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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담] 김원웅 신임 광복회장 “김원봉은 독립운동으로 평가해야… 이후 행적 논란은 냉전적 사고”

입력
2019.06.20 20:0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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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대통령 광복군 언급에 친일세력이 기득권 잃을까 저항” 

 “유럽 지도층은 전장서 앞장서는데 우리나라는 가짜 보수가 판쳐” 

김원웅 광복회장은 “김원봉이 월북을 한 게 아니라 친일파가 들들 볶아서 쫓아냈다고 보는 게 맞다”며 “일장기를 흔들던 친일 세력이 지금도 외세에 빌붙어 성조기를 흔들며 낡은 이념 공세를 펴고 있다”고 했다. 홍윤기 인턴기자
김원웅 광복회장은 “김원봉이 월북을 한 게 아니라 친일파가 들들 볶아서 쫓아냈다고 보는 게 맞다”며 “일장기를 흔들던 친일 세력이 지금도 외세에 빌붙어 성조기를 흔들며 낡은 이념 공세를 펴고 있다”고 했다. 홍윤기 인턴기자

약산 김원봉. 한국사회에서 아직은 논쟁적인 인물이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주도한 독립무장단체 조선의열단 단장으로,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등 치열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항일 업적으로만 치자면 여느 독립운동가보다 높이 평가될 독립영웅이다. 그런데 해방 후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뺨을 얻어맞는 수모를 겪고 여운형의 피살을 목도한 뒤 월북했다. 그는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해 국가검열상과 노동상을 지내고 훈장까지 받았으나 1958년 김일성의 연안파 제거 때 숙청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를 계기로 김원봉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보수진영은 호국영령을 추념하는 자리에서 북한 정권의 고위직에 오른 김원봉을 치켜세운 건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반한다며 거친 이념 공세를 폈다. 청와대는 보훈처 규정상 김원봉 서훈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보훈처 규정은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 및 적극 동조한 것으로 판단되거나 정부수립 이후 반국가 활동을 한 경우 포상에서 제외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광복회 등 민간 단체가 김원봉 서훈을 위한 법 개정에 나설 방침이어서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올해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자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이다. 7일 제21대 광복회장에 취임한 김원웅(75) 회장을 만나 김원봉 논란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그는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 회장이기도 하다. 3선 의원 출신인 김 회장은 조선의열단의 후신인 조선의용대(1938년 김원봉 등이 주도해 만든 독립운동부대) 김근수 지사와 광복군 전월선 여사의 장남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부모의 결혼을 주선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현충일 추념사에서 “광복군에는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 통합된 광복군은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고,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라는 대통령 인식에 동의하나.

“국군의 뿌리는 독립군 토벌대인 ‘간도특설대’다. 일제는 조선인을 활용해 조선독립군을 다스리는 정책을 썼다. 간도특설대는 일제가 항일무장부대를 공격하기 위해 조선인 중심으로 조직한 특수부대다. 실제 친일파가 일본인보다 훨씬 더 능란하게 조선인을 다뤘다. 광복 후 미군정은 민족주의자들이 집권하면 골치가 아플 것으로 여겼다. 일제에 충성했던 친일파를 기용해야 미국에도 충성을 다할 것으로 기대했다. 간도특설대와 만주군 출신이 국군의 중심을 이뤘던 배경이다. 문 대통령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광복군이 국군의 모태가 됐다고 언급한 것은, 국군의 명예를 우선시한 눈물겹게 애처로운 애국심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김원봉의 항일 업적에 대해서는 좌우를 떠나 국민 모두 인정하고 있다. 다만, 정부 수립 이후 행적이 북한을 이롭게 했고 아직도 북한이 적대적 행위를 지속하는 상황에서 그에게 훈장을 주는 게 맞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항일 업적과 그 이후의 행동은 분리해서 평가해야 하지 않나.

“지금은 민족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자기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반도 분단은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외세에 의해 이뤄졌고 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분단은 극복돼야 한다. 강대국 이해에 놀아난 전쟁을 놓고 끊임없이 적대시하면 한반도 평화는 요원하다. 친일 세력은 광복 이후 줄곧 외세에 빌붙어 분단 체제에 기생하며 민족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기 기득권을 지키는데 혈안이 돼왔다. 분단 극복을 얘기하면 무조건 빨갱이, 좌파라고 공격하며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왜곡하고 건국절 논란을 촉발한 것도 이런 반민족적 역사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김원봉의 항일 업적에 대한 서훈은 그가 광복 이전 일제 식민지배 시절 독립운동에 기여했는지 여부로 평가해야 한다. 광복 이후의 행적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냉전적이고 갈등적인 사고방식이다. 학교에서 개근을 하면 성적이랑 관계없이 개근상을 준다. 김원봉 서훈도 마찬가지다. 독립운동기간의 활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6ㆍ25 전사자를 추도하는 현충일에 김원봉을 거론한 것은 시점과 장소가 모두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있다.

