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해외 석학 칼럼] 노트르담 대성당 VS 생명의 가치

입력
2019.05.20 04:40
29면
0 0
20일 프랑스 보르도에서 ‘노란 조끼’ 시위가 열린 가운데 한 시위 참여자가 ‘프랑스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는 노트르담 성당의 재건만이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파리=AFP연합뉴스
20일 프랑스 보르도에서 ‘노란 조끼’ 시위가 열린 가운데 한 시위 참여자가 ‘프랑스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는 노트르담 성당의 재건만이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파리=AFP연합뉴스

850년 된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끝난 지 24시간도 안돼 복구를 위한 기부금이 10억 유로(한화 1조3,400억원)를 넘어섰다. 대부분 프랑스 최고 부호들이 기부한 것이다. 프랑스 전문가들은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축 비용을 모금액보다 훨씬 적은 300만~600만 유로로 추정했다.

프랑스의 노란조끼(gilets jaunes) 시위대는 벌써부터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부호들의 태도에 불만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부자들이 건물 하나를 복원하는 데 가볍게 10억 유로를 쓸 정도면, 다른 좋은 일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즉,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10억 유로를 쓸 수도 있었다. 여기서 불편한 질문에 답을 해보자.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의 가치를 생명으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대부분 비교 불가라고 하겠지만, 비교를 못하면 무엇이 최선인지 알 수 없다. 이에 대한 답변이 단순할 순 있어도, 더 나은 답을 위한 시작점은 된다.

노트르담을 복원해야 하는 이유는 당연히 연간 1,200만 명의 관광객에게 기쁨을 주는 심미적 문화적 기념물이기 때문이다. 관광객마다 평균 3시간 정도 방문한다 치면 연간 4,500년의 방문 경험이 된다. 관광 후에도 노트르담의 추억을 생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고, 이를 얼추 방문 경험과 같다고 보면 매년 9,000년의 방문 경험을 창출하는 셈이다.

이것을 생명으로 환산하면 어떻게 될까? 노트르담을 방문하거나 노트르담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두 배 더 행복하게 만든다고 가정해보면, 한 시간 더 노트르담에 머물거나 그에 대한 회상을 하는 것이 목숨을 한 시간 연장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 60여년 산다고 할 때, 매년 9000년의 혜택은 연간 150명의 생명을 구하는 것과 같다.

이것도 많긴 하지만, 10억 유로로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노란조끼의 주장과 별도로, 이 돈을 프랑스에서 쓰지 않고 저소득국가의 극빈층을 돕는 것만으로도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고 경제적 어려움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자선단체 평가기관으로 유명한 기브웰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최상위 자선단체 중 하나이며 말라리아가 유아사망의 주원인인 저소득 국가에서 침대 모기장을 배포하고 있는 말라리아예방재단(Against Malaria Foundation)은 약 3,500유로로 한 명의 생명을 구한다고 한다. 10억 유로면, 기브웰 기준으로 150명보다 훨씬 많은 28만5,000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노트르담 기부의 옹호자들은 복원되는 노트르담이 수세기 동안 관광객에게 혜택을 주는 데 비해 생명을 구하는 일은 이 세대에만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재 노트르담이 850년 되었으므로, 복원 후 다시 복원하기까지 850년이 걸릴 거라고 보고, 어디까지나 논의를 위해 사람들이 미래에도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생명을 살리는 데 관심이 있을 거라 가정해보자. 그러면 결과적으로 복원이 13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는 데, 이렇게 해도 저소득 국가 사람들이 말라리아를 피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조직에 기부하는 것이 노트르담을 복원하는 것보다 두 배 이상 낫다.

이마저도 복원된 노트르담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것일 게다. 복원하지 않기로 하는 경우는 고려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노트르담을 복원하지 않으면, 관광객들은 어떻게 할까?

대다수 관광객이 매년 1,000만명이 방문하는 몽마르트르의 사크레쾨르 대성당이나 관광객 800만명을 기록한 루브르박물관 같은 파리의 다른 명소로 갈 것이다. 아니면 런던타워나 타지마할 같은 다른 나라의 명소로 갈 수도 있다. 이런 장소로 가도 아마 사람들은 노트르담만큼은 아니어도 비슷한 수준의 관광을 여전히 즐길 것이다. 노트르담 방문의 가치는 관광객들이 노트르담보다 못한 관광지와 비교해 느끼는 잉여기쁨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경이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런 가치가 그리 커 보이지는 않는다. 노트르담이 주는 진정한 혜택은 850년의 역사를 감안해 13만명의 생명을 살리는 것으로 추정한 것의 10%에 불과할 것이며 생명을 구하는 최상급 자선단체가 성취할 수 있는 선(善)의 20분의 1 미만일 게다.

노트르담의 상징적인 탑은 이 석조건물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건재하다. 10억 유로의 돈을 기부한 부자들이 모두 마음을 바꿔 빈곤층을 돕기로 했고, 결국 노트르담을 복원하지 못해 폐허로 남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노트르담은 파르테논, 포로로마노, 앙코르와트와 같은 폐허 관광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고대 폐허 관광지가 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국민이 건물의 복원 대신 사람의 생명을 선택했다는 것을 모두에게 상기시켜주는 상징이 될 것이다.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교수

마이클 플랜트 옥스포드대 윤리학 박사과정

ⓒProject Syndicat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