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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PC가 묻으면’ 어때서

입력
2019.07.24 18:30
수정
2019.07.24 18:4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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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캡틴 마블'. 월트디즈니 코리아 컴퍼니 제공
영화 '캡틴 마블'. 월트디즈니 코리아 컴퍼니 제공

영국 드라마 ‘킬링 이브’는 여러 면에서 전복적이다. 첩보물이면서 수사물이고, 스릴러물이기도 한 이 드라마의 두 중심축은 여성이다. 잔혹 범죄의 희생양으로 흔히 묘사되던 동유럽 백인 여성이 사이코패스 살인 청부업자다. 범죄자를 쫓는 형사 이브는 아시아계 여성이다. 동성 인물 사이의 농밀한 감정이 피가 흥건한 이야기에 포개진다. 비주류 인물들이 소수자 이야기를 그려낸다. 여성을 액세서리 정도로 여기는 백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전형적인 첩보 드라마와 다르다.

□ ‘킬링 이브’ 속 중년 남성들은 비열하다. 잔인하게 죽어나가는 이들 대부분이 중년 남성이다. ‘킬링 이브’는 가부장제 사회에 대해 냉소적인 드라마다. 국내에서는 ‘킬링 이브’ 같은 드라마를 ‘PC 묻은’이라고 비하하는 이들이 있다. ‘PC’는 ‘정치적 올바름’을 뜻하는 ‘Political Correctness’를 줄인 은어다. 여성을 앞세우거나, 성소수자 또는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에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콘텐츠는 ‘PC하다’고 표현된다. ‘묻었다’는 부정적 단어를 PC와 함께 사용하는 이들은 대체로 페미니즘과 인종 다양성에 반대한다.

□ ‘PC 묻은’ 콘텐츠나 연예인은 평점 테러나 악플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할리우드 영화 ‘캡틴 마블’은 여성 슈퍼히어로가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PC 묻은’ 영화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가수 설리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PC 묻은 연예인’이라는 악플에 시달렸다. 여성성을 내세우거나 인종 다양성이 소재인 영화나 드라마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PC가 묻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따르기도 한다. 재미보다는 정치적 올바름을 더 고려하다 보니 대중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는 것이다.

□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 등을 만든 미국 마블 스튜디오가 내년부터 선보일 신작들의 캐스팅 내용을 최근 발표했다. 국내 배우 마동석이 초능력자 길가메시를 연기하는 등 캐릭터의 성별ㆍ인종 구성이 더 다양해졌다. 다양화가 돈이 되기 때문이다. ‘킬링 이브’는 시즌2의 경우 영국에서만 710만명이 시청했다. 이브를 연기한 샌드라 오는 1월에 열린 미국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TV드라마 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샌드라 오는 한국계 캐나다인이다. 영국과 미국에 ‘PC 묻은’ 같은 비하가 횡행했다면 샌드라 오가 주연을 맡고, 마동석이 할리우드에 진출할 수 있었을까.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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