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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슈퍼밴드와 재능, 하얀 거짓말

입력
2019.07.15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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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프로그램 ‘슈퍼밴드’의 한 장면. 특출한 재능을 타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들은 한정적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라’는 어른들의 ‘하얀 거짓말’은 무책임하다.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잘 할 수 있는 것이 직업이라는 것을 솔직히 알려주고 재능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자. 방송 캡처
jtbc 프로그램 ‘슈퍼밴드’의 한 장면. 특출한 재능을 타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들은 한정적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라’는 어른들의 ‘하얀 거짓말’은 무책임하다.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잘 할 수 있는 것이 직업이라는 것을 솔직히 알려주고 재능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자. 방송 캡처

지난주 막을 내린 ‘슈퍼밴드’라는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 ‘핫’하다. 분당 최고 시청률이 5.2%에 이를 만큼 그야말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처음 시작할 때 “또 오디션 프로그램이냐”며 손사래를 치던 시청자들도 독특한 진행 방식과 출연자들의 엄청난 실력에 반해 어느덧 금요일 밤 9시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아이돌 음악 일변도로 재편돼 버린 음악 시장에서 클래식, 록, 힙합, R&B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천재들이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하고 싶은 일을 잘할 수 있는 재능과 성취가 딱 맞아떨어지는 이들을 볼 때마다 ‘멋져 보이고 참 부럽다!’는 마음이 밀려든다.

뒤집어보면 음악이라는 한 분야에서 특출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데 너무 많은 10대, 20대가 자신의 인생을 음악에 걸지 않나? 하는 느낌도 든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예술 분야에서의 성취를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대입 예체능계 응시율(2018년, 15%)만큼 예체능의 사회적 수요는 어떨지….

621대 1. 2019년도 수시모집에서 서경대학교 실용음악과 보컬전공이 기록한 경쟁률이다. 3명 모집에 1863명이 몰렸다. 한양대는 477대 1, 단국대는 201대 1을 기록했다. 실용음악 열풍이라고 할 만큼 성공한 대중가수를 꿈꾸는 청년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직업과 삶의 길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한데 어린 나이에 자기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아볼 새도 없이 음악에 올인하는 세태가 바람직한지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가라는 건 어른들의 거짓말이다. 악의를 담고 한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내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갔으면 하는 것은 모든 부모의 바람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 선의의 거짓말이 단순히 희망에 머무르지 않고 수많은 아이들의 인생 행로를 뒤흔들게 되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언제까지 일할 수 있고, 언제 성공할 수 있으며, 언제 스스로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은 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가라고만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정작 그 말을 하는 어른들 중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대개는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거나, 먹고살기 위해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돌아봐야 한다.

TV에 나오는 성공한 음악인들의 삶은 화려하다. 최상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모두가 그런 성공과 성취를 누릴 순 없다. 지금도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기 위해 작은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청춘의 약 9할은 빛을 보지 못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일치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많은 이들은 이 둘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삶을 위해, 누군가를 위해 하루하루 자신의 업을 꾸려나가고 있다.

성숙한 사회가 되려면 장밋빛 미래만이 아닌 이면의 그림자도 함께 가르치고 화려한 삶만이 성공이 아니라는 것을 정확히 이야기해야 한다. 박지성이 뜨면 축구에, 김연아가 뜨면 피겨 스케이팅에, 아이돌이 뜨면 실용음악에 아이들이 몰리는 현상은 어른들의 하얀 거짓말에서 비롯된 것이 상당 부분 아닌가. 언젠가는 경제적 자립과 함께 스스로가 책임지는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키워준 부모는 물론 내가 책임질 가족과 아이들이 있게 되고 그들의 온전한 삶과 내일을 내가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미리미리 알려주는 것 또한 어른 세대들의 몫이며 책임이 아닐까? 더는 하얀 거짓말로 아이들을 속이지 말자. 재능을 찾게 도와주자. 잘할 수 있는 일이 직업이다. 재능과 취미를 혼동하지 말자.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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