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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결권 자문사 ‘주주권 숨은 실세’… 주총 안건 쥐락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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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결권 자문사 ‘주주권 숨은 실세’… 주총 안건 쥐락펴락

입력
2019.04.03 04:40
수정
2019.04.04 20:24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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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의결권 자문사 4곳 파워]

국민연금 통해 600개사 안건 영향… 스튜어드십코드 도입후 입김 확대

재무상태ㆍ인력 등 베일에 쌓여있고 의사결정 방식 ‘영업비밀’ 비공개

국내 의결권자문사 현황. 신동준 기자
국내 의결권자문사 현황. 신동준 기자

올해 주주총회 시즌 내내 상장 대기업이나 공룡 기관투자자 못지 않게 남다른 주목을 받은 집단이 있다. 바로 토종 ‘의결권 자문사’들이다. 이사 선임이나 배당 확대 같은 민감한 의안을 두고 회사와 주주 간 충돌이 빚어질 때마다 어느새 여론은 이들 의결권 자문사의 의견에 고개를 돌렸다.

주식 한 주 들지 않고도 이들이 사실상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 경우도 많아, 일각에선 이들을 ‘주총의 숨은 권력’으로 부르기도 한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과 주주 행동주의 물결을 타고 갈수록 존재감을 키우는 토종 의결권 자문사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커지는 영향력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토종 의결권 자문사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서스틴베스트,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 4곳이다. 이들은 특히 올해 주총의 빅 이벤트였던 대한항공과 현대자동차 주총 안건에 대해 의견을 통해 부쩍 커진 존재감을 한껏 드러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뜨거운 감자였던 대한항공 주총을 앞두고 4개 토종 의결권 자문사들은 모두 조 회장 연임안에 ‘반대’ 의견을 냈다. 조 회장이 특정경제범죄처벌법 상 사기ㆍ배임ㆍ횡령 등 범죄 혐의를 받고 있고, 기업 가치를 훼손했다는 등의 이유였다. 이들의 의견은 결국 조 회장 연임안 부결로 이어졌다.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1주당 2만1,967원 배당안을 제안한 현대차 주총에서도 토종 의결권 자문사들의 반대 권고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엘리엇의 제안대로라면 현금배당에만 5조8,295억원이 필요한데, 현대차의 현금성 자산이 부족하고 향후 투자를 고려하면 무리한 요구”라고 이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실제 주총에서 현대차 이사회가 내놓은 1주당 3,000원을 배당안이 통과됐다. 찬성률은 86%였다. 반면 엘리엇의 배당 요구안에 찬성한 주주는 13.6%에 불과했고 당연히 부결됐다.

이런 상황은 실제 많은 기관투자자들이 의결권 자문사의 의견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통상 보유 주식 종목이 많은 기관투자자들은 회사별 주총 개별 안건에 찬반 입장을 일일이 검토하기 어렵다. 때문에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에는 기관투자자도 의결권을 행사할 때 근거를 남겨야 한다”며 “의결권 자문사에서 찬성 또는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게 있으면, 이와 다른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자문사의 논리와 근거를 뛰어넘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아 자문사 의견을 따라가는 경우가 꽤 된다”고 귀띔했다.

의결권자문사. 그래픽=신동준 기자
의결권자문사. 그래픽=신동준 기자

◇자체 가이드라인 따라 ‘4사 4색’

이미 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현실과 달리, 의결권 자문사들의 의사 결정 방식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통상 의결권 자문사는 기관투자자에게 수수료를 받고 안건을 분석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600여개 상장사 주총 안건 분석에 대한 대가로 약 8,000만원의 자문료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석대상 회사 1곳당 약 13만3,000원꼴을 지급한 셈이다.

안건을 찬성할지, 반대할지는 각 자문사가 가진 ‘가이드라인’에 따라 결정된다. 가이드라인은 일종의 ‘영업 비밀’로 분류돼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일부 자문사는 권고의 근거를 설명하면서 가이드라인을 노출하기도 한다. 실제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사내이사 선임 관련 보고서에서 “대표이사가 다른 회사의 등기이사를 2개 초과해 겸직할 경우 반대를 권고한다”고 적시했다. 또 현대차 주총에서 정의선 수석부회장 사내이사 연임안에 대해서는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사내이사를 겸직해 이사의 충실 의무를 저해할 수 있어 반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 자산운용사들은 의결권 자문사 의견을 참고할 때도 2곳 이상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의견이 엇갈리면 왜 다른지 비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의 성격 차이에는 토종 의결권 자문사 4곳의 역사가 녹아 있다. 우선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문재인 정부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 제도를 국내에 도입하고 운영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어, 공익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평이다.

서스틴베스트는 ‘사회책임투자’라는 틀 아래 국내 기업들의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ESG) 평가와 투자 전략 컨설팅 등을 제공하고 있다. 2013년 민간 기업 중에서는 처음 의안 분석 시장에 뛰어들었고, 평소 ESG 투자 컨설팅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자문을 내놓는 걸로 알려져 있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대신금융그룹의 대신경제연구소 산하에 있다. 외국계 의결권 자문사로 유명한 ISS도 모건스탠리 산하 사업부였던 점을 들어, 같은 사업 모델을 가진 점을 강조한다. 기존 대신증권 조사부 인력과 경험이 스며들어 기업 분석에 강점을 나타낸다.

2001년 설립된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참여연대 출신 전문가들이 주축이 된 단체다.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고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강화하는 데 방점을 찍어, 대주주나 오너 일가 중심의 지배구조를 항상 견제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관리감독은 아직 ‘사각지대’

지난해와 올해 주총에서 토종 의결권 자문사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자, 일각에선 ‘지나친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아직 시장 초기 형성 단계로 평가되는 탓에,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은 컨설팅업과 여론조사업으로만 등록돼 자본시장법상 인허가 등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을 받고 있지 않다. 이들의 재무상태, 인력 등도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기관투자자들은 의결권 자문사의 실체와 의사결정 과정이 굉장히 중요한 정보 임에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의결권 자문 서비스가 3, 4곳에 집중돼 있지만 스튜어드십코드가 점차 자리 잡으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며 “앞으로는 정말 의미 있는 자문을 제공하는지 판단할 정보가 꼭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향후 감독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은 막 싹을 틔우고 활동을 시작한 단계"라며 "시장 영향력 등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의결권 자문사 규율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의결권 자문사 산업의 성장에 따라 필요한 경우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고, 관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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