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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아직도 신생아ᆞ산모 사망이 많은 이유

입력
2019.07.01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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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방갈로르의 판잣집 뒤로 민간 의료 센터가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인도 방갈로르의 판잣집 뒤로 민간 의료 센터가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손은? 씻었습니다. 심박 모니터는? 이상 없습니다. 필수품은? 준비되었습니다.” 전문의료인이라면 누구나 분만실에 들어서기 전에 거치는 일반적 절차다. 그러나 중ㆍ저소득 국가에서는 이 같은 기본절차가 누락돼 예방 가능한 환자들의 생명이 희생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분만실 담당 인력이 참고해야 할 점검표 작성이다. 2017년 인도 북부에서 수백만 달러를 들여 무작위 대조시험을 진행했는데, 세계보건기구(WHO)의 ‘안전 출산 점검표’ 사용과 교육에도 불구하고 신생아나 산모의 상황이 좋아지지 않았다.

출산 점검표를 사용하면 몇 가지 잠재적 이점이 있겠지만 높은 유아ㆍ산모 사망률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뒷받침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영국 의학저널 란셋에 따르면, 의료인에 대한 멘토링 등이 포함된 점검표와 같은 미시적 조치가 전 세계적으로 1차 진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전략의 72%나 차지한다. 이런 미시적 조치가 유아ㆍ산모 사망률을 낮추려는 노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부인하긴 어렵다. 하지만 의료인들은 일하는 방식을 바꿀 때, 특히 주변 상황이 도와주지 않는 경우 이미 손에 익은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미시적 조치로만 해결하려는 것은 제한된 시간과 자원을 소비하기 때문에 해로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세계 의료계가 출산 전후 의료의 질을 개선하려면 의료인이 필요한 단계를 밟지 못하는 근본적이고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다루기 위한 새로운 조치를 개발해야 한다. 그 첫 단계는 의료인이 필요한 단계를 밟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먼저, 의료인이 교육을 더 받기만 하면 해결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조사에 따르면, 간호사나 다른 의료인에게 관련 지식과 기술을 이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자신이 다루기 어려운 환자는 더 나은 시설을 갖춘 병원에 보내야 한다는 인식을 더 많은 간호사가 한다 해도, 항상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며 그런 교육의 효과가 지속되지도 않는다.

그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은 의료인의 지식과 행동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나와 동료들이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곳이자 출산 중이나 직후에 산모와 신생아 사망률이 미국보다 10배나 높은 우타르프라데시에서 하려는 일이다.

우리는 우타르프라데시에 위치한 치료소 20여 곳에서 수십 명의 간호사ㆍ직원과 심층인터뷰를 했다. 이를 통해 “의료인이 필요한 조치를 하지 못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이로써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지각적 추진 요인 (의료노동자의 두려움, 신념, 동기, 편견, 지각)과 상황적 추진 요인(환자와 가족의 요구, 의사의 태도, 병원 인프라, 프로세스) 등 두 가지다.

우리는 연구를 통해 우타르프라데시의 간호사들은 같이 일하는 의사에게서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며, 문제가 생기면 질책이나 처벌까지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게다가 환자 가족들은 간호사를 존중하지 않고, 간호사는 산모를 큰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고 권고해도 대부분 무시했다.

결과적으로 간호사들은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았고 자신이 겪을 수 있는 위험을 환자가 직면한 위험보다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이 때문에 간호사는 출산 과정에서 자신이 맡은 일에만 집중했고, 출산과 관련된 덜 급한 일은 내버려뒀다.

현장에서 그런 사례를 직접 목격했다. 한 간호사가 책상에 앉아 있는데, 뒷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출산한 젊은 산모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는 매우 말랐고 지쳐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는 산모의 모유 수유를 도와줘야 했다. 출산 후 바로 모유 수유를 하는 게 아이의 면역력을 높이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간호사에게 모유 수유의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그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했다. 산모의 모유 수유를 돕는 것은 간호사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기만 하면, 간호사는 손을 놓아 버린다. 그 결과, 산모와 아기 모두 중요한 치료를 받지 못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간호사를 탓하려는 게 아니다. 연구결과는 간호사가 업무를 잘 수행하려면 근무조건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병원은 간호사에 대한 징계보다 간호사의 업무를 도와주는 관리 역할에 중점을 둬야 한다. 간호사가 의사 등 다른 의료인과 협업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병원 관리자는 의료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환자와 가족이 의료를 통해 어디까지 기대할 수 있고 어떻게 의료인을 대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 출산 점검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의료인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어디나 똑 같은 건 아니다. 지역 연구를 통해 각 상황에 맞는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의료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세계보건프로그램은 많은 돈을 아끼고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시마 스가이어 미국 하버드대 조교수(공중보건학)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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