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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는 성매매 처벌 논쟁...뉴욕은 ‘완전 합법화’ 유럽 ‘매수자만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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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는 성매매 처벌 논쟁...뉴욕은 ‘완전 합법화’ 유럽 ‘매수자만 처벌’

입력
2019.06.20 17:36
수정
2019.06.20 19: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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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전면 합법화 국가인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 홍등가. 게티이미지뱅크
성매매 전면 합법화 국가인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 홍등가. 게티이미지뱅크

세계 곳곳에서 성매매 처벌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미국 뉴욕주는 이달 성매매 ‘완전 합법화’ 법안을 발의했다. 성매매 합법 국가로 가장 유명한 네덜란드에서는 역으로 매수자만 처벌하는 ‘스웨덴 모델’ 도입 요구가 커지고 있다. 국가 관리를 통한 ‘양지화’든, 매수자 처벌을 통한 ‘수요 근절’이든 성노동 여성에 대한 착취와 폭력을 막아야 한다는 입법 취지는 같지만, 그 실효성을 두고는 논쟁이 뜨겁다.

지난 10일 미국 뉴욕주 의원 5명은 성매매를 전면 합법화하는 법안을 상ㆍ하원에 발의했다. 18세 이상 성인의 성매수ㆍ성매매 모두를 처벌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다만 성매매를 강요ㆍ알선하는 경우나 미성년자 성착취는 여전히 처벌하도록 했다. 또 인신매매로 인해 성매매를 강요당했던 이들은 전과 기록을 삭제해줘 ‘낙인’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뉴욕뿐 아니라 이달 초 워싱턴DC 시의회에서도 비범죄화 법안이 발의됐고, 매사추세츠주와 메인주에서도 유사 법안을 논의하는 등 미국 곳곳에서 ‘성매매 비범죄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법안을 옹호하는 측은 합법화 시 성노동자들이 성범죄ㆍ폭력 등 위험 상황에 놓였을 때 더 적극적으로 신고할 수 있고, 또 경비원과 비상 단추가 갖춰진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성 단체와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우려 목소리가 높아 실제 법안 통과가 이뤄질지 여부는 예단하기 힘들다. 이들은 비범죄화가 인신매매와 이주민ㆍ빈민층에 대한 폭력과 착취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현재는 탈성매매를 한 활동가 멜라니 톰슨은 뉴욕 데일리뉴스 기고문에서 “성매매 종사자 대다수는 어린 시절 인신매매됐거나, 노숙하거나, 성적 학대를 받거나, 위탁 가정에서 자랐거나 혹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겪은 이들”이라면서 “이들이 18살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마법처럼 ‘동의한 성인’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법을 고치는 올바른 방법은 희생자가 아닌, 포주와 성매수자 처벌 법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실제 대서양 건너 유럽에서는 성매수자만 처벌하는 ‘스웨덴 모델(일명 노르딕 모델)’이 확산되는 추세다. 1999년 스웨덴이 처음 도입한 이후 20년간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캐나다, 프랑스, 아일랜드, 이스라엘, 북아일랜드 등이 채택했다. 최근에는 ‘성매매 완전 합법화’ 국가로 잘 알려져 있으며, 수도 암스테르담의 ‘홍등가’ 관광지로도 유명한 네덜란드에서까지 이 모델 도입을 논의하는 상황이다.

네덜란드의 성매매 처벌 논쟁은 기독교 청년 단체 익스포즈가 올해 4월 ‘노르딕 모델 도입’ 탄원서에 4만여 명의 동의 서명을 받자, 정치권이 오는 7월부터 정식 논의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익스포즈 리더 중 한 명인 나타스자 보스는 법안 취지에 대해 “스웨덴 모델은 성매수자와 포주를 모두 막음으로써 인신매매를 방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당국은 전체 성노동자 중 약 10%가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노르딕 모델’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성구매자 처벌로 인해 오히려 성매매가 음지화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스웨덴에서 2009년~2012년 유사 성매매 업소로 이용되는 태국식 마사지 업소가 수도 스톡홀름에서만 250개(종전 대비 3배가량)로 증가했다고 전했다. 또 프랑스에서 성노동자 500명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2016년 노르딕 모델 도입 이후 40%에 달하는 응답자가 자신의 가격 협상 및 콘돔 사용을 요구할 권한이 줄었으며, 90%가 노르딕 모델 법안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뉴욕의 완전 합법화 추진 목소리든, 네덜란드에서 추진되는 노르딕 모델이든 결국 목적은 성노동자들이 비착취적인 환경에서 안전하게 근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난 2016년 5월에도 국제앰네스티가 “성매매 범죄화는 성노동자의 인권 실현을 막는 장애물이라고 보기 때문에 성인 간 합의한 성노동의 모든 측면에 대한 비범죄화를 요구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혀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크게 인 바 있다.

다만 당시 앰네스티는 △성노동자의 보건과 안전을 도모하고, 상업적 성에 있어 모든 형태의 착취와 인신매매에 맞서기 위한 법과 정책으로 초점을 재조정해야 한다 △성노동자가 자신이 선택하고 원하는 때 성노동을 그만둘 수 있는 효과적인 틀과 서비스를 보장해야 한다 등 여러 단서 조항을 달았다. 성매수자의 권리나 포주의 재정적 이득에 대한 권리가 아닌, 성노동자들의 보호를 위해 비범죄화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명시한 것이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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