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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ㆍ국민건강보험공단 공동주최 ‘2019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체험수기ㆍ사진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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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ㆍ국민건강보험공단 공동주최 ‘2019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체험수기ㆍ사진 공모전

입력
2019.07.30 09:15
수정
2019.07.3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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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험수기 부문 최우수작 – ‘ 아버지와 함께하는 기억여행 ‘ 이춘혜 씨

밤새 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뚝 떨어져 바람이 매우 차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꽃단장하시고 웰빙 식단으로 아침식사를 마치신 아버지가 창밖을 내다보며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신다. 전화 올 때까지 편하게 앉아 계시라고 말씀드려도 수학여행 떠나는 아이마냥 아침마다 들떠서 저러고 계시길 벌써 1년이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8시 5분 전….

아버지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전화를 받기도 전에 현관으로 나가 신발을 신으신다. 아버지를 저토록 행복하게 하는 해피버스는 매일 아침 8시에 도착한다. 오늘도 밝게 미소 지으며 요양보호사와 운전기사님이 아버지를 맞아 주신다. 차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뿌듯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아버지를 모시고 오길 정말 잘했구나.

벚꽃 꽃눈이 펄펄 휘날리던 작년 4월….

흩날리는 꽃잎마냥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던 아버지께서 우리집으로 오셨다. 만 4년 동안 살았던 아들집을 떠나 딸이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오셨다. 아버지는 10년 이상 치매로 고생하시던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셨지만 2013년 겨울 하늘나라로 보내드렸고, 남동생은 혼자 남으신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자기네 집으로 모시고 갔었다. 남동생은 효자 아들이었지만 아무래도 어머니의 부재가 크셨던지 아버지는 오랫동안 외로워하셨다. 친구분들과 어울려 술을 드시는 날이 많아졌고,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수면제를 드시고 주무셨다. 허전하고 불편한 마음을 술로 달래고 수면제로 잠을 청하신 아버지가 한참동안 깨어나지 않아 우리의 심장을 놀라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동생 내외가 맞벌이다 보니 낮에는 보호자 없이 혼자서 생활을 하셔야 했는데 가스 불을 켜둔 걸 잊어버려 냄비며 주전자를 태우는 일이 종종 발생했지만 ‘이제는 아버지도 깜빡깜빡할 연세인가 보다’라고만 생각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형제를 놀라게 하는 대형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서에서 아버지를 인계해 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산책하러 나갔던 아버지가 집을 찾지 못해 헤매다 지나가는 행인이 지구대에 모시고 오셨다고 했다. 되짚어보니 아버지의 이상한 행동들이 혹시 치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병원에 갔다. ‘알코올성 치매’라는 진단을 받고 약을 타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제대로 옆에서 챙기지 못하니 치매약도 안 드시고 증세는 자꾸만 심해져 아들과 며느리를 힘들게 하셨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들과 며느리가 경제활동을 그만두고 아버님을 돌볼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기에 우리 형제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논의 끝에 시설에 모셔야 되지 않겠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나의 부모님을 집에 모시지 못하고 시설에 맡긴다는 사실에 마음이 울컥했다. 아직 요양병원 가실 정도는 아닌데…. 엄마도 치매로 그렇게 보냈는데 아버지마저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내가 아버지를 모실께.”

앞으로 닥칠 일을 미처 생각해 보지도 못한 채 내지르듯 아버지 부양을 책임지겠다고 말해 버렸다. 동생들은 고마워했지만 내가 과연 잘 모실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함께 살기 시작하고 효심 깊은 딸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나름 정성으로 섬겼지만 치매약을 챙겨 드리는 것 말고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이 아버지에게 충격이셨던지 “누가 자꾸 부른다”, “고향으로 가야겠다”며 안절부절못하셨다. 이렇게 모시는 것이 과연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위한 일인가라는 자책감으로 아버지 못지않게 나 또한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자유롭게 살던 생활도 아버지로 인해 조금씩 제약을 받기 시작하였고,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한 내 결정이 잘한 것인지 이런 마음으로 과연 끝까지 잘 모실 수 있을지 갈팡질팡하는 와중에 엄청난 일이 터졌다.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집에서 화재가 난 것이다. 연락을 받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버지에게 큰일이 없기를 하늘에 기도하면서 집으로 달려왔다. 다행히 큰불은 아니었다. 커피를 끓이려고 주전자를 올려놓은 채 깜빡하셨는지 주전자가 전부 타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온 가족이 동원되어 아버지를 찾기 위해 거리 곳곳을 헤매며 가슴을 얼마나 졸였는지 모른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다. 불이 나자 너무 놀란 아버지는 무조건 밖으로 뛰쳐나가셨다고 한다. 덕분에 화재에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 추운 날 길거리를 혼자 헤매시는 것을 시민이 신고하여 파출소에 데려다 드린 것이다. 조금이라도 늦게 발견되었다면 동상으로 큰일이 났을 것 같았다. 그 이후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특수키를 달아서 밖에서 잠그면 못 나오시도록 시건장치를 했지만 볼일 보러 나가서도 집에 혼자서 갇혀 있는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급히 달려오곤 했다.

