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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마블월드

입력
2019.05.28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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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한 지난달 24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관객들이 마블 기획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한 지난달 24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관객들이 마블 기획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마블의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관객 수 1,300만을 넘었다는 뉴스를 봤다.

이로써 어벤져스는 시리즈 3편 연속 1,000만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나 역시 기록 경신에 한몫했다. 극장이라고는 가지 않던 내가 아이맥스관을 찾아가 관람을 했으니까. 영화는 무려 세 시간이 넘었지만 지루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영화만이 아니었다. 관람을 마치고 극장을 나서는 내 앞에는 마블 캐릭터들의 피겨와 장난감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이를 사려는 마니아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캡틴 아메리카의 문장이 새겨진 휴대폰 케이스를 보며 그야말로 마블월드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할리우드의 상술에 다시 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처음 마블을 접한 건 초등학교 때다. 당시 한국의 공중파에는 3개의 한국 방송 외에 미군방송(AFKN)이 있었다. 미군방송은 주말 아침이면 어김없이 애니메이션을 편성했는데, 그 중 마블의 히어로물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지금도 기억난다. 원색 유니폼과 방패를 든 캡틴 아메리카가 적을 물리치고 외치던 구호들이. 돌이켜보면 마블의 만화는 솔직히 유치한 수준이었다. 간단한 권선징악을 다루고 있었고 캐릭터도 단순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 히어로들이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것일까.

거기에는 할리우드의 엄청난 기술력도 한몫했지만 저변에는 관객을 이끌어가는 탄탄한 스토리가 버티고 있다. 반세기 전 만들어진 유치한 내용을 관객이 넋을 잃고 보게 만드는 이야기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 만드는 기술은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작가로서 감탄을 자아낼 때가 있다. 한마디로 그들은 어떻게 하면 관객을 즐겁게 하는지, 주머니를 열게 만드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100년 노하우를 바탕으로 시나리오 공식까지 만들었다. 그 공식은 철저히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추구하고 있으며 모든 상업영화가 이를 따른다. 그들의 상업공식을 보면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창작물을 재단하듯 공식화한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할리우드는 그 공식을 적용해 100년간 세계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영화가 성공하면 만화, 드라마, 그리고 수많은 캐릭터 상품들을 출시하여 상업성을 극대화한다. 그런 예는 마블 이전에도 수없이 많았다. 스타워즈, 디즈니, 터미네이터 등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할리우드는 영화라는 창작물을 철저히 산업으로 생각하고 완벽하게 상업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영화가 산업으로 자리 잡은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에디슨과 함께 영화를 발명했던 뤼미에르의 나라 프랑스마저도 영화산업이 붕괴 직전이다. 대체 이유가 뭘까. 물론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할리우드의 철저한 상업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며 수백억 원의 제작비를 철저히 관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쓴다. 영화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 산업이다. 한 나라의 산업이 자리를 잡으려면 자본의 선순환구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건 관객이다.

얼마 전 한국 영화계에 놀라운 뉴스가 전해졌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이다. 이는 침체된 한국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경사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 한국영화의 저력을 보여준 쾌거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 영화계에 마블과 같은 상업성 있는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그래서 한국 영화계가 할리우드와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산업으로 자리 잡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장용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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