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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바버라 부시(4.17)

입력
2019.04.17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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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부시가 1년 전 오늘 작고했다.
바버라 부시가 1년 전 오늘 작고했다.

곧 출간될 바버라 부시(Barbara Bush, 1925.6.8~2018.4.17)의 전기 영어판 제목이 ‘The Matriarch’라고 한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한국어판이 어떤 제목을 택할지도 궁금하다. 저자인 USAToday 워싱턴DC 지국장 수전 페이지(Susan Page)가 저 제목을 단 것은 대통령의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그의 카리스마, 또 때로는 남편과 아들보다 더 우람했던 그의 존재감을 부각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 뉘앙스를 담기엔 ‘여장부’같은 말은 성의 없어 보인다.

부계로는 옛 대통령(프랭클린 피어스)에 닿고 모계로는 오하이오주 대법관을 할아버지로둔 뉴욕 퀸스 명문가의 딸 부시는 2차대전 중이던 1945년 1월, 1년 연상의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 조지 HW 부시와 결혼해 이듬해 장남 조지 W 부시를 시작으로 모두 6남매를 낳았다.

전후 남편 부시가 석유사업을 시작하면서 본거지를 텍사스로 옮겼고 1966년 남편이 하원의원이 된 뒤로 워싱턴DC로 이사했다. 이후 그는 주로 정치인 남편의 직위가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레이건 정부 8년 동안 세컨드 레이디였고, 이후 4년간(1989~93) 퍼스트 레이디였으며, 아들 재임기 8년 동안도 언제든 백악관을 드나들 수 있는 로열 패밀리였다.

성공회 집안에서 성장하면서 헌신과 봉사의 가치를 익혔다는 그는 저 가계의 위세에 우쭐대지 않고 ‘공화(共和)’ 본래의 가치를 무겁게 여겼다. 남편과 아들이 전쟁에 용을 쓰는 동안 그는 가족 단위의 글(책) 읽기ㆍ쓰기 캠페인(Family literacy)에 힘을 쏟았다. 라틴계 등 가난한 이민자들의 문해 능력이 그들의 미국사회 정착과 경제적 안정의 첫 단추라 여겨서였다. 그는 대중교통을 선호했고, 국내 이동 땐 전용기보다 일반 민항기를 원해 경호팀을 애먹였다고 한다.

텍사스 기반의 공화당 대통령 남편과 아들을 두고도 그는 공공연히 낙태권을 옹호했고, 동성애자 인권을 편들었다. 전기 집필을 위한 2017년 인터뷰에서 바버라는 트럼프(정부)를 비판하며 “내가 공화당원이라고 말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페이지에게 건넨 일기에는 그가 1990년대부터 트럼프를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추접스러운 사람”이라고 판단했다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어떻게 미국이, 더욱이 여성들이 트럼프를 선택했는지 놀라워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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