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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로또’가 식탁 위로ㆍ‘따끈한 밥에 이것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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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로또’가 식탁 위로ㆍ‘따끈한 밥에 이것 한 조각’

입력
2019.02.03 10:00
수정
2019.02.0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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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명절 선물’ 참치와 스팸...우리가 30년 이상 사랑 받는 비결 좀 들어볼래?

난 1982년 태어났어.

‘바다의 로또’라 불리는 참치 알지? 공식 명칭은 다랑어인데 우리나라에 다랑어가 처음 소개된 1957년경에는 ‘진치’로 불렸다고 해. 얼마나 맛있었는지 갈치, 삼치처럼 생선 이름 끝에 붙는 ‘치’에 진짜라는 의미의 ‘진’을 붙인 거야. 이후 ‘진’을 순 우리 말 ‘참’으로 바꾸며 진짜 맛있는 생선이라는 의미가 탄생하게 된 거지.

그 참치를 통조림으로 가공해서 만든 게 바로 나야.

이제 좀 감이 오지? ‘동원 참치 캔’ 말이야.

동원참치선물세트. 동원F&B 제공
동원참치선물세트. 동원F&B 제공

◇누적 판매량 62억 캔… 늘어놓으면 지구 13.2바퀴

내가 태어날 당시 우리나라 국민 소득은 1,200~1,300달러에 불과했어. 그 때 내 가격이 한 캔에 1,000원이었으니 꽤 비싼 셈이었지. 동원은 국민 소득 2,000달러 시대가 되면 참치 캔 수요가 늘 것이라 판단하고 고급화 전략을 구사했어. 내 이름은 원래 그냥 ‘동원참치’였는데 이미지를 좀 더 고급스럽게 쇠고기화 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동원참치 살코키 캔’이 됐다고 하네.

1969년 창업 후 원양에서 참치를 잡아 미국이나 일본 등에 수출하는 사업을 운영하던 동원은 내가 탄생할 걸 계기로 종합식품회사로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고 해. 이 말을 들으면 내 어깨가 으쓱해져.

1982년 최초 출시된 동원참치. 동원F&B 제공
1982년 최초 출시된 동원참치. 동원F&B 제공
1988년 원미경을 모델로 한 동원참치 광고. 동원F&B 제공
1988년 원미경을 모델로 한 동원참치 광고. 동원F&B 제공

1990년대부터는 ‘가미참치’라 불리는 야채참치, 고추참치 같은 동생들이 나와.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독자라면 학창시절 도시락 반찬으로 한 번쯤 가져가 본 경험 있지? 또 2000년 이후엔 참치 캔을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편의식품’이 아닌 ‘건강식품’이라는 걸 부각시키는 전략으로 36년째 꾸준히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

내가 얼마나 많이 팔렸냐고?

잘 들어봐. 지금까지 한 해에 약 2.4억 캔 이상이 판매됐고 2014년에는 업계 최초로 총 누적 판매량이 50억 캔을 돌파해. 지금까지 누적 판매량은 62억 캔, 누적 매출은 10조 원이 넘어. 감이 잘 안 온다고? 지금까지 팔린 나를 일렬로 늘어놓으면 지구 13.2바퀴, 높이 쌓으면 에베레스트 높이의 2만8,000배에 달한다니 이제 좀 알겠어?

나를 말할 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선물세트야. 내가 태어나고 2년 뒤인 1984년 추석 명절 때 참치 캔 선물세트가 처음 출시됐어. 이 해 추석에만 30만 세트 이상이 팔리면서 ‘대박’을 쳤다고 해.

이후 명절 선물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동원 참치 선물세트는 2006년 추석에 누적 판매량 1억 세트를 넘어섰고 작년 추석에 2억 세트를 돌파했어. 선물세트를 일렬로 늘어놓으면 10만km로 지구 두 바퀴 반 거리야. 동원 참치 캔 연 매출의 약 3분의 1이 선물세트에서 나온다고 해. 동원에 따르면 올 설에도 내 인기는 여전하다고 하네. 작년 설 대비 10% 이상 판매량이 늘 것으로 기대된다니 또 다시 어깨가 ‘으쓱’.

