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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일은 사람이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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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일은 사람이 하는 것

입력
2019.04.29 18:00
수정
2019.04.2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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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진단여화(企業診斷餘話)

일은 사람이 하는 것…

본부기업진단부

우리나라에 기업진단제도가 도입된 지도 어언간 2년이 지났다. 그동안 무던히 애를 써 왔으나, 아직 일반의 인식이 부족한 탓으로 진단 건수는 만족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진단효과에 있어서는 참으로 양호한 편이어서, 진단 종사원 자신들이 놀랠 정도의 수진(受診) 기업체도 있다는 것은 기업진단의 과학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사람이 병에 걸리면 전문의의 진단을 받고 그 지시에 따라서 약을 복용하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문명인의 상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인체 아닌 기업체에도 사람의 경우와 같이 비록 그 병명은 다르지만 여러 가지 질병에 있어서, 그 기업을 좀먹고 급기야는 죽음(파산)에까지 이르게 한다는 것은 잘 모르고 있다. 경영부진의 원인을 덮어놓고 재수나 운수가 막혀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우리나라에는 태반이다.

정말 기업에도 병이 있을까? 이 글은 기업진단의 임상경험을 통하여 직접 보고 느낀 진단원의 생생한 수기이다. 이 수기를 통하여 기업가 여러분은 자기의 사랑하는 기업이 지금 무슨 병에 걸려 있는지 한번 반성해 보시기를….[철(哲)]

돈이냐? 사람이냐?

우리나라의 기업가, 경영자들은 대부분 자기 기업의 경영부진의 책임을 우선 자금부족에 돌리고 ‘돈만 있으면 잘할 자신이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자위한다.

그럼 정말 돈 때문에 모든 일들이 잘 안되는 것일까? 그러나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이제 그 좋은 진단 케이스를 하나 소개해 보기로 한다.[수진 기업의 비밀보장을 위하여 사명, 기타 구체적 계수(計數)는 밝히지 못합니다.]

K시 소재 모 제조회사는 약 2년 전 본부의 기업진단을 받고 현재는 아주 모범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수진 당시에는 매월 기백만 환(圜)의 적자를 내고 있었으며, 운영질서는 말이 아니었다. 그럼 이 회사의 적자운영도 결국 제1차 요인으로는 돈(자금) 때문이었던가? 당시 이 회사의 대차대조표를 보면 단 1전의 은행채나 사채도 없이 전부 자기자본(억대)으로 충당되고 있었으며, 별다른 자금 군색(窘塞)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럼 무엇이 이 회사로 하여금 그토록 허덕이게 하였든가? 당시 경영자 측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군소 메이커-의 난무로 지나친 덤핑입찰이 성행되어 도저히 코스트를 마춰(*맞춰) 나갈 수가 없다…”고. 결국은 판매부진, 원가고(原價高)에 그 책임이 있으며, 그것은 객관적 여건의 변화없이 경영 자체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불가항력적인 요소로 체념?하고 수요자 층을 무척 원망하고 있었다.

OK! 그럼 판매부진과 원가고를 타개하는 길을 모색해 보자. 그것보다 먼저 이 기업체의 선장과 항해장, 기관장은 어떤 사람인가 ‘경영자 진단’부터 해 보자. 진단원은 이렇게 판단하였다. 이 기업선의 선장(사장)은 1년의 반 이상을 외지에서 보내게 되는 관계로 해서 특히 인간적으로 믿을 수 있는 항해장에게 선장의 권한을 위임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권한위임의 기준에 있었다. 인간적인 친분이 과연 운영권 위임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수임자에게 충분한 경영능력이 아울러 구비되어 있다면 별문제이지만….

그것이 단순한 재산보전에 끝이는(*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기업경영이라면 그 얼마나 큰 모험이겠는가! 아무리 그 선박의 성능이 우수하고 기관장 이하 기술진이 우수하다 하드라도(*하더라도), 결국 이 배의 향방을 구체적으로 측정하고 결정하는 항해장이나 선장의 판단이 정확치 못하다면 머지않아 이 배는 암초에 부닥치게 될 비운을 맛볼 것은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그 기업체의 항해장이며 선장대리로 있던 당시의 핸들어-(*handler)는 과연 배의 항해사가 아니라 자동차의 운전수였다. 메이커-로서 전연 일해 본 경험이 없고 지식이 약한 분이 어떻게 개척적인 제조공업의 운영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더욱이 보조참모의 전문적인 협조도 받음이 없이….

