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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먼저 움직였다… 일본으로 달려간 총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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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먼저 움직였다… 일본으로 달려간 총수들

입력
2019.07.08 04:40
수정
2019.07.08 07:2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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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빈 이어 이재용 다급히 방일… EUV 감광액 수출 규제 땐 시스템반도체에 타격 

 아베 ‘한국 대북제재 위반’ 시사… 한국 기업에 ‘적성국가 반출 안한다’ 서약서 요구도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에 대한 대책을 논의를 위해 7일 오후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이한호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에 대한 대책을 논의를 위해 7일 오후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이한호기자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조치를 시행한 지 나흘째인 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급히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재계 안팎에서는 “그룹 총수가 휴일에 직접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건 삼성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무겁게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라는 분석이 나왔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가 시스템반도체 등 삼성의 미래 사업을 콕 찍어 겨냥했다는 정황이 갈수록 짙어지자, 총수가 문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는 것이다. 국내 관련 산업계는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가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행위’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에 반도체뿐 아니라 정보기술(IT) 등 국내 첨단산업 분야에 전체적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이날 오후 6시 40분 대한항공 KE711편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부회장이 이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마련한 주요 기업 총수들과의 면담 자리에 참석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청와대와 삼성전자 측은 이 부회장의 면담 참석 여부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앞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역시 지난 5일 이미 일본으로 출장을 간 것으로 전해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번 경제보복 조치가 대북 제재와 연관돼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이날 후지TV에 출연한 아베 총리는 “한국은 (대북) 제재를 잘 지키고 있고 바세나르체제 무역 관리를 확실히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한일 청구권 협정을 어기면서 국가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게 분명한데 무역 관리 규정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따른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다”며 “기업들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처지에 내몰려 불만이 높아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삼성, 미래 사업 흔들릴까 좌불안석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일본 재계와 금융권 인사들을 만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해법을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일본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데다, 사업차 일본을 자주 방문해 현지 경제인들과의 교류가 깊은 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조기에 해결하지 못하면 삼성의 미래 청사진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며 “이 부회장의 일본 출장에서는 삼성의 위기의식이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일본의 이번 수출 규제가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동력까지 고려한 고도의 계산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와 포토레지스트(감광액)의 수출 규제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인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 당장 큰 타격은 주지 않지만, 향후 이들 회사가 전개할 미래 사업에는 치명적 손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주요 소재 대일 수입의존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주요 소재 대일 수입의존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삼성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감광액 수출 규제다. 일본이 이번에 규제한 품목은 여러 가지 감광액 중 회로선폭이 10나노미터(1나노미터=10억분의 1m)이하인 최첨단 미세 공정에 주로 쓰이는 극자외선(EUV)용으로 한정돼 있다. 현재 국내 업체들이 주로 생산하는 10나노급 이상인 D램과 낸드 생산에 주로 쓰는 감광액은 규제 대상에 빠져서 당장의 생산 차질은 빚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삼성이 향후 133조원을 투자해 2020년까지 세계 1등을 차지하겠다는 시스템반도체 사업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제품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정교한 공정이 필수인 시스템반도체 생산에서는 EUV 감광액은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소재다.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는 삼성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도 꼭 필요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이번 조치는 삼성의 미래 사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경고가 내포돼 있어 삼성으로서는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 최소화 하자”…동분서주 기업들 

국내 다른 정보기술(IT) 기업들도 해법 마련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SK하이닉스 등은 일본이 수출 규제한 소재의 대체선 확보 작업을 시작했다. 또 통관 조치가 강화하더라도 일본산 소재를 계속 공급받기 위해 일본 경제산업성이 요구하는 서류 준비에도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특히 국내 반도체 소재 수입 및 가공업체들은 ‘일본에서 수입한 소재를 무기 생산용으로나 일본의 적성국가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서약서까지 일본 거래처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반도체 소재 수입사 관계자는 “일본 거래업체로부터 반도체 소재 사용 목적 등을 상세히 기재한 서류를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규제 이전에는 생략됐던 절차다.

국내 기업들은 일본 현지 언론들이 오는 18일을 넘기면 수출 규제 조치가 더 강화될 것이라고 예측한 데 대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강제 징용 판결 문제 해결을 위해 ‘제3국에 의뢰해 중재위를 꾸리자’고 요구했고, 그 답변을 18일까지 달라고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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