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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바이크 설치” “난개발 안돼” 거제도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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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바이크 설치” “난개발 안돼” 거제도에 무슨 일이…

입력
2019.07.04 04:40
수정
2019.07.04 06:1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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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 가조도 개발사업 제자리

멍에ㆍ노루섬 토지 소유주인

박태준 전 명예회장 아들과 갈등

경남 거제 사동면 창호리 멍에섬과 노루섬 전경.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는 멍에섬과 노루섬을 ‘개발가능 무인도서’로 용도변경해 레일바이크를 설립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제공
경남 거제 사동면 창호리 멍에섬과 노루섬 전경.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는 멍에섬과 노루섬을 ‘개발가능 무인도서’로 용도변경해 레일바이크를 설립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제공

경남 거제 사등면의 성포항. 부둣가를 따라 횟집과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4㎞ 떨어진 곳에 성내조선기자재협동화공단이 있어서다. 공단은 조선협력업체들이 모인 곳이라 성포항도 덩달아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찾은 성포항은 점심 시간인데도 인기척 하나 들리지 않았다. 조선업 침체로 공단에서 들리던 ‘배 짓는 소리’도 뚝 끊겼다는 게 주민들 얘기다. 성포항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구모(46)씨는 “협력업체들이 살아나야 장사를 하는데 하루에 손님을 두 번밖에 못 받는 날도 허다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구씨는 “거제도 관광객을 늘리려면 가조도 개발사업이라도 술술 풀려야 하는데 잘 안 된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말했다.

가조도는 성포항과 다리로 연결된 섬이다. 거제시는 2015년 가조도에 딸린 멍에섬과 노루섬을 관광지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을 시작했다. 두 섬 해안선을 따라 길이 1,650m의 레일바이크를 설치하고 섬 가운데다 탐방로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4년째 사업은 진척이 없다. 멍에섬ㆍ노루섬 소유주와 토지 매수협의가 이뤄지지 않아서다.

[저작권 한국일보] 멍에섬 노루섬 관광개뱔계획 - 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멍에섬 노루섬 관광개뱔계획 - 송정근 기자

3일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에 따르면 가조도 개발사업을 둘러싼 거제시와 토지 소유주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시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소유주는 난개발에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소유주는 다름 아니라 2011년 별세한 ‘철강왕’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의 장남 박모(53)씨. 박씨는 ‘박태준의 아들’이란 점을 들어 은근히 압박하는 거제시 측 태도에 대해서도 강한 불쾌감을 토로했다.

가조도 개발사업의 목줄을 쥐고 있는 건 박씨다. 멍에섬ㆍ노루섬 전체 면적 1만5,544㎡ 가운데 39.9%(6,122㎡)가 박씨 소유다. 특히 멍에섬의 경우 전체 면적(9,515㎡)의 57.3%(5,448㎡)를 지니고 있다. 레일바이크, 탐방로 모두 박씨 협조 없인 만들 수 없다.

개발사업을 맡은 공사는 지난해부터 박씨를 접촉, 지난 1월 3억7,000만원의 가격을 제시했으나 “팔 생각이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공사는 또 멍에섬ㆍ노루섬을 ‘이용가능 무인도서’에서 ‘개발가능 무인도서’로 용도변경 중이다. 자연 그대로 이용하는 레저 활동만 허용된 섬을, 개발사업까지 가능한 섬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용도변경을 위해선 토지 소유주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박씨의 비협조로 이마저도 원활하지 못하다는 게 공사 측의 불만이다.

거제시가 가조도 개발 사업에 목을 매는 건 통영 등 주변 관광지로 빠져나가는 관광객의 체류 기간을 늘리기 위해서다. 지난해 3월 거제포로수용소에 거제관광모노레일을 설치하자 연간 관광객이 40만명에서 60만명 수준으로 늘었다. 지금은 80만명 수준까지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조선업 불황으로 거제 지역 실업률이 7.1%(지난해 10월 기준)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저작권 한국일보] 멍에섬 노루섬 토지 소유 현황- 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멍에섬 노루섬 토지 소유 현황- 송정근 기자

반면 박씨 측은 멍에섬ㆍ노루섬 개발계획 자체를 믿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씨는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특수목적법인(SPC) 지분 중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지분은 겨우 20%”라며 “민간 투자자를 대거 끌어들이는 바람에 투자금 회수를 위해 난개발을 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혹여 사업이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면 지역 주민들만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 주장도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공사는 지난해 9월 자본금 10억원 규모의 SPC를 설립하면서 2억원만 출자하기로 했다. 나머지 8억원은 홍익여행사 등 민간자본으로 채우고, 지분율에 따라 운영 수익을 나눌 예정이다. 거제시의 원래 계획은 경남도 예산을 끌어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홍준표 전 지사의 ‘재정건전화 정책’으로 투자 심사가 여러 차례 부결되자 민간자본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시민단체들도 박씨 우려에 힘을 더하고 있다. 원종태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케이블카, 모노레일 같은 시설을 설치하고 좀 지나면 사람이 끊기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면서 “레저시설로 주변 서비스업까지 낙수효과를 누릴 것이라는 것도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감시팀 부장도 “지역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사업 효과를 부풀리는 경우가 많아 꼼꼼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업 불황에 이은 무인도 개발 논란, 거제는 앓고 있었다.

거제=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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