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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곡성’ 영화 ‘어스’… “숨겨진 의미 찾자” 보고 또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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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곡성’ 영화 ‘어스’… “숨겨진 의미 찾자” 보고 또 보고

입력
2019.04.01 04:40
수정
2019.04.01 13:3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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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겟 아웃’ 조던 필 감독 신작… 100만 돌파 초읽기 

도플갱어의 습격은 미국 사회 현실과 결부돼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UPI코리아 제공
도플갱어의 습격은 미국 사회 현실과 결부돼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UPI코리아 제공

할리우드 공포 영화 ‘어스’가 미국을 강타한 데 이어 한국 관객까지 홀렸다.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 사이에 다양한 해석이 쏟아져 나오고, 영화에 숨겨진 의미를 찾고자 반복 관람에 나서는 등 다른 작품에선 찾기 힘든 적극적인 관람 문화를 낳고 있다. 상징과 은유가 풍부하다는 의미에서 ‘미국판 곡성’이라는 수식도 붙었다.

지난달 27일 박스오피스 1위로 첫 발을 뗀 ‘어스’는 31일까지 93만6,441명(영화진흥위원회)을 불러모으며 10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영화 ‘겟 아웃’(2017)으로 한국에서 213만 관객을 동원한 조던 필 감독의 신작이라 일찌감치 기대를 받아왔지만, 이 같은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한국보다 앞서 22일 개봉한 미국에서는 29일까지 극장 수익 1억480만 달러(박스오피스 모조 집계)를 거둬들였다. 제작비(2,000만 달러)의 5배를 웃돈다.

‘어스’는 1986년 미국 전역에서 펼쳐진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를 언급하며 시작된다.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는 15분간 서로 손을 맞잡고 인간 띠를 만드는 행사로, 굶주린 이를 위한 기금모금을 독려하는 캠페인이다. 인간 띠가 완성된 산타크루즈 해변 놀이공원에서 어린 애들레이드는 거울 미로에 들어갔다가 충격적인 사건을 겪는다. 이후 30년이 흘러 애들레이드(루피타 뇽)는 남편, 두 아이와 함께 휴가차 다시 그 해변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자신과 가족을 똑같이 닮은 도플갱어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도플갱어가 왜 나타났으며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할 겨를도 없이 영화는 마치 내가 나로부터 위협당하는 듯한 기이한 공포 속으로 관객을 몰아간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또 다른 나’를 죽여야 한다는 딜레마가 공포심을 극대화한다. “대체 당신들은 누구냐”고 묻는 애들레이드에게 도플갱어는 말한다. “우리는 미국인이야.” 영화 제목인 ‘어스(US)’가 ‘우리’를 뜻하는 동시에 ‘미국(United States)’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음을 선언하는 장면이다.

영화 ‘어스’를 보고 나면 1인 2역을 소화한 배우 루피타 뇽의 얼굴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UPI코리아 제공
영화 ‘어스’를 보고 나면 1인 2역을 소화한 배우 루피타 뇽의 얼굴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UPI코리아 제공

백인 사회에 뿌리 깊은 인종주의를 통렬하게 고발한 ‘겟 아웃’처럼 ‘어스’도 미국 사회의 병폐를 꼬집는 상징과 은유로 가득하다. 지하세계 도플갱어들의 비참한 삶은 미국 사회의 양극화와 계급갈등을 거울처럼 비춘다. 인간을 복제해 탄생했으나 자유의지를 갖지 못한 도플갱어들은 정치적으로 배척당하고 타자화된 이민자, 소수자 등을 떠올리게 한다. 애들레이드가 도피처로 택한 곳이 멕시코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일부 관객들은 흑인 가족과 그 도플갱어의 관계를 약자 대 약자의 대립구도로 해석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층이 결국 경제적ㆍ사회적 약자였다는 아이러니를 읽어내기도 한다. 필 감독은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미국 대선 이후 사회적 분열과 외국인 혐오증에서 영감을 받아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관객들은 영화에 대한 해석을 놀이문화로 즐기고 있다. 영화 관련 온라인 게시판에는 관객들이 추리한 다채로운 해설들이 올라오고 있다. 성경 구절인 예례미아 11장 11절, 시계가 가리키는 11시 11분, 해변을 걷는 가족 그림자의 모양 1111 등 도플갱어를 상징하는 다양한 이미지를 비롯해 지하 세계에서 사육된 토끼, 도플갱어의 무기인 가위 등 독창적인 설정들이 관객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반복 관람하면 의미가 새로이 발견돼 더 소름 돋는 영화라는 평도 자주 보인다.

미국 사회의 현 상황을 다룬다는 점에서 다소 괴리감을 느끼는 목소리도 있다. 영화 ‘죠스’와 ‘샤이닝’, 마이클 잭슨의 노래 ‘스릴러’ 등 영화가 정서적 배경으로 끌어들인 미국 대중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도 몰입감이 떨어질 수 있다. 필 감독은 “이 영화의 주제는 인간의 이중성과 선악의 싸움”이라며 “우리는 외부인을 침략자로 여기고 두려워하지만 최악의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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