“현충일은 6ㆍ25 전사자만 추도하는 날이 아니다. 첫 번째 추도 대상은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다. 우리가 묵념할 때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위해 머리를 숙이지 않나. 그다음이 한국전쟁과 월남전에서 목숨을 바친 국가유공자다. 광복군의 정신적 지주는 조선의열단이었다. 문 대통령은 우리 국군이 조선의열단과 광복군을 계승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좌우를 뛰어넘는 애국 정신을 부각하기 위해 조선의열단 단장을 지낸 김원봉을 언급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정체성 운운하며 반발하는 것은 낡은 이념 공세일 뿐이다.”

-현행 규정상 김원봉 서훈은 불가능한데.

“법을 개정해 보훈처 규정을 바꾸지 않는 한 어려운 게 사실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주요 정당이 관련 법 개정을 공약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시민단체들과 연대할 생각이다.”

-이미 서훈이 주어져 현충원에 안장된 인사 중 뒤늦게 친일 행적이 드러나 이장 문제가 불거진 경우도 있는데.

“서울과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인사들 중 63명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다. 일본 정치인들을 만나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단하고 과거청산에 진심을 보여달라’고 호소하면, ‘서울 국립묘지에 가봤더니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전범의 졸개들이 잔뜩 묻혀 있더라. 한일합방은 조선인의 행복이라는 사설을 쓴 신문을 한국인들이 가장 애독하지 않느냐. 너희는 과거청산 하지 않으면서 왜 우리한테만 하라고 그러냐’며 비아냥거린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우리가 일본에 과거청산을 요구할 자격이 있는 건지 의문이다. 앞으로 친일파, 반민족행위자의 현충원 안장을 법으로 금지하고 이미 안장된 인사들도 이장할 수 있도록 가족에게 권유해야 한다.”

-보수진영은 문재인 대통령의 치우친 역사 인식이 편가르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동의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이 조선의열단과 광복군의 항일 투쟁을 강조한 것은 편가르기가 아니라 비뚤어진 역사인식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친일 반민족 세력이 70년 넘게 누려온 기득권을 잃을까 두려워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고 억지 논리를 내세워 저항하는 것이다.”

-독립운동사에서 그간 소홀히 취급돼 온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무장투쟁을 재평가하는 문제도 이념 논쟁으로 흐르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렇지 않다. 진실의 힘이라는 게 있다. 지금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편향된 교육 탓에 왜곡됐던 역사인식이 점차 바뀌어가는 과도기라고 본다. 그 과정에서 기득권을 가진 친일 세력이 저항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왜곡된 역사인식을 방치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의 이념 갈등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친일 세력의 저항이 두렵다고 역사의 진실을 덮을 수는 없다.”

-광복회장 취임 일성으로 ‘친일 청산’을 강조한 걸로 안다.

“광복절 행사 때 단상에서 박수 받는 사람은 친일파이고 아래에서 박수 치는 사람은 독립군이거나 그 후손이라고 보면 된다. 3선 의원을 했는데 국회에 처음 입성하니 친일파 후손이 가득했고 독립운동가 후손은 단 2명이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엄연한 현실이다. 대한민국 성인 남성 중 군대에 안 간 경우는 2% 정도다. 그런데 연평도 사건 때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지하벙커에 긴급 소집한 회의 참석자 면면을 봐라. 18명 중 군필자는 2명에 불과했다. 유럽의 사회지도층은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전장으로 달려간다.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다. 서민들보다 전사자 비중이 훨씬 높은 이유다. 이게 진짜 보수다. 이승만 박정희 등 친일 세력이 키워온 보수는 국가가 어려워도 자기 목숨만 챙기려 하는 ‘가짜 보수’다. 일제 때 일장기를 흔들던 세력이 지금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외세에 빌붙어 ‘기승전 한미동맹’만 강조하고 전시작전권도 미국에 갖다 바치려는 그런 보수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북한뿐 아니라 남한도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일제 식민지배에 적극 협력했던 친일파가 지금은 미국을 등에 업고 온갖 기득권을 누리면서 정상국가 만드는 걸 방해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최근 ‘6ㆍ25 영웅’으로 불리는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예방한 데 대해 ‘국가정체성을 부인하고 항일독립정신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는데.

“백선엽은 간도특설대 출신이다. 중국 정부 발표에 따르면, 간도특설대의 주 무대인 중국 연변지역에서만 항일 운동가 3,12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85%가 조선인이었다. 백선엽을 ‘영웅’이라고 하면 간도특설대의 총칼에 목숨을 잃은 독립투사들은 어떻게 되나. 백선엽이 ‘6ㆍ25 영웅’ 대접을 받으려면 최소한 광복 이전의 친일 활동에 대해 참회나 반성을 해야 했다. 하지만 백선엽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참회나 반성을 하지 않았다.”

인터뷰=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정리= 변한나(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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