동원 직원들은 명절 기간에 터미널이나 기차역에 가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네. 귀성객 10명 중 1명은 노란색 동원선물세트 포장을 손에 들고 있다니 말이야. 올 설에도 가족, 친지끼리 나를 주고받으며 덕담을 나눌 생각하니 흐뭇하기만 하네.

◇국민 한 명당 24개씩 먹은 ‘국민 밥 반찬’

‘캔에 들어 있는 햄’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올라?

그래! 방금 당신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 단어! 그게 바로 나야.

내가 한국에서 태어난 건 1987년이야.

내 모태는 미국 대공황 여파가 남아있던 193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미국 호멜(Hormel)사에서 버리기 아까운 기존 햄의 부산물로 만들어진 것. 당시 미국 저소득층에겐 아주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고 해.

이후 2차 세계대전 때 보관과 이동이 편리해 미군 전투식량으로 채택되면서 유럽은 물론 전 세계로 전파됐지. 우리나라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들어왔는데 부유층이나 미군부대와 친분이 있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음식으로 대접받았어. 1987년부터 CJ제일제당이 호멜사와 기술 제휴를 한 뒤 충북 진천에 있는 공장에서 나를 직접 생산하고 있지.

이제 누군지 알겠지?

그래 바로 ‘스팸’이야. 전 국민의 ‘밥 반찬’말이야.

스팸 선물세트. CJ제일제당 제공
스팸 선물세트. CJ제일제당 제공

내가 한국에서 얼마나 인기냐고?

얼마 전 CJ제일제당이 낸 자료를 보면 출시 32년 만에 누적 매출이 4조 원을 넘어섰어. 판매량으로 따지면 약 12억 개(200g 기준). 국민 한 명 당 24개의 스팸을 먹은 셈이라고 하니 대단하지. 매출 추이를 보면 출시 20년인 2006년 연 매출 1,000억 원 돌파 후 다시 10년 후인 2016년에는 3,000억 원, 지난 해에는 4,000억 원을 넘어섰어.

명절 하면 또 스팸 선물세트지. 스팸 브랜드의 연 매출 중 60%를 선물세트가 차지한다고 하니 말 다 했지 뭐. 올 설에도 지난 해 대비 15% 이상 매출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니 이제 내 존재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낌이 와?

사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서구에서 스팸 인기는 시들해졌다고 해. 신선한 고기를 손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 미국인들도 스팸을 저렴한 식료품 취급하지. 쓰레기 이메일을 뭐라고 해? ‘스팸’이라고 하잖아. 이렇게 괄시를 받는 내가 한국에서는 꾸준히 사랑 받는 비결이 궁금하다고?

당신만 궁금한 게 아냐. ‘미국의 정크 푸드가 한국에서는 명절 때마다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는 원인’을 분석하는 외신 기사를 여럿 찾아볼 수 있으니까. 미국 다음으로 스팸을 많이 먹는 나라가 한국인데 미국 인구의 6분의 1밖에 안 되는 한국에서 미국 스팸 소비량의 절반을 소비한다니 흥미로운 현상인 것만은 분명하지.

'따끈한 밥에 스팸 한 조각' 카피를 넣은 스팸 광고. CJ제일제당 제공
'따끈한 밥에 스팸 한 조각' 카피를 넣은 스팸 광고. CJ제일제당 제공

먼저 부대찌개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와. 또 1997년 구제금융 사태 이후 중저가 실용 선물이 인기를 끌면서 스팸과 식용유, 참기름 등으로 구성된 선물세트가 히트를 치면서 내 판매도 탄력을 받았다고 해. 얼마 전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도 판매량이 늘었다는 걸 보니 지갑이 얇아질수록 스팸 판매는 늘어난다는 말이 근거 없는 건 아닌가 봐.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짭조름한 맛이 쌀밥과 김치에 잘 어울린다는 점 아니겠어? 특히 2002년 배우 김원희를 모델로 한 광고에 처음 등장한 ‘따끈한 밥에 스팸 한 조각’이라는 문구는 지금도 이쪽 업계에서는 ‘전설의 카피’로 회자되곤 하지.

자자, 내 자랑이 너무 길었지? 올 설도 잘 보내고 우린 돌아오는 추석 때 또 만나자고.

(*명절 때 큰 인기를 누리는 참치와 스팸을 의인화해서 설정한 기사입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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