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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 무관심, 먹고사니즘 때문만은 아냐… 총학도 86세대 낡은 옷 벗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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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 무관심, 먹고사니즘 때문만은 아냐… 총학도 86세대 낡은 옷 벗어야”

입력
2019.03.09 09:0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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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학생회와 학생은 왜 멀어졌나’ 좌담회 

대학 캠퍼스라는 현장에서 학생들과 호흡하며 치열하게 고민을 이어온 전ㆍ현직 총학생회 관계자들이 ‘총학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18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 모였다. 류효진 기자
대학 캠퍼스라는 현장에서 학생들과 호흡하며 치열하게 고민을 이어온 전ㆍ현직 총학생회 관계자들이 ‘총학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18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 모였다. 류효진 기자

한국일보가 2월 13일부터 18일까지 대학 재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응답자 518명)에 따르면, 오늘날 총학생회(총학)는 학생들의 ‘애증의 대상’이다. 있어야 하고, 내 삶에 영향을 많이 미치고, 심지어 투표에 참여하려는 욕구도 있지만, 이대로의 모습은 ‘안 된다’는 인식이 응답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목할만한 점은 “학생들에게 신뢰받는 총학생회를 위한 제언(응답자 149명)”에 압도적으로 ‘소통(30명)’과 ‘투명성(28명)’을 제고해야 할 점으로 꼽았다는 것이다. 기저에는 ‘총학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학생들과 유리되어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총학과 학생들은 왜 멀어졌을까. 총학이라는 기구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까. 학생 사회 복원은 가능할까. 무엇이 됐든, ‘총학 부재 시대’의 문은 이미 열렸다. 황지수 숙명여대 총학생회장, 신민준 전 홍익대 총학생회장, 박성호 전 서울대 부총학생회장과 청년지식공동체 청년담론의 김창인 대표를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먹고사니즘' 때문에 학생사회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황지수 숙명여대 총학생회장(이하 황)= 숙대 총학 투표율은 다른 학교와 비슷하게 50%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지만, 아예 관심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숙대 학생들은 총학 활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동아리 등 작은 단위에서 다양한 입장을 내는데 이 의견들은 회장인 내게 직접 전달된다. 대학생들의 직접적인 참여가 떨어지는 건 맞지만, 그 원인을 ‘먹고사니즘’으로 일축하는 건 오히려 가능성을 억누르는 거다.

박성호 서울대 전 부총학생회장(이하 박)= 학생들의 사고 방식이 바뀐 부분도 있다. 지난해 서울대 총학 선거에는 굉장히 다른 성향의 두 선거본부(선본)가 나왔는데, “학생회니까 당연히 선택해야 해”가 아니라 “나는 어떤 학생회가 됐으면 좋겠어”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김창인 청년담론 대표(이하 김)= 물론 학생 개개인의 우선순위를 놓고 본다면, 상대적으로 총학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건 맞다. 그런데 정말로 ‘학생 사회’ 자체에 관심이 없을까. 총여학생회(총여) 폐지 이슈 등이나 에브리타임(대학 기반 익명 커뮤니티)에 달리는 댓글을 봤을 때 이를 ‘관심’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대학사회에 탈정치화 흐름은 분명히 있다. 다만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김창인 청년담론 대표는 “학생회의 위기는 386세대가 만들어 놓은 낡은 시스템을 오늘날까지 유지하는 데서 비롯했다”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김창인 청년담론 대표는 “학생회의 위기는 386세대가 만들어 놓은 낡은 시스템을 오늘날까지 유지하는 데서 비롯했다”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후보가 나오지 않아 총학이 꾸려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민준 홍익대 전 총학생회장(이하 신)= 공동체의 지속을 위한 학교 내 체계적 고리가 무너진 것 같다. 예전에는 무엇 하나를 결정하려고 해도, 학생들 간 토론이 활발했다. 지금은 학생회 활동을 하는 학생들도 토론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좋게 평가받는 학생회가 될 것인가’에 집중한다. 물론 대중의 평가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만 신경 쓰다 보니 실리적 논의만 하게 된다. 소위 학생 복지와 같은 즉각적인 혜택을 주지 않는 학생회에 대해 학생들의 관심이 떨어지기도 하고.

김= ‘학생회가 위기다’라는 진단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건 학생들이 정치적 요구 자체가 없거나 요구를 실현하는 스스로의 움직임이 없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학생회라는 시스템이 이를 잘 반영하지 못해 생긴 현상이다. 386세대가 민주화 운동을 위해 만들어 놓은 굉장히 오래된 시스템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위기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책임이 지금의 20대에게 있는 것도 아닌데, 20대의 탈정치성을 걱정하는 언론 보도 등은 항상 “젊은 애들이 문제”라는 식의 ‘20대 개새끼론’으로 흐른다.