치매환자는 가족들에게도 부양부담을 가중시켜 심한 우울감을 가져와서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한다는 걸 실감하는 나날들이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고 있을 때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주야간보호센터 블로그를 통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등급판정을 받으신 치매노인에게 장기요양인정서를 발급하여 방문요양이나 주야간보호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 같은 분들이 다닐 수 있고 부양부담을 줄일 수 있는 어르신 유치원 같은 곳인데 국가 지원으로 이용을 할 수 있는 주야간보호가 있다고 하여 바로 공단에 문의해 신청 절차를 확인 후 장기요양인정 신청을 하였다. 그리고 동생들과 가까운 주야간보호센터를 방문해서 어르신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보았다. ○○케어센터는 벽면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 있어 멀리 장산이 보이는 탁 트인 전망에 푸른 하늘이 보이는 자연친화적인 환경을 갖춘 곳이었다. 방문 당시 재활운동 시간이었는데 헬스장에서나 볼 듯한 운동기구로 구령에 맞춰 열심히 운동을 하고 계셨다. 어르신들의 행복한 웃음소리와 밝은 표정, 게다가 보기만 해도 믿음직한 센터장님은 체육학박사로 뇌과학과 브레인 체조를 연구한 분이셨다. 건강보험료 낼 때 노인장기요양보험료를 내긴 했는데 내가 이런 혜택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선진국 못지않은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에 감사하며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한 장기요양등급이 빨리 나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3주쯤 뒤 기다리고 기다리던 등급판정이 나왔다. 인정서를 받으러 간 날 공단 직원이 제도 소개와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방문요양, 방문목욕, 주야간보호 등)에 대해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동생들과 의논한 끝에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오는 방문요양 서비스보다는 주야간보호센터가 현재 아버지에게 더 적합하다고 결정을 내렸던 터라 ○○케어센터에 당장 등록을 하였다. 부담스럽지 않은 경비로 큰 혜택을 보게 되어 동생들이 “누나 수고했네”라면서 좋아했고 나도 이런 곳에라도 모시면서 낮 시간에 불안함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침부터 아버지와 씨름하며 한없이 내려앉던 내 마음도 안정을 찾게 되고 아버지는 센터에서 외롭지 않게 지내시게 되어 한시름 놓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처음 2개월 정도는 적응이 안 되셔서 센터에 계시면서도 나에게 전화를 너무 많이 하셔서 하던 일도 잘 안 되고 힘들기도 하였지만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아버지는 점점 다른 분들과 친해지면서 적응을 하셨고 센터에 나가는 것에 재미를 느끼셨다. 이렇게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센터 직원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유치원처럼 매일매일 카톡으로 보내주는 알림장과 사진을 통해 아버지가 센터에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오늘은 식사를 잘 하셨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처음이니깐 이렇게 귀찮은 일을 해 주는 것이겠거니 생각했는데 1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센터 알림장은 꼬박꼬박 카톡으로 오고 있다.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 노래 부르는 모습, 춤을 추는 모습 등 평소에 접할 수 없는 우리가 모르던 아버지의 모습을 담당 요양보호사가 보내준 사진을 통해 마주할 때면 북돋는 감정에 눈물이 나곤 했다. 오늘 아침, 센터 셔틀버스를 기다리시다 문뜩 “춘혜야~ 나 좋은 데 보내줘서 고마워”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사회복지를 전공했기에 이 모든 과정이 남다르게 다가왔고 대학 시절 노인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면서 앞으로는 이러한 프로그램이나 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교수님 말씀이 현실이 되어 있음에 놀랐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바뀌었고 고령화 문제는 이미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있다. 현재 60세 이상 노인인구의 10%가 치매 환자이고 77만 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한다. 5년 후면 100만 명을 넘긴다고 해서 노인이 노인을 모셔야 하는 초고령화 사회가 걱정스럽다. 부부가 함께 벌어야 살 수 있는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치매에 걸린 부모님은 자녀에게 엄청난 부담과 때로는 불화의 원인이 되니 국가가 나설 수밖에 없는 일이 되었다. 지역사회 내에서 노인을 보살펴 줄 센터가 더욱 필요하고 요양병원만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아무리 똑똑하셨던 분도 어느 날 찾아오는 치매라는 무서운 질병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고 가족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은 너무 크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아버지는 너무 좋은 센터를 다니시게 되어서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매달 보내주는 소식지와 프로그램 계획표를 보면 정말 잘 짜여진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센터장님이 직접 만드셨다는 브레인체조, 치매예방을 위한 뇌 블럭, 작업치료 등 다양한 인지재활 프로그램과 실버댄스, 실내골프, 세라밴드 같은 신체활동도 있고 문화회관 연극 및 공연 관람, 벚꽃나들이, 외식 나들이 등 가족 대신 외식도 시켜 주고 문화 활동의 기회도 부여해 주고 있다. 또한 한 달에 한 번씩 센터에 다니시는 어르신들의 가족들을 초청하여 진행하는 가족참여 프로그램은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년 2월에는 의사선생님을 초청하여 건강강좌를 열어 주셔서 가족들이 궁금해하는 질환에 대해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었고, 7월에는 사진작가를 초청하여 가족 스냅사진과 장수 사진을 찍어 주셨다. 10월엔 가을운동회를 진행하였는데 참석한 가족들이 센터 직원들보다 더 열심히 응원도 하고, 경기에 합류하여 정말 박 터지게 박도 터뜨려 보았다. 특히 좋았던 건 12월에 진행한 학예발표회였다. 연세가 무색하게, 아니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몸이 불편한 노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다들 멋진 공연을 펼쳐 주셨다. 반짝이 상의에 나비넥타이를 매신 어르신이 들려주신 시낭송은 제목은 잘 생각이 안 나지만 감미로운 목소리에 구절구절 감정을 위로해 주었다. 걸그룹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댄스 실력을 보여 주신 할머니그룹이며, 아버지가 속한 파란 망토의 핸드벨 팀이며, 연습을 도대체 얼마나 했던 걸까 싶을 만큼 훌륭했다.

