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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만 날려요” 경제도 비명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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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만 날려요” 경제도 비명이 터졌다

입력
2019.03.07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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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세먼지, 메르스보다 큰 타격 전망] 

 “최근 손님 30%나 줄어” 식당ㆍ상가들 하늘 원망만 

 외식ㆍ관광 등 소비산업 직격탄… 반도체ㆍ항공 등도 피해 

 문 대통령 “필요하면 추경 긴급 편성해 미세먼지 줄여야” 

미세먼지발 경제 충격을 경고하는목소리들/ 강준구 기자
미세먼지발 경제 충격을 경고하는목소리들/ 강준구 기자

#. 수도권에 엿새째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6일 오후 4시. 평소 북적이던 서울 서대문구 인왕시장은 손님을 찾기 쉽지 않았다. 국수집을 운영하는 홍모씨는 “이 시간이면 생선, 채소, 반찬 가게가 저녁거리를 사러 나온 주부들로 북적이는데 보다시피 텅 비어있다”며 “손님 응대 때문에 마스크도 못 쓰다 보니 목과 눈이 따가워 견딜 수 없다”고 푸념했다.

#. 같은 시간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 커피점주 이모씨도 먼지로 부연 가게 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이씨는 “미세먼지가 많은 날엔 가게 인근 동백섬을 산책하는 주민도, 오가는 행인도 크게 줄어든다”며 “추운날에도 유지됐던 손님이 최근 며칠간 30%가량 줄었다”고 전했다.

한국 경제가 미세먼지에 질식 당하고 있다. 고용, 투자에 이어 수출마저 부진한 상황에서 지난해 그나마 경제성장을지탱했던 소비마저 미세먼지의 직격탄을 맞을 거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우려는 이미 소비 현장 곳곳에서 현실로 감지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필요하다면 추가경정예산을 긴급 편성해서라도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역량을 집중하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 사태에 버금가는 국가재난사태 선포 필요성까지 거론된다. 하지만 미세먼지는 올 한 해로 끝나지 않을 만성 위협이라는 데 심각성이 더 크다. 하루빨리 근본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의 장기 저해요인이 될 거란 비관론도 확산되고 있다.

 ◇직격탄 맞은 외식ㆍ관광업계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세먼지는 최근 지역과 업종을 막론하고 소비 활동을 전방위로 제약하고 있다. 무엇보다 외출을 꺼리는 심리가 강해졌다. 초등생 자녀 셋을 둔 전업주부 김모씨는 “인터넷으로 식재료를 사서 집에서 음식을 하는데, 요리를 할수록 집안 공기도 나빠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대기업 직장인 고석준(38)씨는 “웬만하면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다”며 “뿌연 공기를 보면 집에 빨리 들어가고 싶은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일차로 직격탄을 맞은 곳은 자영업 비중이 높은 외식업이다. 그나마 공기순환 시설이 갖춰진 대형마트, 복합쇼핑몰과 달리 전통시장이나 길거리 점포는 미세먼지로 고객 발길이 뚝 끊겼다. 서울 종로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박모(45) 사장은 “주 52시간 근무제로 직장인 퇴근 시간이 빨라져 매출이 줄었는데, 미세먼지까지 기승을 부려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이근재 한국외식업중앙회장은 “미세먼지 때문에 외식업계 매출이 10~20%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지 관광객 의존도가 높은 지방은 더 곤혹스럽다. 경주 불국사앞에서 제과점을 하는 김성일(54)씨는 “이번주초부터 관광객이 30% 이상 줄었다”며 “경주엔 미세먼지가 적어도, 다른 지역에 미세먼지가 심해지면 경주를 찾는 발길이 뚝 끊긴다”고 전했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횟집을 하는이모(67)씨도 “포항 지진으로 관광객이 급감한 데다가 미세먼지까지 덮치다 보니 어제는 마수걸이도 못한 가게가 수두룩했다”고 탄식했다.

 ◇산업 전반이 피해 사정권 

피해는 소비산업 전반으로 번질 태세다. 여행산업은 최대 취약업종이다. 기차여행 전문 해밀여행사 오영진 대표는 “작년 이맘때보다 예약이 20%가량 줄었다”며 “어린이가 있는 가족은 아예 움직임이 없고 고령층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밝혔다. 이원근 승우여행사 대표도 “광양ㆍ여수ㆍ진해 등 남부 봄꽃여행 상품 예약이 몰리는 시기인데, 올해는 절반에 그치고 있다”며 “미세먼지 여파가 벚꽃 시즌까지 이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봄 축제를 준비하는 지방자치단체들도 비상이다. 오는 8일 매화축제 개막을 앞둔 전남 광양시청 관광과 공무원은 “방문객이 줄까 우려하면서도 해결책이 없어 답답하다”며 “임시방편으로 축제 기간에 노약자에게 1회용 마스크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세먼지는 장기적으로 소비를 넘어 기업 생산활동까지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품은 미세먼지에 노출되면 불량률이 증가한다. 자동화 설비가 미세먼지 때문에 고장 나거나 오작동을 일으킬 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다. 항공 산업에선 비행기 결항, 기체 세척비용 증가 피해가 예상된다. 자동차ㆍ조선업의 도장작업은 미세먼지가 심한 날엔 시도하기도 어렵다.

미세먼지와는 조금 다르지만 최근 중앙대 산학협력단이 155개 기업을 설문조사해 황사 피해 규모를 조사했다. 가장 피해가 큰 항공ㆍ운송업의 연간 피해액은2,003억원으로 추산됐다. 각종 장비 유지ㆍ보수 비용이 늘어난 탓이다. 조선업 등 기타 운송장비 제조업은 연간 610억원, 유리 제조업은 248억원의 피해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출근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출근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메르스 뛰어넘는 경제 위협요인” 

배정환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세먼지를 포함한 대기오염에 따른 비용을 연간 11조8,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대기오염 물질로 발생하는 질병 피해액만 추려낸 것으로, 소비 및 기업생산 위축 효과까지 고려하면 경제적 손실은 더 클 것이란 게 배 교수의 주장이다.

과거 메르스 같은일회성 전염병이 국내를 휩쓸 때도 경제 손실은 상당했다. 메르스가 강타한 2015년 6월 소매판매는 4년 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옷, 화장품, 가전제품 등의 판매가 일제히 줄며 2011년 2월(-5.8%) 이후 최악의 소비를 보였다. 물건을 판매하는 백화점(-13.9%), 대형마트(-11.6%), 전문소매점(-9.5%) 매출도 일제히 감소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그 해 12월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2.6%로 낮췄는데 “2분기 메르스 충격을 반영한 것이 하향조정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문제는 미세먼지가 매년 상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경제적 손실이 갈수록 늘어날 게 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이미 3년 전 같은 차원의 경고를 했다. OECD는 “한국이 대기오염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2060년 한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손실 비율은 0.63%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을 것”으로 예측했다.

배정환 교수는 “미세먼지 농도가 짙어지고, 발생 기간도 길어지면서 국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점점 커질 것”이라며 “당장 미세먼지를 줄일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2060년을 기준으로 삼은 OECD의 예측은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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