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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면접장서 “남편 직업 뭐냐”… 두꺼운 상아탑 ‘유리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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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면접장서 “남편 직업 뭐냐”… 두꺼운 상아탑 ‘유리천장’

입력
2019.05.11 04:40
수정
2019.05.11 13:5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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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박사 비율 37% 넘었지만 교수 직함은 4명 중 1명 불과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비슷한 실적이면 남성 박사를 선호하는 건 대학 사회에선 ‘상식’이에요.” 경남 지역 여러 대학들에서 역사학 강사로 일하는 제연정(가명ㆍ47)씨는 본인은 물론 주변 여성 박사 동료들이 교수 임용에서 미끄러진 일들을 담담하게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시간강사를 하는 여성 동료들은 늘어나는 데 교수가 된 경우는 못 봤다고 했다. 제씨는 “누구도 드러내고 차별하지 않지만 박사학위를 받고 8년 넘게 일해보니 유리천장이 확실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논문 실적 등이 오히려 떨어지는 남성 박사들이 교수가 됐다는 소식도 이제는 놀랍지 않다.

5년 전 국내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한소연(가명ㆍ40)씨도 같은 생각이다. 그간 지방대 교수직 문을 꾸준히 두드렸지만 열리지 않았다. 면접 때마다 항상 듣는 질문은 연구실적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남편 직업은 무엇이냐’다. 한씨는 면접 전엔 ‘남편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지만 지점이 있기 때문에 인사발령을 받을 수 있고 시댁이 이 지역에 있어서 내려오기로 했다’는 식의 구구절절한 답변을 미리 준비한다. 한씨는 “지방대 특성상 해당 지역에 거주할 의사가 있는 교수를 뽑고 싶은 취지는 알겠지만 그냥 거주할 의향이 있냐고 물으면 되지 않느냐”며 허탈하게 웃었다. 면접자가 남성이라면 아내 직업이 뭐냐고 묻진 않을 거라는 얘기다.

여성 박사들에게 유리천장은 견고했다. 여성 교육권 보장이 보편화되면서 지난해 국내 박사 학위 취득자 중 37.8%가 여성이지만 이들이 교수로 임용되기까지 넘어야 할 문턱은 높다.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한 여성 박사들은 이런 현실에 공감하면서도 “물론 내 실력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누구나 교수가 되긴 어렵지만”과 같은 단서를 항상 달면서 답했다. 투명하지 않은 채용 과정에서 본인이 왜 탈락했는지 객관적 자료가 없기 때문에 자칫 본인이 남 탓만 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우려해서다. 하지만 박사학위 취득자와 교수 현황은 ‘교수 유리천장’ 존재에 대한 이들의 심증을 뒷받침했다.

국내 박사학위 및 대학 교수 중 여성 비율. 그래픽=박구원 기자
국내 박사학위 및 대학 교수 중 여성 비율. 그래픽=박구원 기자

◇국내 여성 박사 10명 중 4명, 교수는 10명 중 1명 뿐

박남기 광주교육대 교수와 박효원 성균관대 학생성공센터 선임연구원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여성연구(2019년 1호)에 기고한 ‘국공립대 여성교수 현황 분석 및 비율확대 방안 탐색’에 따르면 지난해 국공립대와 사립대 교수(교수, 부교수, 조교수 포함) 중 여성은 4명 중 1명(25.9%)꼴이다. 국공립대는 16.4%로 사립대(28.6%)보다 낮다. 2011년(21.8%)부터 꾸준히 여성 교수 비율이 증가했지만 박사학위 취득자 여성 비율에 비하면 적다. 국내 박사학위 취득자 중 여성 비율은 2009년 30.1%로 처음 30%대로 진입한 후 2011년에는 31.7%로 올랐고 지난해에는 37.8%를 기록했다. 외국 박사학위 취득자(37%, 2016년)도 비슷한 수준이다.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교수 임용까지 약 5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가정해 비교해도 차이가 난다. 여성 국내외 박사학위자 비율은 2012년 34.9%였는데 2017년 여성 교수 비율은 25.2%에 그쳤다. 물론 갈수록 여성 임용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이다. 박효원 연구원은 “여성 박사 학위자가 늘어나고 있으니 여성 교수 비율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겠지만, 대학 자율에만 맡겨두면 그 속도가 느려 불합리한 차별은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해 전국 대학(4년제 기준) 368곳이 대학알리미를 통해 처음 공시한 신규 전임교원 성별 현황(2017~2018년 기준)을 보면 총 4,419명 중 32.5%가 여성(1,436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전체 교수 중 여성 비율(25.9%)을 감안하면 이전과는 달리 여성 교수 임용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고 정년보장이 될 확률이 높은 교수직에서 여성 채용 비율(13.8%)은 신입사원 격인 조교수직의 여성비율(34.6%)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여성 박사학위자 비중이 절반이 넘는 학과마저도 여성 교수 비율은 50%를 넘는 곳이 없다. 교육계의 경우 2012년 여성 박사학위자 비율이 64.9%였는데, 2017년 여성교수 비율은 48.8%에 그쳤다. 예체능계(여성 박사 비율 57.7%, 여성 교수 비율 35.4%)와 인문계(47%, 33.1%)도 비슷하다.

