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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내 연산 풀어라” 빗나간 초등 수학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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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내 연산 풀어라” 빗나간 초등 수학시간

입력
2019.04.09 04:40
수정
2019.04.09 09:37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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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원래는 2분 넘었는데, 어제는 1분57초에 다 풀었어.”

서울 은평구에 사는 남모(45)씨는 최근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의 수학 시간 이야기를 듣다 깜짝 놀랐다.

교사가 수학 시간마다 수십 개의 연산 문제를 주고, 학생별로 이 문제들을 다 푸는데 얼마가 걸렸는지 ‘초’ 단위까지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서로 시간을 비교하는 등 불필요한 경쟁만 불러일으킨다는 생각에, 담임 교사에게 시간은 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비교하자는 게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서 시간을 조금씩이라도 줄일 수 있게 하는 게 목적”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아이 입에서 벌써부터 ‘어떤 친구가 몇 분 몇 초에 풀었는데, 나는 이렇게밖에 못했다’는 말이 나온다”며 “스스로 ‘나는 수학을 못한다’고 위축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사칙연산을 반복하며 속도를 단축시키는 학습법, 일명 ‘기적의 계산법’이 유행이다. 수학의 기초가 되는 계산 능력의 정확성과 속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저학년 때 이런 방식으로 수학을 접하면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을 수 있고, 자칫하면 ‘수학적 사고’를 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중 초등학교 수학 참고서들도 ‘어려운 문제를 아무리 잘 풀어도 계산이 느리고 실수가 잦으면 틀리게 된다’며 계산 속도를 강조한다. 초등학교 1~6학년 대상 스테디셀러 중 하나인 한 출판사의 수학 문제집을 보면, 페이지마다 계산을 하고 그 문제를 푸는 데 걸린 시간과 채점 결과를 상단에 기록하게 하고 있다. 특별한 계산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에 반복적으로 10분씩, 5일만 하면 계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준도 제시하는데, 초등학교 3학년 문제집에는 ‘두 자릿수 곱하기 한 자릿수’ 문제 24개를 푸는 데 1분 이내로 풀어야 상위 10%, 2분 안쪽으로 풀어야 평균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이 같은 수학 학습법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동환 부산교대 수학교육학과 교수는 “빨리 답이 나와야 한다고 훈련된 아이들은 학년이 높아질수록 생각이나 도전이 필요한 문제, 문장제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오히려 더 쉽게 좌절할 수 있다”며 “수학에서 속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지난달 28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기초학력 지원 내실화 방안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날 지난해 중3, 고2의 수학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각각 11.1%와 10.4%라고 밝혔다. 세종=뉴스1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지난달 28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기초학력 지원 내실화 방안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날 지난해 중3, 고2의 수학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각각 11.1%와 10.4%라고 밝혔다. 세종=뉴스1

특히 대개 학습 부진의 시작이 초등학교 수학 과목에서 시작되는 만큼, 초등 교실의 수학 수업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초∙중학교 학생 50명의 성장 과정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학습 부진을 경험한 최초의 시점이 모두 초등학교 3학년 분수로 귀결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단순 연산에 그치던 초등학교 2학년 수학과 달리 3학년이 되면서 분수와 도형을 접하게 되는데, 이 시점에 수학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형성하는 학생들이 증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 구로구의 한 중학교 수학 교사 이모(41)씨는 “분수 같은 경우 해외에서는 ‘비례적 추론’이라고 해서 굉장히 어려운 개념으로 보고 다루는데 우리는 초등학생들에게 피자 몇 번 잘라 보게 하고는 분수 계산을 엄청 시킨다”고 지적했다.

안병곤 광주교대 수학교육학과 교수는 “아이들이 수학에 대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학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며 “특히 초등수학의 경우 중등수학의 부분집합으로 여길 게 아니라, ‘쉬운 내용을 더 쉽게’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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