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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수 경북 의성군수 기고] “천연 바람 쏟아지는 빙계계곡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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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수 경북 의성군수 기고] “천연 바람 쏟아지는 빙계계곡으로 오세요”

입력
2019.07.12 04: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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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수 의성군수. 의성군 제공
김주수 의성군수. 의성군 제공

바캉스, 피서, 라고 하면 사치스럽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더위도 잊고 일하는 분들이 칭송받아 마땅한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아열대가 기승을 부리는 시절까지 일에만 파묻혀 지내기에는 너무 힘이 듭니다. 스트레스란 감정이 없는 자동차도 휴게소에서 쉬어줘야 탈 없이 오래 탈 수 있습니다. 사람이야 오죽할까요.

의성에도 전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피서지가 있습니다. 바로 빙계계곡입니다. 얼음이 얼도록 시원한 바람이 골짜기에 흘러내립니다. 빙혈(氷血) 지점은 영하 4도까지 내려갑니다. 신비한 자연 냉풍을 한나절만 즐겨도 더위에 쌓인 피로가 싹 달아납니다.

더위를 물리치는 것은 생각보다 여러 면에서 중요한 일입니다. 기후와 경제의 관계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인류는 오랜 세월 기후와 싸웠습니다.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끊임없이 이주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후를 극복하면서 삶의 영토를 넓혀갔습니다. 추위는 불을 발견하면서 서서히 승기를 잡아갔고, 더위에 대한 확실한 승리는 1915년에야 가능해졌습니다. 그 해에 에어컨에 발명되었습니다. 에어컨은 미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에어컨의 공적을 그저 ‘시원한 여름’쯤으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1920년대를 기점으로 이전에는 사람이 살기 힘들었던 더운 지방에 ‘대도시’의 터전이 마련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만 예로 들자면 매년 세계 최대 전자제품 박람회(CES)가 열리는 라스베이거스를 필두로 휴스턴, 댈러스, 뉴올리언스, 피닉스처럼 뜨거운 지역들이 에어컨 발명 이후에 도시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역들은 대부분 1970년대 이후 미국의 5대 산업이 이동하고 있는 선벨트 지역에 속해있습니다.

에어컨이 경제 효과를 가장 강렬하게 인식한 인물은 싱가포르의 고 리콴유 총리였습니다. 싱가포르는 열대국가로 늘 더웠고, 사람들은 축축 늘어지기 마련이었습니다. 리콴유는 자서전에서 총리가 되고 난 후 제일 먼저 공공기관에 에어컨을 설치해서 업무 효율을 높였다고 고백했습니다. 민간 회사도 더위를 물리친 덕분에 1년 12달 내내 열정적으로 일하는 직원들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도 일찍부터 더위와 싸웠습니다. 일손이 가장 필요한 때가 한창 더운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마을 입구에 큰 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들었고 뜨거운 바람이 쏟아져 들어올 만한 곳에는 작은 인공 숲을 조성했습니다. 집은 바람이 잘 통하도록 문을 배치하고 햇볕이 쏟아지는 쪽의 처마를 길게 앞으로 뺐습니다. 또 놀기 삼아 물고기를 잡아 국을 끓여 먹으며 피서와 영양보충을 동시에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더위가 가장 극심한 기간에 초복과 중복, 말복을 정해서 더위에 건강을 잃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2보 진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말이 있습니다. 피서가 꼭 그렇습니다. 피서는 사치나 게으름의 증거가 아닙니다. 반드시 필요한 재충전의 시간입니다.

천연의 바람이 쏟아지는 의성으로 오십시오. 얼음 바람이 나오는 빙혈과 풍혈을 비롯해 인암 의각 수대 석탑 불정 용추 등 빙계 8경이 가장 훌륭한 쉼터가 되어줄 것입니다. 군에서는 여름 휴가철을 대비하여 1.8㎞의 계곡 주변에 7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공간과 오토캠핑장, 야영장 등의 편의 시설을 구축해 더위와 싸우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쉼은 자연의 순리이자 경제와 문명을 발달시킨 원동력이었습니다. 올여름, 가장 천연스러운 피서와 쉼이 있는 의성 빙계계곡으로 오십시오.

김주수 의성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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