수도권 대학에서 어문계열 시간강사로 일하는 민지성(가명ㆍ41)씨는 “강의를 나가는 학교에는 교수 7명 중 여성이 1명뿐인데 비해 시간 강사는 12명 중 11명이 여성”이라며 “어문계열은 확실히 여성 박사가 많은데도, 학과 당 여성 교수가 2명인 대학조차 찾아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성악을 전공한 박희연(가명ㆍ47)씨는 여대 교수진도 남성으로 채워진 상황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악기 전공도 아니고 성악의 경우 사람의 몸이 악기인 셈이기 때문에 남녀간 발성 차이가 큰데 남자 교수 일색이라는 것이다. 박씨는 “남녀가 타고 난 목소리도 다르고 그에 맞게 연습하는 방법도 제 각각인데 여학생들밖에 없는 여대마저도 남성교수가 우선 채용되는 건 이해할 수 없다”며 “‘여자들끼리 두면 싸우니까 남자들이 완충효과를 해야 한다’는 어이없는 말까지 들어봤다”고 털어놓았다.

그림 3학과별 여성 박사학위 비율과 여성 교수 비율. 그래픽=박구원 기자
그림 3학과별 여성 박사학위 비율과 여성 교수 비율. 그래픽=박구원 기자

◇우리사회 고정된 성역할, 교수사회도 마찬가지

이 같은 성별 격차는 학계 역시 공고한 남성 중심 사회이기 때문에 나타난다. 여성 박사들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고정된 성 인식이 교수 사회에도 통용된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교수 임용 과정은 객관적인 기준이 있다기보다는 학연, 지연 등을 바탕으로 추천하는 경향이 있어서 기존 남성 교수들의 입김이 세게 작용한다. 김상은(가명ㆍ42)씨는 교수들이 “교육학 전공 여자 박사는 남편 잘 만나면 되니까 정규직 필요 없지 않냐”는 말도 거리낌없이 한다고 전했다. 김씨는 “학자로서 사회적 위치 때문에, 드러내놓고 성차별을 하지는 않지만 농담처럼 던지는 발언에서 여성 동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은 반대로 교수가 된 여성을 오히려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도 표출된다. 한씨는 “주변에 교수가 된 여성 박사가 있는데 논문 실적이 워낙 출중하기도 했고 선배들과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온갖 학회와 모임을 섭렵하다시피 한 사람”이라며 “그렇게 열심히 해서 지방 국공립대에 자리를 잡은 걸보고 남성 박사들이나 교수들은 칭찬하기보다는 ‘독한 애’라고 부르더라”고 전했다. 남성이 여성보다 학과 일에 열심히 참여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남성을 선호하면서도 여성이 전통적 방식대로 조직 활동을 하면 ‘센 이미지’로 통한다는 얘기다.

일ㆍ가정 양립이 힘든 사회 구조도 문제다. 김효선 상명대 교육학과 교수는 “8년차 이내에 신규여성 국내 박사를 연구해본 결과 경력이 쌓이면 일자리의 질도 높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경력개발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혼과 육아”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여성에게 육아 책임을 지우는 사회구조에서 고학력 여성이라고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노동시장에서 여성보다는 남성을 선호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교육행정을 전공한 김선진(가명ㆍ42)씨는 중학생과 초등학생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논문 수도 더 많고 피인용지수(해당 논문이 다른 논문 등에 인용된 횟수)도 더 높았지만 번번이 다른 남성 박사에게 밀리는 일을 경험하고선 이제 진로를 창업 쪽으로 틀었다. 김씨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후에 교수에 도전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대학 사회에서 유리천장을 깨는 일이 쉽지 않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신임교수 여성비율. 그래픽=박구원 기자
신임교수 여성비율. 그래픽=박구원 기자

◇채용 공정성 높이고, 양성평등한 경력개발 네트워크 지원도 필요

강고한 학계의 유리천장을 깨려면 전문가들은 우선 교수임용 절차부터 투명하게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오은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노동연구센터장은 “국공립대 경우 학과 중심으로 학교가 운영되고 있고, 교수 임용 역시 학과에서 추천하면 총장이 대부분 승인하는 식”이라며 “대학 전반의 운영 상태를 살펴보고 필요한 부분은 학과에 맡겨두지 말고 대학 본부가 총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학별로 여성 교수 비율 지표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각 대학에 구성된 인사위원회 등에 여성교수 비율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최근 서울의 한 대학에서는 교수임용 최종면접까지 모두 치렀지만 교수 임용을 하지 않아 해당 전공자들 사이에서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최종 면접에는 총장과 학장 등 10여명의 면접관이 모두 남성이었는데 인문대학 교수직의 최종 면접에 오른 대상자는 모두 여성이라서 뽑지 않았다는 뒷말이 돌았다. 박남기 광주교육대 교수는 “교수 임용 심사위원이 모두 남성인 경우가 많고 학과에서 실적보다는 자신의 구미에 맞는 사람을 채용하기 쉽기 때문에 여성 후보자를 은근히 배제하게 된다”며 “심사위원을 구성할 때부터 남녀 비율을 맞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여성 박사들의 경력 개발을 지원하는 커뮤니티라든지 멘토링 제도 시행을 적극 지원하고 대학과 사회의 여성 인력에 대한 인식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효선 교수는 “학계의 유리천장을 깨는 일은 차세대 여성의 장래뿐 아니라 학계와 학문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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