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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노작가의 답…조정래 ‘천년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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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노작가의 답…조정래 ‘천년의 질문’

입력
2019.06.13 18:36
수정
2019.06.13 19:2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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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정래가 1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장편소설 '천년의 질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설가 조정래가 1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장편소설 '천년의 질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부패지수 전 세계 180여개국가 중 58위. 국가별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낸 지니계수 0.355.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는 숫자에 가려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이 같은 수치는 오랫동안 노작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분배보다 축적이 중요한 시기”라는 시대 논리에 매몰돼 단 한번도 평등에 대해 제대로 얘기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 역사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써왔던 조정래 작가의 신작 ‘천년의 질문’은 이 같은 책임의식 아래 쓰여진 장편소설이다. 자본과 권력에 휘말려 정작 인간이 소외된 현 상황을 되돌아보고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지 물은 후 “진정한 국가의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지” 답한다.

소설은 재벌그룹의 사라진 비자금 장부를 중심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장부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해관계를 지렛대로 자본과 권력을 향한 현대인의 욕망을 들춰낸다. 오랫동안 비자금 사건을 추적해온 열혈 기자, 그의 주변 인물을 매수해 어떻게든 취재를 무마하려는 기업, 강사법 이후 일자리를 잃을까 고뇌하는 시간강사, 잇속을 챙기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하는 국회의원 등의 사연이 이어지며 이야기는 전진한다. 서울대 출신 수재로 한때 회사를 위해 헌신했지만 결국 비자금 장부를 들고 잠적한 재벌가 사위까지 등장하며 인물관계는 복잡해진다. 소설은 비자금 장부를 찾으려는 자와 감추려는 자, 악용하려는 자 등의 물고 물리는 추격전을 통해 정경유착과 비정규직 문제, 양극화 심화 현상을 짚으며 사회 문제 전반을 아우른다.

/천년의 질문(전 3권)

조정래 지음

해냄 발행ㆍ각 416쪽ㆍ각 1만 4,800원

소설에 등장하는 부패한 인물 군상과 사건은 현실에서 논란이 됐던 사건들을 적극 반영됐다. 국민을 ‘개돼지’라고 조롱하는 공무원, ‘국민은 레밍 무리다’고 비하하며 외유성 해외출장을 다녀오는 국회의원,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와 비정상적 자문계약을 맺은 재벌그룹, 신년마다 재벌에게 문안 문자를 꼬박꼬박 보내며 무한 충성 줄서기를 하는 언론사 간부들이 등장한다. 한번쯤은 뉴스를 통해 접했을 현실이기에, 소설이 소설로만 읽히지 않아 씁쓸하다.

조 작가가 꾸짖는 것은 소설 속 부패한 인물들만이 아니다. 조 작가는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것”이라며 “권력의 부패와 횡포를 막는 것은 국민의 책임이자 존재의미”라고 일침을 가했다. “국민 한 명 한 명이 10~20개 시민단체에 매달 1,000원씩 내서 권력을 감시하는 사회가 꿈”이라는 조 작가에게, 결국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국민에게 달렸다’라는 뜻으로 읽힌다. 소설에서는 구체적으로 스웨덴 국회 같은 북유럽 국가 모델이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이 역시 촛불을 들고 직접 광장에 나섰던 1,700만 국민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하고 강조한다.

한국나이로 올해 77세. 200자 원고지 3,612매 분량의 작업과 130여권의 취재수첩, 매일 11시간의 집필시간은 문학에 대한 조 작가의 열정이 사그라질 기미 없이 왕성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기자, 정치인, 법조인, 기업가 등 다양한 직업의 인물을 생생하게 그려낸 것 역시, 각계각층의 인사를 직접 만나고 심층 취재하는 수고를 마다 않은 결과물이다. 그는 이례적으로 출간 전 오디오북을 통해 다양한 독자들과 만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며, 이전 세대의 낡은 유산으로 남는 것도 거부한다. “책상에서 글 쓰다 엎드려 죽는 것이 소망”이라는 조 작가의 다음 작품에는 내세와 인간 영혼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숙고가 담길 예정이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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