경영자는 결코 투자가의 재산 보관자는 아니며 사회적 공익의 대표자인 것이다. 본부의 기업진단 권고 제1조가 어떠하였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추측할 줄로 믿는다. 그 결과 반년도 못 되어 월 기백만 환의 적자경영이 흑자경영으로 전환된 것은 물론, 종업원 급여는 3할 이상 베이스엎(*base-up)되었고, 80% 이상의 노동생산성 향상과 이에 따르는 원가절감이 실현되었다면 기적이라 할 것인가! 물론 메이커-의 신용증진에 따르는 판로확장은 더 말할 것도 없고….돈타령만 하지 말고 돈을 잘 쓸 줄 알아야 한다. 일억 환의 자금이 불과 천만 환 구실밖에 못하는 수도 있고, 반대로 천만 환의 자금이 일억 환의 구실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을 움직이는 사람(경영자)의 역량 여하에 따라서….

품싻(*품삯)은 쌀수록 좋은가?

S시 소재 모 제조회사의 예.

원가를 싸게 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그 중 가장 손쉬운 것이―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원가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자재비, 노무비, 경비) 중 품싻(임금) 자체의 베이스를 될 수 있는 대로 싸게 해서 임금지불의 절대액을 줄이는 것이다. 그럼 정말 품싻만 싸게 주면 그대로 원가도 싸질 것인가? 어떤 경우는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재작년 겨울 요청에 의해서 어떤 기계공장의 진단을 나간 일이 있었다. 규모도 어지간히 큰 공장이다. 수진 기업의 요청은 어떻게 능률을 좀 올리고 원가를 내릴 수 없겠느냐는 것….

그래서 진단에 착수하기 전에 먼저 예비조사서를 상세히 검토하든 중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현장 종업원과 사무원의 임금격차가 너무 심할뿐더러, 기술공(숙련공)의 임금이 지나치게 싸다는 것이다.

즉 사무원 급료가 월평균 6만 환 꼴인데, 공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장의 기술공―평균 근속년수 7.8년―은 불과 3만 5천 환 베이스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현장임금은 싸다! 그런데 원가가 오른다니, 아마 경영자들은 수수꺼기(*수수께끼)?로 생각했을는지도(*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본 진단에 착수하고 먼저 공장 내를 두루 도라(*돌아)보았다. 아! 이 웬일이냐? 이것은 작업장이 아니라 내한(耐寒) 단련장이다. 폭 10미(米;meter)여 길이 50미여(米餘)의 작업장엔 감각조차 느낄 수 없는 난로 2개가 임종 직전의 화기를 겨우 부둥켜안고 있을 뿐, 살을 여이는(*에는) 듯한 냉기는 사정없이 종업원을 울리고 있었다.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떨고 있었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었다. 근로의욕? 추위에 떠는 종업원의 눈초리는 원망에 사모쳐(*사무쳐) 있지 않는가(*않은가). 영양부족의 몸에 추위의 매질까지 하니, 이건 도대체 생산성을 높이란 말인가, 낮히는(*낮추란) 말인가!

우리들이 예비진단에서 추측하든(*추측하던) 것이 그대로 적중한 것이다. 그리고 2, 3일간 그 공장의 주변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또 한 가지 귀중한 정보를 얻었다. 그것은 이 공장에서는 종업원들이 감독의 눈을 속여 가면서 만든 회사제품 아닌 사제품이 상당히 시민의 수요를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생활비의 ‘절대액 부족’을 보충하는 수단임은 더 말할 나위조차 없다.

OK! 문제점의 소재는 파악되었다. 그런데 노무관리 개선권고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임금단가를 올리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결코 하나의 도덕적 사치가 아니라, 원가절감의 길이요 수익성 향상의 길임을 똑똑히 인식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들 진단원은 원가관리ABC, 노무관리ABC의 강의부터 시작하느라고 진땀을 뺐다.

당(當) 본부가 제시한 능률급제도의 채택, 작업환경의 개선권고를 받아드린(*받아들인) 이 19세기 공장이 그 후 눈부실 정도로 개선되었음은 물론이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럼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일할 의욕을 도꾸는가(*돋구는가)? 이 명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경영자는 확실히 유능한 경영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계는 기름만 잘 쳐주면 제 능률을 말없이 잘 발휘해 준다. 그럼 사람에겐 무엇을 주어야 할 것인가?

생활인으로서의 본능과 인격자로서의 ‘푸라이드’를 아울러 잘 어루만져 준다는 것은 그리 손쉬운 일은 아닐 게다. 부하의 배고픔을 이해하고 눈물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측면이 오늘날의 경영자에게는 요청된다는 것이다.

※ 월간 《企業經營》 1960년 4월호에서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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