황= 정말 청년들이 연대할 줄 모르는 걸까. 캠퍼스 안이 아닐 뿐,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인 페미니즘만 봐도, 젊은 20대 여성들이 주축이 된 ‘혜화역 시위’엔 매회 수만명이 모였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 인권, 성소수자 인권 논의도 예전의 학생 사회에 비해 더욱 활발하다.

 

신민준 전 홍익대 총학생회장은 “학교 안에서 토론하는 문화가 사라지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위한 체계적 고리가 끊어진 것이 학생 사회의 단절을 야기한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류효진 기자
신민준 전 홍익대 총학생회장은 “학교 안에서 토론하는 문화가 사라지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위한 체계적 고리가 끊어진 것이 학생 사회의 단절을 야기한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류효진 기자

 -현재 대학생들이 원하는 학생회가 386세대가 만든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신= 학생회를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다른 학교와 연대하자”는 것보다, 개별 총학이 스스로 투쟁력과 협상력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 마디로 “연대하면서 언제 그걸 다 해결하느냐”는 거다. 지난해 홍대는 총장직선제를 두고 치열하게 투쟁했는데, 이런 구조적 문제가 고대, 숙대, 서울대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학생이라는 계급을 바탕으로 연대하는 게 중요한데,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런 행동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이 있는 듯하다.

김= 동의한다. 총학의 역할이나 필요성, 기능이 크게 달라졌다기 보다는 ‘총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중요해졌다. 학생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동이 학생총회다. 의결 정족수 이상이 모이면 성사되는데, 예전에는 학생총회가 열리면 해결이 됐다. 하지만 이제는 학생총회가 열려도 학교에서 들어주지 않는다. 그걸 이미 모두가 안다.

박=굳이 총학생회를 통하지 않아도 본인이 하고 싶은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총학 퇴조의 한 원인이다. 정치적 표현을 하고 싶으면 정당에 들어가도 되고, 페이스북에 글을 써도 되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서명하고,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말해도 된다. 오늘날 학생 사회 위기의 본질은 총학에 관심을 가질 유인이 줄어든 것이다.

황=경로가 다양해졌다는 데 동의한다. 총학이 아니더라도 ‘나의 정치적 신념’을 펼칠 방법이 많다.

신=수(數)적 함정도 있다고 본다. 예컨대 “총학 투표율이 50%도 되지 않는다”며 위기라고 언론에서 이야기하지만 세부적인 상황을 분석해보면, 먼저 취업 문제 때문에 졸업 유예를 하는 학생이 많아졌다. 그런데 이들은 학적만 유지하고, 사실상 학교에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레 투표율 저하로 이어진다. 캠퍼스 내 외국인도 크게 늘었다. 홍대의 경우 투표할 수 있는 재적 인원 약 1만2,000명 중 1,000명 가량이 외국인인데, 주로 중국인이다. 자국에서 투표 경험이 없다 보니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 ‘총학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회의가 크다. 

김= 그래서 학생회의 재정 독립이 필요하다. 학생회는 학생들의 조합이지 않은가. 권력과 힘은 재정에 대한 권한에서 나오는데, 학생회가 뭘 하려고 해도 학교 본부의 입장과 상충하면 가장 먼저 ‘돈’을 걸고 넘어지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이 학생회가 쓰라고 조합비를 내는 건데, 학교에서 관리한다.

황= 요즘은 학생회비를 의무적으로 내지 않고, 등록금납부 때 선택해 낸다. 민주적 방법이긴 하지만, 이로 인해 총학의 재정이 크게 나빠졌다. 또 학생 스스로 자신을 자치기구의 ‘소비자’로 생각하게 된 경향도 커졌다. 사실 예전엔 “회장이 학생회 임기를 마치고 나면 차 한 대는 뽑는다”는 말도 공연히 돌았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가뜩이나 줄어든 학생회비를, 총학이 꼭 집행해야 하는 달력 사업들, 예컨대 학내 축제나 신입생 환영행사 등을 무사히 치르기에도 빠듯하다.

신= 대학 교육 자체가 서비스화하면서 학생들이 더욱 총학을 ‘서비스’로 보는 경향이 커졌다. 학생회 재정의 경우 과거 몇몇 총학에서 횡령 등 비리가 있던 것은 맞다. 하지만 몇몇의 개인적 일탈을 빌미로 대학이 학생회의 재정을 모두 쥐락펴락하게 됐다. 투명한 회계 처리를 위해 ‘관리’를 하는 것까진 괜찮다. 문제는 학교와 의견이 다를 때마다 학생회비를 볼모로 자율성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가끔은 학생회비가 일종의 ‘사전 검열 장치’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학생회가 학교 본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하면, 예산부터 제동이 걸린다.

