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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참변’ 두달 지났지만… 화재ㆍ가스감지기 여전히 안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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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참변’ 두달 지났지만… 화재ㆍ가스감지기 여전히 안 울린다

입력
2019.01.14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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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종로 일대 안전조사 결과 입수] 

 고시원 21곳 중 19곳 작동 안해… 15곳은 방화문 없거나 설치 불량 

지난해 11월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한 고시원에서 경찰 및 소방 관계자들이 감식을 벌이고 있다. 서재훈 기자
지난해 11월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한 고시원에서 경찰 및 소방 관계자들이 감식을 벌이고 있다. 서재훈 기자

지난해 11월 고시원에 살던 7명이 화마에 목숨을 잃은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참변 이후 고시원 등 사회 빈민 주거지역의 화재 안전시설 보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대부분 고시원은 여전히 화재에 매우 취약한 상태로 방치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비상구조차 없는 비좁은 통로에 스프링클러 등 기초적 안전시설 하나 없는 노후 건물에 사는 수 많은 도시빈민들이 화재에 대한 불안감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보는 서울 소방재난본부와 종로소방서가 국일고시원 참변이 벌어진 직후인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 실시한 종로구 일대 고시원 건물 21곳에 대한 화재 안전 특별조사 결과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했다. 조사 결과에는 이들이 예외 없이 화재 예방에 취약하고, 혹여 불이 날 경우 큰 인명피해로 곧바로 이어질 만큼 안전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가장 많이 지적된 것은 화재 및 가스감지기 불량이다. 21곳 중 19곳이 아예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신기가 불량이거나, 각 방에 설치된 화재감지기에 들어간 건전지가 닳은 채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취사시설이 있는 고시원 중 일부는 가스감지기가 울리지 않아 지적을 받은 곳도 있었다. 국일고시원 참변처럼 잠을 자고 있을 때 불이 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방화문과 비상계단 등 피난통로도 유명무실했다. 방화문이 설치돼있지 않거나 불량인 곳이 15곳에 달했다. 이들 대부분은 피난통로로 사용돼야 할 계단 중간에 방범용 철문이 설치돼 있거나, 잡동사니로 길이 가로막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은 5㎡ 크기밖에 안 되는 방에 지내고 있던 이들이 출구에 불이 나는 바람에 대피도 못한 채 희생을 당해야만 했던 국일고시원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이 조사로 드러난 것이다. 종로구 A고시원은 방화문이 아예 없는 데다 비상탈출구가 신발장과 쓰레기통으로 가로막혀 있다는 게 지적됐고, 또 다른 고시원은 일부 층에 방화문이 설치돼 있긴 하지만 크기가 맞지 않아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화재 발생시 대피를 하는 이들의 등대 역할을 해줄 피난유도등도 너무 어두워 제 역할을 못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7곳이나 지적을 받았다.

두 소방기관의 지적 사항은 현장에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13일 방문한 국일고시원 맞은 편 고시원 건물은 비상용 사다리가 비치된 출구가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었다. 고시원으로 연결되는 계단 중간에는 잠금 장치가 있는 자동문이 설치돼 있어 화재로 전기가 끊어질 경우 꼼짝없이 건물 안에 갇힐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또 다른 인근 고시원은 대피 통로가 쓰레기 더미로 막혀 있어,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설상가상 화재경보기는 꺼져 있었다.

화재 초기 진압에 필요한 소방장비도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물 6층에 위치한 B고시원은 간이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으나, 막상 화재 시에는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스프링클러로 물을 끌어올리는 펌프에 균열이 난 탓에 누수가 발생했기 때문. 건물 용도가 근린생활시설과 업무시설로 등록돼 있는 C고시원은 간이스프링클러의 전원이 아예 꺼져 있기까지 했다.

가장 기초적인 화재안전시설인 소화기도 엉망이긴 매한가지다. 제작된 지 10년을 초과한 소화기를 비치해 소방당국이 점검하면서 직접 교체해 준 곳이 9군데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고시원뿐 아니라 취약시설 전반으로 화재 예방 점검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진주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현재는 일부를 제외하면 화재점검을 자체적으로 하거나 용역업체가 대신 하는 방식”이라며 “화재 발생 시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은 소방관이 반기마다 한 번씩 직접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소방당국은 화재안전 특별점검을 3월까지 고시원 전체로 확대해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그래픽=박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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