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바람의 작품일까, 비의 마술일까’ 비경의 연속…눈은 즐거운데 몸은 천근만근

알림

‘바람의 작품일까, 비의 마술일까’ 비경의 연속…눈은 즐거운데 몸은 천근만근

입력
2019.08.25 11:38
0 0

고도 1,000m가까이 오르락내리락

네팔 아리랑 따라 부르며 망중한도

강정국(맨 앞) 대장을 선두로 대원들이 로만탕에서 야라가온으로 향하고 있다. 뒷산이 조각 같다.
강정국(맨 앞) 대장을 선두로 대원들이 로만탕에서 야라가온으로 향하고 있다. 뒷산이 조각 같다.

로만탕을 앞두고 강정국 대장이 일정에 없는 쏘랑라(5,416m) 패스 등정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최고 높이는 4,300m였다. 네팔까지 왔는데 고산 증상 경험은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대원들이 눈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다들 굳은 의지를 보였다. 사실 강 대장과 부대장들은 대원들 중 세,네명 정도만 쏘랑라 등정이 가능할 거라고 예상했다. 가이드 밍마는 “쏘랑라패스는 안나푸르나 서킷코스에 해당하고 또 안나푸르나 코스의 백미인데 이걸 여기다 섞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살짝 불평했다.

쏘랑라패스를 100번도 넘게 다녀왔다는 팸바는 “묵티나쓰에서 그 가파른 길을 1,700m 치고 올라가는 건 여러분 실력으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팸바는 나중에 등정 사실을 믿지 못해 “진짜 올랐냐?”고 몇 번이고 물어봤다.

“쏘랑라패스에 오를 때 입장료를 따로 내야 하므로 정상까지 못 오를 분은 욕심내지 말라”고 강 대장이 말했음에도 오르지 않겠다고 말하는 대원은 진미장 씨 빼고는 한 명도 없었다. 미장 씨는 더 높은 고도를 다녀온 경험이 있는데다 “밭일이 밀려 있어 기운 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대원들이 4,298m의 초쿨라에 오른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원들이 4,298m의 초쿨라에 오른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차랑(3,583m)에서 와이파이 정액권을 샀는데 밀렸던 카톡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바람에 대화 세 번 만에 끝나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 퇴락한 왕궁을 한 바퀴 돌았다. 무너져 내린 건물을 개 두마리 만이 지키고 있었다.

김철수 부대장이 설사로 힘들어 했고 대원 몇몇도 소화불량 등으로 고생했다. 한 대원은 삼일째 씻지도 싸지도 못했다며 웃었다.

가이드 밍마는 “왜 이렇게 이름이 지명이 제각각이냐”고 묻자 “무스탕 지역도 네팔 말로 ‘로만탕’인데 외국사람들이 제 멋대로 무스탕으로 바꾼 것”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스트레칭을 하고 출발했다. 도중에 가르곰파(3,939m)를 지났다. 8세기 지어진 절로 부처 조각과 그림으로 유명한 유서 깊은 절이었다. 이 절의 유래와 전설을 소개하고 국가문화유산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한쪽에 페인트가 벗겨진 채 놓여 있었다.

휴식을 취하면서 차 한잔을 마셨다. 조금 있으니 프랑스 모자 3명이 도착했다. 우리와 내내 일정을 같이하고 있다. 그쪽 포터 중 한 젊은이는 영화배우처럼 생겨 짓궂게 인사하는 대원도 있었다.

다시 길을 재촉하는데 멀리서 야크떼가 나타났다. 네팔에서 처음 본 야크였다. 여기서는 야크나 양보다는 염소가 많았다. 반대로 티벳에 가면 양들이 훨씬 많단다.

강 대장이 네팔의 아리랑 격인 ‘레삼삐리리’를 틀고 지나갔다. 지금까지 하도 많이 들어 알지도 못하는 가사를 따라 부르는 대원들도 있었다. 꿈에서도 들렸다. 아침에는 ‘옴마니밧메훔’을 트는데 안녕을 기원하는 주문이어서 포터들이 좋아한단다.

대원들의 식사를 책임진 요리사 팀이다.
대원들의 식사를 책임진 요리사 팀이다.
말들도 무거운 짐을 메고 험한 산길을 누볐다.
말들도 무거운 짐을 메고 험한 산길을 누볐다.

뜬금없이 초원지대가 나타나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데 가이드 로빈이 마못이 살고 있다고 알려줬다. 보이지 않길래 돌을 하나 던졌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다시 스틱을 잡고 출발하려는 데 ‘여기는 마못 서식지임. 방해하지 마시오’라고 쓰인 안내판이 있었다.

이 곳 메뚜기는 날 때 꽤나 시끄럽다. 날개 부딪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린다. 파란 하늘, 회청색 빙하 개울물, 사막관목, 완만한 구릉지, 눈 닿는 데까지 펼쳐진 벌거숭이 산, 그 뒤 구름을 뚫고 가끔 보이는 설산 등이 슬슬 식상해 질 때쯤 초쿨라(Choku-la∙4,298m)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최고 높이다.