박성호 전 서울대 부총학생회장은 “학생들이 점점 학생회 활동에 참여하지 않게 되면서, 학생회 의사결정의 정당성 마저 위협받고 있다”며 “80년대식 제도 너머 다른 정치 체제를 상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효진 기자
박성호 전 서울대 부총학생회장은 “학생들이 점점 학생회 활동에 참여하지 않게 되면서, 학생회 의사결정의 정당성 마저 위협받고 있다”며 “80년대식 제도 너머 다른 정치 체제를 상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효진 기자

 -학생들은 총학생회가 좀 더 학생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김= 캠퍼스의 민주주의는 한국이라는 국가에서 작동하는 민주주의와 시스템적으로 다르다. 대학의 민주주의는, 가장 작은 단위인 학과 학생회에서부터 단과대 학생회, 총학생회와 기타 위원회가 아래에서부터 토론하고 협의, 합의하며 의견을 수렴하는 직접민주주의다. 훨씬 느리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작은 조직서부터 상향으로 올라가며 전체 의견을 수렴한다. 국가에 하는 의사표현인 투표보다 민주적이다. 그런데 지금은 학생회와 토론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사라지면서, 이 시스템 자체가 원활하게 굴러가지 않는다.

박=90년대 이후부터는 학생들이 학생회 활동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의사결정 정당성이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이젠 이걸 포기해야 하지 않나. 이 제도 너머의 다른 걸 생각해야 하지 않나. 학생과의 소통을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학생회가 왜 아직도 80년대식으로 직접 말하고 참여해야지만 반영하는 제도를 유지하는지 말이다. 어려움이 있다면, 다른 정치 체제로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황=동의한다. 학생회 위기는 근본적으로 공론장이 없어 생기는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대학생들의 공론장이라고 할만한 것은 에브리타임과 각 학교의 온라인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뿐이다. 그런데 그게 건강한 공론장인가. 그런데 또 그것 말고는 학생들이 의견을 낼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자치언론이 없는 학교도 많고. ‘공론장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모 대학 총학생회 회장 후보는 국민청원과 비슷한 제도를 공약으로 내놔 당선됐다더라. 좋은 제도라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방향성에는 공감한다.

김=일종의 무책임 아닌가. 그런 방식으로 돌파하는 건 잘못된 진단이다. 직접민주주의인 학생회시스템은 절차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과거에는 공론장과 조직들이 원활히 굴러가는 배경이 있었는데, 이게 무너진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회가 절차만으로 끌어가다 한계에 부딪히게 됐다. 그렇다면 과거처럼 배경을 복원하거나 절차 자체를 바꾸는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

 -서울대 노동자들이 파업하며 난방을 중단하자 “도서관을 파업 대상 시설에서 제외해 달라”고 한 서울대 총학의 입장이 파문을 일으켰다. 

박=그런데 한 번쯤 생각해볼 게 대학 입학 전까지 노동법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사람이 있나. 총학을 했던 나조차도 임기 내 노동법 한 줄 찾아본 적 없다. 이번 사건은 학생 사회가 80년대를 지났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이다.

신=동의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노동 3권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있는가. 그런 의미에선 어쩌면 일반적 대응일 수 있는데, 서울대라 상징성이 컸다. 학생회 문제가 아니라 중ㆍ고등학교서부터 이런 권리를 가르쳐야 한다. 교육의 문제다.

김=‘약자의 게임’ 경향이 한국 사회에 많아지고 있다. 서로가 자신의 위치를 약자로 설정해 몰아넣고 있다. 동시에 학생들 인식 속에는 총학이 뭘 하는 공간인지 묻는 정체성 질문이 섞여 있다. 댓글에서 일부 서울대생은 학생회를 이익집단으로 인식하며 “학생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 주장하던데, 그건 절대 아니다. 기업처럼 돈(학생회비)을 낸 만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구도 아니고.

 

 -가장 헷갈리는 부분이 정체성이다. 오늘날 총학은 학생 복지 기구인가. 

박=현실적으로 ‘학생들의 편익을 위한 서비스를 하겠다, 복지에 신경 쓰겠다’고 하는 선본이 다수의 선택을 받는다.

김=그렇게 분리하는 것 자체가 오류와 왜곡된 인식을 낳는다. 이건 학생 복지야, 이건 교육권이야, 이건 인권이야 나눠 보지 말아야 한다. 학내에 ‘성소수자센터’를 만들었다고 하면 이건 복지도 되면서 인권 영역이기도 하다. 꼭 구분 짓기보다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의제를 봐야 한다.

황=소수자나 인권 문제, 외부 투쟁이나 의제가 ‘내 삶’과 직결되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게 학생회의 역할이다. 노동자와 연대하는 게 나와 전혀 상관없는 총학만의 정치적 투쟁이 아니라, 이 투쟁이 내 삶과 관련이 있고, 대학 구성원으로서 참여해야 하는 문제라는 걸 알려야 한다.

