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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전력 수치 조작 빈번했다” 日 피폭 노동자들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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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전력 수치 조작 빈번했다” 日 피폭 노동자들 증언

입력
2019.08.23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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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007년 7월 일본 니가타(新潟)현에서 진도 6.8 규모의 주에츠오키(中越沖) 지진이 발생한 후, 유바 다카키요는 인근 가시와자키카리와 핵발전소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이 발전소는 주에츠오키 지진 당시 일부 변압기에서 화재가 났지만 소화용 배관 고장, 전화 불통으로 2시간이 지난 후에야 불이 꺼진 곳이다. 유바의 주요 업무는 각 원자로 건물과 연결된 지하통로의 굵은 케이블을 교체하는 것. 지진의 영향으로 엉망인 원자로 주변을 정리하기 위해 그는 양동이로 물을 퍼내거나 손으로 관로를 흔들어 물을 빼내야 했다.

유바는 발전소 근무를 시작한 지 1년도 안돼 고혈압 증상으로 후두부의 머리카락이 대량 빠지기 시작했다. 2010년 6월부터는 왼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았고, 골수염이 의심된다는 진단도 받았다. 하지만 유바는 “그뿐이었다”고 말한다. 여전히 고혈압과 청력 상실, 두통으로 고생하는 중이지만 그의 질환이 피폭 때문이라는 점을 증명할 수가 없는 탓이다. 당시 현장엔 피폭선량을 측정하는 시스템이나 방사선 관리 수첩이 없었기 때문이다.

‘핵발전소노동자’는 유바와 같은 일본 내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피폭 경험과 이후의 삶을 모은 증언집이다. 음악가인 테라오 사호가 저자로, 그는 2010년 일본 저널리스트 히구치 겐지가 쓴 ‘어둠 속에 사라지는 핵발전소 피폭자’ 책을 읽은 후 핵발전소 노동자들을 둘러싼 문제에 천착해 왔다. 책을 접한 직후엔 핵발전소 노동자를 위한 시위에 참여해 마이크를 잡다가, 직접 핵발전소 노동자를 쫓아 그 실상을 기록했다.

책에는 다양한 형태의 핵발전소 노동자 6명이 등장한다. 핵시설 내에서 안전관리 업무를 맡은 이부터 20년 된 핵 폐기물을 꺼내 드럼통에 담는 작업을 하던 사람의 증언도 있다. 이들 노동자의 공통점은 위험 시설에 가장 가까이 일하면서도 자신의 피폭 위험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렴풋이 인지했더라도 사측에 적극적으로 환경 개선을 요구하지 못했다. “보고를 하는 순간 생계 유지는 먼 일이 되는” 탓이다. 일상화된 경보 무시, 안전 장치 부재, 겹겹의 하청 시스템 등에 별다른 문제제기를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현장 관리자들 역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되뇐다. 책에 등장하는 전 도쿄전력 기술자 기무라 도시오의 말. “회사에 들어가서는 일본의 에너지 근간을 만든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원자력에 불평하려면 전기를 쓰지 말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못을 받은 적도 있지요.” 기무라는 발전 효율이 떨어지는 여름에는 한계 수치를 넘지 않기 위해 데이터를 마음대로 수정해버리는 등 도쿄전력 안팎의 수치조작이 빈번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사회의 무관심도 이러한 구조를 견고히 만들었다. 핵 혹은 핵발전소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정작 그 안을 지키는 노동자들에겐 관심이 향하지 않는다. 일본 내 저명한 학자들 조차도 “위험 공간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면 문제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실정이라고. 막막한 무관심의 장벽을 깨기 위해 여전히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 드러나는 사실은 어쩌면 구태의연한 상태로 남아있는 핵발전소의 노동 실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것은 더욱 정확한 하나의 정보가 될 것이다. 하나하나 적어가면서, 구체적 사실을 앞에 놓다 보면 핵발전소 노동이 시대를 관통해 전달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핵발전소 노동자 

 테라오 사호 지음ㆍ박찬호 옮김 

 건강미디어협동조합 발행ㆍ272쪽ㆍ1만5,000원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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