이렇게 다양한 프로그램에 같이 참여하여 다른 가족들과 서로 부양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좋은 방법들을 공유하다 보니 이제는 그 가족들이 내 가족 같다는 착각마저 든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추억의 시간은 아버지 인생의 마지막 일기장에, 그리고 중년인 나의 일기장에 차곡차곡 쌓여 아버지가 떠난 언젠가 손주들에게 전해 줄 가슴속 저미는 이야기들이 될 것이다.

이제 센터에 다니신 지도 만 1년이 되었다. 다시 벚꽃 눈이 펄펄 날리던 날이 돌아왔지만 우리 집은 달라졌다. 이제는 마음속에 외로움도 사라지셨는지 아버지는 많이 밝아지셨고 건강해지셨다. 아버지처럼 착한 치매이신 분, 중풍으로 몸이 자유롭지 못하신 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케어센터 직원 분들의 진심어린 케어로 행복하게 지내시니 너무 보기 좋다. 나 또한 이렇게 좋은 국가의 혜택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부양부담이 줄어들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도 걱정 없이 마음껏 편하게 할 수 있어서 너무나 만족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깨끗한 환경 속에서 잘 지내시는 아버지를 보며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1930년 생 올해 90이 되신 아버지께서 남은 삶을 ○○케어센터에서 행복하게 보내시고 딸이 해주는 밥과 매일 매일 깨끗한 옷을 입으시며 지금처럼 “행복하다”, “고맙다”고 말씀하시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 언젠가 헤어질 날이 오겠지만 지금처럼 집에서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센터를 다니며 좋은 추억 많이 만들다 그렇게 후회 없이 보내드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가 조금 넘어간다. 4시 10분이 되면 즐겁게 놀다 집에 오실 아버지를 기다리며 전화벨에 귀를 기울인다.

▶ 사진 부문 최우수작 – ‘ 공기놀이’ 박영숙 씨

아이고~ 예쁘기도 해라.

한가한 시간에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공기놀이를 해보자!

누가 더 많이 쥐어볼까?

내기내기 해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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