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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유람선 참사] “우리 슬픔이 전해지길” 다뉴브 강물 적신 ‘추모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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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유람선 참사] “우리 슬픔이 전해지길” 다뉴브 강물 적신 ‘추모 아리랑’

입력
2019.06.04 05:25
수정
2019.06.04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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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헝가리 부다페스트 머르기트다리 위에서 허블레아니호 침몰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아리랑 함께 부르기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부다페스트=김진욱 기자
3일 오후 헝가리 부다페스트 머르기트다리 위에서 허블레아니호 침몰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아리랑 함께 부르기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부다페스트=김진욱 기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해가 7시간 늦게 솟는 이국의 강물 위로 익숙한 가사와 선율이 흘렀다. 다리 위에 몰린 인파는 인도를 가득 메워 차도까지 내려섰지만, 경적을 울리며 방해하는 차량은 없었다. 영문을 모른 채 다리를 지나던 시민들은 자초지종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거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무심하게 흐르는 다뉴브강 위로 ‘추모 아리랑’은 그렇게 몇 차례나 이어졌다.

헝가리 아마추어 합창단 ‘치크세르더’(Csíkszereda) 소속 합창단원들과 헝가리 시민들은 현지시간으로 3일 오후 6시 30분쯤 허블레아니(인어)호 침몰 현장 부근인 머르기트 다리에 모여서 아리랑을 합창했다. 이날 행사 일정이 공지된 ‘헝가리안-코리안 그룹’ 페이스북 페이지에 ‘꼭 참석하겠다’는 의사을 밝힌 이들만 400여명. 머르기트 다리를 가득 메운 인파는 허블레아니호 참사를 추모하며 아리랑을 합창했다.

이날 플래시몹 1시간 전에 한국 정부합동신속대응팀 구조대는 최초로 벌인 수중 수색에서 한국인 여성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를 수습했다. 수중 수색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이슬비가 내렸고 빗줄기 사이로 모여든 인파는 강물을 바라보고 노래를 시작했다. 치크세르더 소속으로 1년 전에도 부다페스트 군역사박물관에서 ‘미사 아리랑’을 합창했던 에바 베르토(61)씨는 손바닥만 한 종이에 인쇄한 아리랑 악보를 시민들에게 부지런히 나눠줬다. 베르토씨는 “작년 콘서트에서 불렀던 아름다운 아리랑 선율에 이번 참사에 대한 슬픔을 담아서 같이 부르기 위해 모였다”고 말했다.

3일 오후 헝가리 부다페스트 머르기트다리 위에서 허블레아니호 침몰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아리랑 함께 부르기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부다페스트=김진욱 기자
3일 오후 헝가리 부다페스트 머르기트다리 위에서 허블레아니호 침몰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아리랑 함께 부르기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부다페스트=김진욱 기자

헝가리 시민들은 지휘자 손짓에 맞춰 허블레아니호가 대형 유람선 ‘바이킹 시긴’호에 들이받힌 후 침몰한 자리를 일제히 바라보며 후렴을 따라 불렀다. 2시간 30분이 넘게 걸리는 세르비아 국경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부터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부다페스트에 거주하는 이들까지 구성은 다양했지만 마음은 같았다. 치크세르더 소속으로 크로아티아 출신인 레카 발카이(29)씨는 “허블레아니호 침몰은 다신 있어선 안될 끔찍한 참사”라며 “애도를 표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마틴 디네쉬(19)군은 이날 학교를 마친 후 교과서를 들고 머르기트 다리를 찾았다. 디네쉬군은 “뉴스가 터지고 처음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영문을 몰랐다”며 “한국인들에게 정말 미안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디네쉬군은 전날 플래시몹 소식을 듣고는 유튜브를 통해서 아리랑 선율을 공부했다.

3일 머르기트 다리를 찾아 아리랑을 합창한 에바 블레네시 부다페스트 코르비누스 대학 교수. 홍인택 기자
3일 머르기트 다리를 찾아 아리랑을 합창한 에바 블레네시 부다페스트 코르비누스 대학 교수. 홍인택 기자

시민들을 한 자리로 모은 것은 참사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한국인 친구가 선물해준 책을 들고 다리를 찾은 에바 블레네시 부다페스트 코르비누스 대학 교수는 “우리는 관광객들을 손님을 맞이했던 입장에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며 “이는 단순히 우리 국가의 이미지가 손상된다는 차원이 아니라, 두 국가의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공존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기획한 아르파드 토트(36) 치크세르더 음악 감독은 “한국의 상징과도 같은 아리랑을 함께 불러 위로를 전하고 우리가 느끼는 슬픔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계명대 초빙교수이기도 한 토트 감독은 “8년간 한국을 오가며 특별한 정을 쌓았기에 이번 참사가 더욱 슬펐다”고도 말했다.

부다페스트=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부다페스트=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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