기념사진을 찍는 데 신금자씨가 “더 높은 데는 안 가나?”라며 체력을 과시했다. 대형마트 매장관리직인 금자씨는 탐험대에 선발된 뒤 “휴가를 안 주면 사표를 내겠다”고 반 협박해 이번에 참여하게 됐단다. 산행 실력이 상당해 지친 기색이 없었고 동료를 사진을 많이 찍어줬다.

땅게 가는 길. 대원들이 절벽길을 위태로이 걷고 있다.
땅게 가는 길. 대원들이 절벽길을 위태로이 걷고 있다.

다시 쏘랑라 패스 등정에 관한 애기가 나오자 대원들이 강 대장한테 질문을 쏟아냈다. “5,400m면 여기보다 1,000m 높은 거니까 올라갈 수 있겠죠?” “시간은 얼마나 걸려요?” “얼마나 힘들까요? 같이 올라가면 할 수 있겠지” 동료애로 뭉친 집단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멀리 주름진 협곡과 그 곳까지 끝도 없어 보이는 한 줄기 길을 한참 동안 감상했다.

항상 같이 다니던 신금자(왼쪽부터), 진미장, 이화영 씨가 포즈를 취했다.
항상 같이 다니던 신금자(왼쪽부터), 진미장, 이화영 씨가 포즈를 취했다.

8시간20분 간 17.2㎞을 걸어 로만탕에 도착했다. 옛 로만탕 왕국의 수도답게 제법 규모가 있었고 여러 군데 호텔 신축이 진행 중이었다. 가이드 밍마가 이곳은 시설이 참 좋다고 해 기대했는데 역시 기대가 크면 안 되는 법이었다.

다음날은 휴식을 취할 겸 두 팀으로 나뉘어 한 팀은 초사르로 가고 한 팀은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다. 초사르에는 14세기 만들어진 불교학교와 옛날 박해를 피해 수도승들이 거처했다는 절벽동굴 종케이브(Jhong cave)가 있어 둘러봤다. ‘로니풍남드롤로블링’이라는 긴 이름이 이 불교학교는 45명쯤 학생이 있었고 이 중 절반은 인도로 유학 보낸단다. 홍보물에 운영비가 5,000만원 남짓이고, 기부를 받는다는 내용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날씨가 꽤나 더워 고생했다. 돌아가는 길에 유채꽃밭이 나와 대원들이 사진을 찍었다. 이곳은 유채기름을 많이 쓴단다.

로만탕 시내에서 보수 중인 왕궁 건물과 탱화가게에 들러 구경했다. 왕궁이라 봐야 조금 큰 3층 건물이었다. 지진 피해를 입어 내부가 많이 무너졌단다. 카페에서 맥주랑 커피를 마셨고 땅콩비스킷을 먹었다. 숙소에 일찍 들어와 찬물로 씻고 빨래를 해 널었다. 대원들도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 편안한 모습이었다.

다른 한 팀은 지프차를 빌려 5,000m 높이의 국경까지 갔다 왔단다. 신축 중인 중국 세관 건물의 규모에 놀랐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서로 상대영토 20㎞까지는 비자 없이 왕복이 가능하단다.

저녁을 먹고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는데 기압차로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모습이 재미있어 동영상으로 찍었다.

바람의 작품일까? 비의 작품일까?
바람의 작품일까? 비의 작품일까?

슬슬 지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완만했던 구릉은 좀더 뾰족하고 좀더 구겨지고, 좀더 패이고, 좀더 깊어졌다. 색도 회색 일변도에서 붉은색, 황토색 등이 가미돼 단조로움을 벗었다.

이곳의 산은 완전 자갈투성이다. 국내 골재채취업자가 보면 천국이 따로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큰 돌, 작은 돌, 하얀 돌, 노란 돌, 검은 돌 각양각색이다. 절벽 한 면에 돌이 깨알같이 박힌 걸 보면서 참 신기해 했다. 지층도 진흙, 자갈, 모래 등으로 다양하게 나뉘어 지질학자가 오면 연구할 게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정국 대장이 힘들어하는 대원을 격려하고 있다.
강정국 대장이 힘들어하는 대원을 격려하고 있다.

계곡을 내려가는 데 철제 의자가 하나 뜬금 없이 나타났다. ‘브루노(스위스) 마커스(독일) 2018년’ 이렇게만 적혀 있어 이들이 기증을 한 건지, 아니면 이들의 기념비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협곡을 다 내려가자 비경이 나타났다. 병풍 같은 절벽이 만물상이었다. ‘한 500m만 떼내 국내 아무데나 갖다 놓으면 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올까?’란 생각이 들었다. 대원들이 그 곳에 앉아 한참을 감상했다.

칼리간다키 강변을 다시 지나는데 최상규 부대장이 돌을 들어 “수석 캐는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눈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이해 보이는 돌들이 많았다. 디(Dhee)라는 곳에 들러 점심을 먹는데 준비해간 밑반찬이 많이 상해 버려야 했다. 전날 다시 나타난 검은 개 칼리구굴도 따라왔다. “그 개가 맞다, 아니다”로 의견이 분분했지만 반가운 마음에 그냥 칼리구굴로 하기로 했다. 칼리구굴은 곧 다시 사라졌다.

