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숨겨진 재능이요? 귀를 씰룩거릴 수 있다는 거예요.”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여자 수구 3연패를 노리는 세계 최강 미국 대표팀. 전국 각지에서 최고 중 최고만 골라 13명을 뽑았지만, 그 중에서 단연 빛나는 선수는 매디 머슬맨(21)이다. 21살의 어린 나이에 여자 수구계를 평정해 ‘여자 수구의 메시’라 불리지만, “어둠이 무섭다”며 몸서리를 칠 땐 영락없는 재기발랄 한 여대생이다.
머슬맨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2014년, 16세의 나이에 대표팀에 발탁될 정도로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사실 이미 태생부터 수구를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 제프는 하버드대 출신으론 드물게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 데뷔해 투수로 활약했던 선수다. 1980년대 토론토와 뉴욕 메츠에서 활약했던 그는 현재 ‘슈퍼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가 운영하는 보라스 코퍼레이션의 부사장이다. 머슬맨이 강력한 슈팅 능력을 누구에게 물려받았는지 쉽게 짐작되는 대목이다.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물과 가깝게 지낸 것도 도움이 됐다. 3살 때 처음 수영을 배웠는데, 스승이 1984년 LA 올림픽 남자 자유형 1500m 금메달리스트 마이크 오브라이언(65)이었다. 9살 무렵엔 바다 수영도 익혀 이후 해안 안전요원으로 일했다.
승부욕도 남달랐다. 머슬맨의 어머니 카렌은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ESPN과의 인터뷰에서 “네 살배기가 친구들이랑 축구를 하면 보통 즐거워하기 마련인데, 매디는 오직 이기고 싶어할 뿐이었다”며 “처음엔 골을 넣는 게 귀엽긴 했는데 계속 골을 넣으려다 보니 득점 기계가 됐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미 학생 리그를 접수했고, 2017년 서부의 명문대 UCLA에 진학해서는 전미대학체육협회(NCAA) 리그를 초토화시켰다. 데뷔 첫해였던 2017년 시즌 69골을 몰아넣으며 신인상을 받았고, 2018년 53골, 2019년 61골을 기록해 매해 빠짐없이 올스타에 선발됐다.
국가대표팀에서도 줄곧 에이스였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2015년 러시아 카잔 세계선수권에서 5득점으로 팀의 우승을 도운 그는 이듬해 리우 올림픽에서 12골을 몰아넣으며 금메달을 따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2017년 헝가리 세계선수권에선 16골로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고, 2019년 국제수영연맹(FINA) 월드리그 슈퍼파이널에선 14골로 다시 한 번 MVP에 올랐다. 머슬맨 덕분에 미국이 여자 수구 세계최강의 지위를 회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슬맨은 이번 대회에서도 5경기 13골로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다. 미국이 26일 펼쳐진 스페인과의 결승전에서 승리한다면 종목 MVP는 사실상 따 놓은 당상이다.
물 속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머슬맨은 UCLA 학보사 데일리브루인과의 인터뷰에서도 못 말리는 수구 애정을 표출했다. “2016년 올림픽을 준비하느라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1년이 사라졌지만, 대표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사실 졸업무도회 가는 것보다 수구 경기 한 판 뛰는 게 훨씬 ‘쿨’하지 않나요?”
광주=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