 출발해 11시까지 오르지 못하면 무조건 내려온다는 것이었다. 오후가 되면 바람이 세지고 자칫 탈진하게 되면 내려오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었다.

새벽 3시 일어나 이른 아침을 먹은 뒤 4시 출발했다. 김영애 씨와 체육회 최경전 과장이 초콜릿, 에너지바 등을 나눠줘 그걸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어두워 헤드랜턴을 키고 걷는 데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전날 잠을 설쳐 컨디션이 안 좋나 생각하면서 무작정 따라갔다. 어떻게 보면 깜깜한 게 도움이 됐는지도 몰랐다. 대원들 모두 걷는 데만 집중했다. 동이 터왔는데 안개가 자욱했다.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출발 전 5,200m 지점에 산장이 있다고 해 일단 거기까지를 목표로 삼기로 했다. 4,300m까지는 올랐으니 5,001m까지만 오르자는 생각이었다. 여성대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었다. 최상규 부대장이 선두를 이끌고 강정국 대장과 김철수 부대장이 후미를 담당했다. 서로 무전을 하며 상황을 챙겼다.

쏘랑라패스에서 내려오는데 멀리서 야생 사슴이 우리 일행을 쳐다보고 있었다.
쏘랑라패스에서 내려오는데 멀리서 야생 사슴이 우리 일행을 쳐다보고 있었다.

거친 호흡을 몰아 쉬며 산을 오르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5,100m를 지나고 있었다. 사실 약간 어지럽고, 시야가 좁아지고 속이 메슥거리는 증상이 나타났는데 최 부대장이 “그 정도는 괜찮다.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기는 아깝지 않냐”고 격려다. 지우철 PD도 “거의 다 왔다. 저 고개만 넘으면 된다”고 거들었다.

심호흡을 해도 숨이 잘 안 쉬어져 5,200m를 조금 넘은 지점에 배낭을 내려놓고 오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같은 길로 내려오니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걷는데 보조가이드 다와가 배낭을 메고 양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 산책하듯이 지나쳐 올라갔다. 셸파족은 다르구나 생각했다. 셸파족은 아니지만 로빈은 심지어 뛰어다녔다.

쏘랑라패스 정상을 싸고 있는 옆 봉우리에 만년설이 있었다. 왼쪽 봉우리에서는 ‘우르릉 쾅쾅’ 하면서 계속 산사태가 나는 소리가 들려 무서웠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2014년 이 일대서 39명이 눈사태 등으로 숨졌다고 한다.

트레킹만 13일 일정의 긴 여정이었지만 대원들은 서로 격려하며 이겨냈다.
트레킹만 13일 일정의 긴 여정이었지만 대원들은 서로 격려하며 이겨냈다.

마침내 쏘랑라패스에 올라 표지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16명의 대원 중 김영애 신금자 백수옥 정태연 남상금 5명과 강 대장, 부대장 둘, 지PD, 나-여행기를 쓰기 위해 억지로 올랐다-포함 10명이었다.

여성대원들은 성취감에 서로 얼싸안고 울며 좋아했다. 5시간 20분만에 고도 1,700m를 올랐다는 사실에 강 대장도 적잖이 놀랐다. 나머지 대원들도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대부분 5,200m까지는 올랐다.

내려 가는 데 아무리 찾아도 내 배낭이 없었다. 일행과 달리 눈에 잘 띄는 곳에 놨는데 누군가가 가져가 버린 것이다. 다행히 헤드랜턴, 무릎보호대, 장갑 등을 빼고는 죄다 먹을 것뿐이어서 별로 개의치 않았다.

말을 타고 내려오는 한 백인 노인네를 만났다. 말을 태워 정상까지 올려 보내는 서비스가 있단다. 운동화를 신고 보퉁이를 하나씩 이고지고 가는 마을사람들도 만났다. 이 고개는 지금도 마을사람들이 쓰고 있는 길이었다.

다 내려와 콜라와 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달고 맛있었다. 숙소로 돌아온 뒤 대원들은 기다리고 있던 동료들과 서로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다시 한번 즐거워했다. 나도 맥주와 과일주를 사와 나눠 마셨다.

석양이 멋있었다. 숙소 뒤로 먼 산을 향해 길 하나가 빛났다. 가이드 밍마는 칼리간다키강 수위가 많이 낮아진 걸 가리키며 “온난화로 만년설이 다 녹으면 이 땅은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저 길이 언제까지,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생각했다.

다음날 가벼운 마음으로 묵티나쓰를 출발, 좀솜으로 향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인데다 먼지도 심해 나머지는 버스로 이동했다. 트레킹 첫날 묵었던 그 숙소에 다시 묵었다. 첫날에는 “호텔이 뭐 이래” 했는데 지금은 “이 정도면 훌륭한 호텔이지”라고 생각했다. 밤에 별이 엄청 보여 깨웠다는데 일어나지 못했다. 별과 나는 안 맞는 모양이었다.

이번 줌마탐험대를 이끈 강정국 대장이 절벽 위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번 줌마탐험대를 이끈 강정국 대장이 절벽 위에서 포즈를 취했다.

8월 4일 좀솜에서 포카라까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는데 몬순에 따른 기상악화로 12명만 비행기를 타고 가고 나머지 14명은 또다시 11시간 가까이 지프차를 타고 와야 했다.

13일간 168㎞(기록자에 따라 182㎞까지도 나왔다) 최고높이 5,416m의 강행군이었다. 하지만 짜증을 내거나 불평하는 대원들은 없었다. 서로 챙기며 작은 것들에 행복해했다.

우리 사무실 화장실에 에디슨의 명언이 붙어 있다. “인생에 실패한 사람 중 다수는 눈앞의 성공을 모르고 막판에 포기한 자들이다.” 나는 반대로 해석한다. “인생에 실패한 사람은 눈앞에 성공이 있는 줄 알고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노력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성공, 돈, 명예를 목표로 삼으면 불행해지기 십상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돈이나 명예는 한계효용이 줄어들지 않는 특성이 있다. 많을수록 좋기 때문에 한계가 없다. 즉 비교 대상이 있는 한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는 얘기다. 돈이나 명예, 성공은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즐겁게 살 때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어야만 한다.

줌마탐험대와 가이드, 포터, 쿡들이 좀솜 숙소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줌마탐험대와 가이드, 포터, 쿡들이 좀솜 숙소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줌마탐험대원 중 여럿이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어느덧 50이 넘었는데 이제라도 내 인생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내게는 ‘인생’의 거창한 의미를 찾는다기 보다는 ‘만족’이나 ‘행복’을 찾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두 명이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하나하나 이뤄보고 싶다고 말했고, 한 명은 피트니스모델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또 한 명은 내년에 히말라야를 꼭 다시 찾겠다고 했다. 꿈은 자면서 꾸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을 때 꾸는 것이라는 걸 대원들이 서로에게 일깨워줬다.

줌마탐험대의 히말라야 18박19일 여정은 끝났지만 그들은 분명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대원들 중 누군가 말했다. “젊음은 잃었지만 늙음을 얻지 않았나.”

네팔(카트만두)=이범구기자 ebk@hankookilbo.com 사진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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