대원들이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있다. 이렇게 오르락내리락하면 진이 빠졌다.
대원들이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있다. 이렇게 오르락내리락하면 진이 빠졌다.

가면서 비경이 이어져 대원들이 중간중간 독사진도 찍고 파노라마 사진도 찍었다. 절벽은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졌을 테지만 주름치마 같은 주름은 비도 잘 안 오는 이곳에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궁금했다. 비가 조금만 와도 몇 십만년의 세월이 지나면 가능하기도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미 파타고니아 같은 절벽으로 둘러싸인 탁상지, 종유동 같은 석벽, 형형색색의 모래벽이 계속 이어졌다. 구름이 걷히고 언뜻언뜻 설산이 고개를 내밀면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보조가이드 로빈이 ‘베드’가 네팔어로 “감사합니다, 신이시여”라고 알려줬다. 신이 있으면 감사하고 싶었다.

쉬는 시간 로빈이 피리로 레삼삐리리를 불자 이병춘 부대장, 진미장 씨, 가이드 팸바가 춤을 췄다. 포터들을 포함한 일행 모두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길을 재촉하다 쿡들이 쉬고 있길래 이마로 지고 다니는 바구니 가방을 들어보았다. 15~20㎏쯤 나간다고 말했다. 네팔은 포터들의 일자리 마련과 근로조건을 지켜주기 위해 1인당 25㎏이상 지지 못하도록 규정해놨다고 한다.

가는 길에 만난 한 곰파. 비교적 잘 단장된 절이다.
가는 길에 만난 한 곰파. 비교적 잘 단장된 절이다.

오후 4시가 좀 지나서 야라가온(3,603m)에 도착했다. 숙소에 들어서니 현지 아줌마 둘이 따라와 좌판을 늘어놨다. 목걸이, 팔찌 모자, 가방 등을 팔았다. 여성대원들은 주로 선물용으로 뜨개질로 만든 팔찌를 샀다. 서로 한참 흥정했다. 강정국 대장은 돈이 없다며 비스킷이랑 팔찌랑 바꿨다. 20대도 안돼 보이는 현지 아줌마가 포터들이랑 그 비스킷을 맛나게 나눠먹으며 티 없이 웃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맥주를 사서 나눠 마셨다. 저녁이 주는 조그만 행복이었다. 한 대원이 김치전을 만들어줘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모자와 수건을 빨아 널어놨는데 나무와 짚으로 된 지붕을 집으로 삼은 참새들이 하도 많아 가서 보니 아니나다를까 새똥이 묻어있었다.

저녁에 보니 사진기자를 따라다니는 보조가이드 파상이랑 다와가 꽤 먹을만한 사과술(중국술 배갈 비슷한데 45도쯤 된다)을 마시고 있길래 더 먹으라고 팁을 줬다.

대원들이 만물상 같은 모래산을 배경으로 산을 오르고 있다.
대원들이 만물상 같은 모래산을 배경으로 산을 오르고 있다.

30일 아침 혈압을 재는 데 박영숙 씨 혈압이 190을 찍었다. 국내에서는 140정도 나온다고 했다. 주변에서 그 정도면 약을 먹어야 된다고 걱정했다. 본인은 괜찮다고 했다. 아침에 출발하는 데 들판에 산토끼 한 마리가 빠르게 지나갔다.

가파른 길을 계속 올라갔다. 1시간 20분만에 고도 700m를 올라갔다. 노윤영씨가 힘든지 눈물을 비쳤다. 유윤숙씨는 발가락이 아파서 고생했다. 한 대원이 “밥 먹자마자 너무 힘들게 올라 소화가 안 된다”고 말했다. 나도 속이 안 좋았다. 볶음밥을 미련하게 세 공기나 먹은 게 떠올라 다음부터는 점심을 조금 덜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땅게 가는 길의 구름다리. 길이 171m, 높이는 100m도 더 돼 아래를 보면 현기증이 났다.
땅게 가는 길의 구름다리. 길이 171m, 높이는 100m도 더 돼 아래를 보면 현기증이 났다.

길을 내려가면서 밍마에게 “여기는 왜 모기가 없냐”고 물어봤더니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모기는 그림책에서만 봤단다. 추워서 모기가 견디지 못한단다. 그러나 파리는 많았다.

밍마가 “숙소가 좀 안 좋을 것이다”고 경고했는데 흙벽에 흙바닥이었다. 찬물로 대충 씻고 잠을 자려는데 아무래도 불안해서 헤드랜턴을 켜보니 벌레가 기어 다녔다. 몸이 갑자기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간신히 잠들었는데 빗물 떨어지는 소리에 곧 깬 뒤 거의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옆 숙소에서 잔 지우철PD에게 “괜찮았냐?”고 물어봤더니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보여줬다. 지붕에서 침대로 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옆 숙소로 간 팀은 비 안 떨어지는 곳에 쪼그려 앉아 밤을 그냥 꼬박 샜어요”라고 말했다.

네팔=이범구 기자 ebk@hankookilbo.com 사진 배우한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