신=과연 ‘다수결이 민주적인가’를 되짚어봐야 한다. 예컨대 지난해 홍대는 퀴어퍼레이드에 총학생회 이름으로 참여하는 것에 중앙운영위원회가 전원 반대해 무산됐다. 물론 설득하지 못한 내 잘못이다. 봐야 할 지점은 민주적 방식이지만, 주류 가치에 동의받지 못해 오히려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 요즘 총학은 노선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가치를 가져야 해’ 보다는 ‘이런 것을 할 거야’ 위주로 공약이 만들어지고, 정책이 되고, 원칙이 사라진다. 노선이라는 건 결국 토론으로 만들어가는 건데. 단순히 ‘새내기배움터 어떻게 하지’ ‘대동제 어떻게 하지’하는 실무논의만 하게 되고.

 -학생들은 ‘운동권’처럼 뚜렷한 노선에 거부감을 느끼곤 한다. 

김=심각한 문제다. 가장 정치적인 행위를 하면서 ‘우리는 정치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 아닌가.

신=프레임(틀)이다. 영화 ‘1987’ 중 연희 역을 맡은 배우 김태리가 옷을 갖춰 입고 친구에게 “나 운동권 같아 보여?”라 묻는 장면이 나온다. 되묻고 싶다. 그럼 운동권이란 뭘까. 순수한 운동과 비순수한 운동은 뭘까. 결국 사람들은 정치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해 프레임을 씌웠고, 캠퍼스에서 잘 작동하고 있는 거다.

황=특히 지난 두 정부를 지나면서 운동을 해나가는 사람들을 일종의 비(非)국민으로 낙인찍는 일이 많았다. 이를 지켜본 세대는 자신이 비국민으로 분류되지 않도록 반응할 수밖에 없다.

 -20대 투표율은 계속 오르는 추세다. 총학에 대한 무관심과 대조적이다. 

김=학생회는 민주화 운동에 맞춰 설계된 낡은 시스템이다. 학생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는 다양해지고 있는데 그것들을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제도, 절차가 아니다. 이제는 대학에서 더 다양한 요구를 수렴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를 고민해야 한다.

 

황지수 숙명여대 총학생회장은 “학생들의 일상에서부터 ‘정치’가 복원되어야 한다”며 “큰 담론이 아니더라도 캠퍼스에서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간식, 축제 같은 소재에 정치적 메시지를 녹이는 것이 유효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황지수 숙명여대 총학생회장은 “학생들의 일상에서부터 ‘정치’가 복원되어야 한다”며 “큰 담론이 아니더라도 캠퍼스에서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간식, 축제 같은 소재에 정치적 메시지를 녹이는 것이 유효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총학을 폐지하고 위원회 등 새로운 기구로의 재편이 필요하단 건가. 

김=총학생회를 절대적인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없앨 수 있다. 하지만 위원회는 반대한다. 위원회는 대표성이 없다. 지금과 다른 방식이되, 학생들의 대표성을 가진 조직이어야 한다.

신=학생들의 ‘정치적 효능감’이 떨어지는 데 대해선 동의한다. 효능감을 올리기 위해 총학이 복지뿐 아니라 다른 많은 이슈를 챙기는 기구임을 증명하고, 학생들이 이를 믿어줘야 한다. 낡은 체제, 1년 단위 조직이라는 한계가 크다. 그래서 연대가 중요하지 않을까. 요즘 총학들은 문제 제기를 위해 기자회견을 하고 이슈화를 바란다. 그보다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김=학생사회에서 정치성을 복원하는 일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재정 독립 등이 이상적이지만 바로 되기도 어렵다. 예컨대, ‘간식’으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어떤 간식을 먹을지를 가지고 이걸 단순히 복지가 아닌 정치가 될 수 있게 만드는 거다.

황=결국은 학생들의 탈정치화를 극복하는 데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간식의 정치화’ 같은 게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총학은 시험 기간 간식이나 나눠주는 기구”라는 자조 섞인 말도 있지만, 오히려 일상 속 아이템인 간식에 정치적 메시지를 녹여 전달하는 거다 누군가 “총학이 나눠주는 컵라면 등 간식이 채식주의자에게는 부적절하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이를 학생회나 인권 동아리 등이 충분히 정치화할 수 있다. 축제 기간 성차별 표현을 지양하고 주점을 폐지하는 등 성평등 의제를 논의하는 것도, 노동자 문제처럼 일상에서 쉽게 다루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축제의 장에서 거부감 들지 않게 다뤄보는 것도 총학의 몫이다.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첫걸음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언젠가 좋아질 거로 생각한다. 그런데 다 하기엔 임기가 너무 짧다.(웃음)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김수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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