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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부 인사 꽂으려 재공모 뒤 낙하산… 文정부서도 ‘무늬만 공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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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부 인사 꽂으려 재공모 뒤 낙하산… 文정부서도 ‘무늬만 공모제’

입력
2019.02.24 18:31
수정
2019.02.24 23:1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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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공모 통해 단일 후보 추천하고

합격자ㆍ탈락자 재평가로 뒤바꿔

“촛불 정부라더니 적폐 반복”

그림 1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림 1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청와대의 개입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공공기관장 공개모집제도가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균등한 기회 부여와 공정성을 위해 공모 방식을 도입했지만 공모와 재공모를 통해 애초에 내정된 인물을 추인하는 요식행위로 친정부 인물을 낙하산 인사로 내리 꽂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촛불 정부’가 정작 전임 정부와 다를 바 없는 ‘코드 인사’와 ‘낙하산 인사’를 되풀이하고 있어 허울뿐인 공모제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공모로 임추위 후보 추천 무력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환경부 산하기관인 한국환경공단의 임원 공모 과정의 위법성 여부를 살피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가장 의심스러운 부분은 지난해 7월 환경공단 이사장ㆍ상임감사 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후보 전원을 주무 부처인 환경부가 불분명한 이유로 탈락시킨 뒤 재공모를 실시한 점이다. 1차 상임감사 공모에선 지원자 16명 중 7명이 면접 대상에 올랐으나 “적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전원이 탈락했다. 1차 공모에서 1등을 했던 지원자는 일부 위원에게 5가지 항목 모두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고도 탈락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결국 상임감사 자리에는 노무현재단 기획위원 출신인 유성찬씨가 임명됐다. 공단 이사장 자리도 비슷한 이유로 1차 공모에서 이사장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 5명이 모두 불분명한 이유로 탈락했다. 결국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시민사회비서관을 지냈던 장준영 현 이사장이 김은경 당시 환경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임명됐다. 이에 환경부 안팎에서는 “당초 청와대가 추천한 인사가 1차 서류 심사에서 떨어지자 공모 자체를 무산시킨 게 아니냐”하는 뒷말이 나왔다.

국립현대미술관장과 한국공항공사 사장, EBS 사장 공모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10월 국립현대미술관장 모집 과정에선 석연치 않은 재평가 과정을 거쳐 합격자와 탈락자가 뒤바뀌는 일이 일어났다. 이용우 전 중국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장은 공모에서 최종 후보 3인 중 유일하게 고위공무원 역량평가를 통과해 합격했지만 관장에는 임명되지 못했다. 주무 부처인 문체부가 무슨 이유에선지 합격자가 있는데도 다시 한번 역량평가를 했고, 당초 낙제점을 받고 탈락했던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가 재평가에서 최종 합격자로 결정됐다. 문체부는 지난해 인사혁신처에 관장 공모에 역량평가를 면제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비난을 받고 철회하기도 했다. 이용우씨는 당시 입장문을 내고 “촛불 혁명은 깨어난 시민ㆍ국민이 이뤘는데 정치인들은 열매나 즐기며 문화예술계를 너무 쉽게 보는 것은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상반기 이뤄진 공항공사 사장 공모 과정도 의혹투성이다. 공사 임원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가 노조 반발 등으로 임명이 무산되자 재공모를 했는데 앞선 공모에서 탈락한 4명의 후보와 함께 손창완 전 경찰대학장이 후보에 올랐다. 사실상 손 전 학장이 단일 후보로 추천돼 임명된 셈이다. 손 사장은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마한 친여권 인사다.

EBS 사장 선임을 앞두고도 ‘외부 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는 사장 후보자 4명 가운데 적격자가 없다며 재공모를 실시했는데, 지난달 지원자 20명 중 최종 면접 대상자 4명이 확정됐는데도 한 달이 넘도록 정확한 면접 일정과 평가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문제인 정부 낙하산, 캠코더 인사_박구원 기자
문제인 정부 낙하산, 캠코더 인사_박구원 기자

◇허울뿐인 공모제 투명하고 공정하게 바꿔야

현행 공모제는 해당 기관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에서 후보들을 심사한 뒤 3~5배수의 인물을 추천하면 주무부처 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이다. 공공기관장 공모제는 김대중 정부 당시 낙하산 인사를 막겠다며 추천제라는 이름으로 도입된 뒤 노무현 정부에서 공모제로 바뀌었다. 이후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공모제 의무 기관을 확대하는 등 겉으로는 낙하산 인사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내정자가 공모제를 통해 임명되거나 재공모를 통해 임추위를 무력화시키는 ‘무늬만 공모제’가 관행처럼 굳어졌다.

이명박 정부에선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석유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이 모두 재공모를 통해 임명됐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재공모를 통해 친정부 인사로 물갈이됐다. 보수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비판했던 문재인 정부 역시 ‘재공모 후 낙하산 인사’라는 구태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망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추위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는 등 공모부터 임명까지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면 이러한 낙하산 인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임추위가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시민, 직원 등이 참여하거나 면접 등 일련의 과정에서 나오는 정보를 공개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시민인사청문회 형태로 인사검증 절차를 도입해 외부에서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방안도 생각해볼만하다”고 제안했다. 전문성이 필요한 기관과 정무적 임무를 맡아야 할 기관을 나눠서 임명 과정을 다르게 하는 방법도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임추위 구성을 다양화해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대표를 참여시키는 등 보는 눈을 많이 만들어 실질적인 임추위가 되도록 해야 한다”며 “근본적으로 미국처럼 정무적인 자리, 정치적인 기준으로 임명할 수 있는 자리를 명확하게 정해놓은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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