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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시인 “한국사회는 절규사회… 귀 기울여야 사회가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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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시인 “한국사회는 절규사회… 귀 기울여야 사회가 진보”

입력
2019.06.04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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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시인의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에는 13년간 쓴 글이 담겼다. 심 시인은 “불우한 시대가 나이 들며 보수화되는 것을 오히려 막아줬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심보선 시인의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에는 13년간 쓴 글이 담겼다. 심 시인은 “불우한 시대가 나이 들며 보수화되는 것을 오히려 막아줬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그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시를 쓸 수 없었다. 대신 경기 안산지역을 순례하는 거리연극제 ‘안산순례길’에 올랐다. 매년 봄이 되면 안산의 주택가를, 공단을, 바닷가를, 그리고 분향소가 있던 화랑유원지를 다른 이들과 함께 걸었다. 2011년 용산참사 2주기 행사가 열린 서울역 광장에서는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시를 지어 읊었다.

스스로를 “최선을 다해 듣고 말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하는 심보선(49)시인이 신작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를 냈다. 책은 그가 “세계를 부각시키고, 세계와 연루되고, 세계에 참여한” 글을 모은 것이다.

등단 25년 만의 첫 산문집이다. 2007년부터 2019년까지의 긴 시간이 책 한 권에 담긴 만큼 글을 관통하는 한 가지 주제를 집어내기는 어렵다. 서울대 사회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회학자의 ‘좌뇌’와, 베스트셀러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초’를 써낸 시인의 ‘우뇌’가 적절히 배합된 결과물이다. 세월호 참사, 쌍용차 해고자 문제,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망 사고 등 사회 현안 한가운데서 연대하고 활동하며 이를 글로 풀어내왔던 심 시인의 발자취가 담겼다.

제목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은 책에서 끊임없이 타인의 자리인 ‘그쪽’의 안부를 묻는다. 최근 그가 교편을 잡고 있는 연세대에서 만난 심 시인은 “나에게 글쓰기란 어떤 종류이건 간에 상관없이 타인에게 말을 거는 행위“라고 말했다. “사회학자와 시인의 정체성이 제 안에서 분할돼 있는 건 아니에요. 글이란 건 항상 회색지대가 있으니까요. 단, 제 산문은 늘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가 공존을 해요. 초기 시에서도 늘 누군가의 대화를 듣는다거나 관찰자가 등장하죠. 그건 사회학자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겠죠. 그걸 어떻게 풀어내느냐의 차이일 뿐.”

심보선 시인이 2015년부터 참여해오고 있는 '안산순례길'은 망각에 저항하고 기억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취지 아래 예술가들이 함께 안산의 곳곳을 함께 걷는 거리연극제다. 안산순례길 개척위원회 제공
심보선 시인이 2015년부터 참여해오고 있는 '안산순례길'은 망각에 저항하고 기억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취지 아래 예술가들이 함께 안산의 곳곳을 함께 걷는 거리연극제다. 안산순례길 개척위원회 제공

심 시인이 볼 때 한국사회는 ‘절규하는 처절사회’다. 고통스럽고 두려운 상황에 홀로 내던져졌을 때, 그러나 출구는 보이지 않을 때 터지는 것이 절규라면, 절규는 처절사회의 현상이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꼭 절규하는 장면이 나와요. 노래방에 가서 하는 노래도 일종의 절규죠. 한국사회는 절규와 절규의 싸움이에요. 그런데 이 절규가 ‘공통의 절규’가 될 때, 그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집단의 목소리가 될 수 있어요. ‘공통의 절규’가 ‘공적인 절규’가 되는 거죠.”

심 시인이 꿈꾸는 것은 ‘절규의 연대’다. 절규가 혼자만의 악다구니가 아닌 타인을 향할 때, 그리고 그 절규에 귀 기울일 때 사회는 진보한다고 믿는다. 2012년 심 시인이 기획한 ‘소리연대’ 역시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는 연대의 일환이다. 지상과의 소통 창구라고는 휴대폰뿐인 고공농성 노동자들을 위해 시민들이 자신의 육성을 스마트폰 어플에 녹음했다. 어떤 연대자는 편지를, 어떤 연대자는 책의 구절을 읽어 하늘로 올려 보냈다. 심 시인은 “연대는 누군가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공감을 통한 타인의 연결”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의 75m 높이 굴뚝에서 농성하던 파인텍 노동자들이 426일만에 땅으로 내려왔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9년 만에 복직했고, 4,464일간 거리투쟁을 벌여오던 콜텍 노동자들도 13년만에 복직했다. 그러나 심 시인은 “정권이 바뀌어도 삶의 고통이 바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몇몇 작업장에서 어떤 문제가 해결될 수는 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노조에 대한 인식과 처우는 개선된 것이 없어요. 노사협상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의 질, 조직문화 전반이 바뀌어야 합니다.”

심 시인이 최근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연구주제는 ‘예술가들’이다. “예술 및 학문과 사회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예술가는 노동자인가” 등의 질문이 오래 전부터 나왔지만 이에 대한 답변은 신통치 않았다고 본다. “예술가들이 할 일도, 고민도 되게 많거든요. 예술가들의 작업, 생활, 정체성, 먹고 사는 것, 관계 맺음, 사회적 인식 등 예술가들의 모든 것에 대해서 연구해볼 생각입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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