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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우리나라 대학, 누구와 경쟁해야 하나?

입력
2019.04.09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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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미국의 대표적인 서점이었던 반스앤노블을 밀어낸 경쟁자는 동종의 서점이 아니라 온라인을 기반으로 등장한 아마존이었다. DVD 대여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블록버스터를 곤경에 빠뜨린 경쟁자도 동종 업체가 아닌 온라인 주문과 오프라인 배달의 결합, 나아가 온라인 비디오 서비스라는 새로운 개념의 비즈니스 모델로 무장한 넷플릭스였다. 한때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했던 노키아 역시 동종 업체가 아닌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에서 사라졌다. 만약 반스앤노블, 블록버스터 그리고 노키아가 시야에 보이던 경쟁자들만을 의식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 출현할지 모르는 잠재적 경쟁자들에게 신경을 썼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추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잠재적 경쟁자에게 신경을 쓴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경쟁의 차원을 달리 한다는 것이다. 즉 경쟁을 수요 차원에서 정의하면 경쟁자는 구매력이 동반된 수요를 놓고 경쟁하는 눈에 보이는 경쟁자들로 한정된다. 그러나 경쟁을 고객 욕구 차원에서 정의한다면 경쟁자는 그 범위가 확대되며 전형적인 시장의 경계 밖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시야에 없던 다크호스가 갑자기 경쟁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국내 K리그에서 라이벌 슈퍼매치의 당사자인 FC서울이나 수원삼성이 상대방을 그리고 기타 K리그 팀들을 이기면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인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축구팬들의 관심과 시간, 그리고 돈이 손흥민 선수 등이 뛰고 있는 해외 클럽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야구팬이라면 류현진 선수가 선발로 등장하는 LA다저스의 경기를 즐겨 시청하기에 우리나라 프로야구 구단의 경쟁자 역시 국내 구단이 아닌 미국의 메이저리그 구단일 수 있다.

최근 SKY캐슬이라는 드라마가 화제가 되었듯이 국내에서 서울대, 고려대 그리고 연세대는 소위 명문대로서 입시, 교수 및 재원 확보, 취업 등 여러 방면에서 경쟁을 한다. 또 글로벌 대학평가가 시행되고 있고, 교육과 연구 그리고 사회봉사 등의 측면에서 외국의 유수한 대학들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자의 범위는 외국 대학들까지로 확대된다. 그런데 사실 SKY 대학의 진정한 경쟁자는 따로 있다. 예를 들면, 지난 2012년에 기존 대학 모델을 바꾸겠다는 취지로 설립된 ‘미네르바 스쿨’은 하버드대 수준의 교육을 절반의 비용으로 제공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학이 됐다. 미네르바 스쿨에서는 정해진 캠퍼스 없이 학기마다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돌아다니며 수업을 듣는다. MIT보다 많은 지원자가 몰릴 정도로 경쟁률이 높지만 지원자들의 수준도 아이비리그 대학 지원자 못지않을 만큼 우수하다. 또 유명한 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 플랫폼 중 하나인 코세라는 많은 대학ㆍ기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2,600개 안팎의 온라인 강의를 제공한다.

결국 대학의 업이 고객의 교육 욕구나 연구 욕구를 채우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러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경쟁하는 경쟁자들은 매우 많아진다. 즉 국내 대학의 경쟁자는 전통적인 국내외 대학들 뿐만 아니라 미네르바 스쿨이나 코세라 등 새로운 개념의 교육 프로그램 더 나아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교육기관이 될 수도 있다.

대학도 시장에서 경쟁을 피할 수 없다면 먼저 누가 나의 경쟁자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경쟁자를 어떻게 정의하는 가에 따라 전략은 달라지고, 결과적으로 경쟁자의 정의는 대학의 성패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학령인구 감소, 과도한 규제, 재정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은 이제 눈에 보이는 동종의 경쟁자만을 견제할 것이 아니라 잘 보이지 않던 이종의 다크호스도 경쟁자의 범위에 넣고 이들과 경쟁하기 위한 혁신을 추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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