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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했다’에 시(詩)가... 문학과 만난 K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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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했다’에 시(詩)가... 문학과 만난 K팝

입력
2018.12.26 04:40
수정
2018.12.26 08:3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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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음원 1위 '사랑을 했다'

시인ㆍ소설가 등과 협업하는 K팝

문학으로 이야기 살찌우는 ‘뮤터리처’ 바람

올해 최고 히트곡인 ‘사랑을 했다’를 낸 아이돌그룹 아이콘. 그룹 멤버인 비아이(뒷줄 가운데)는 영화 ‘라라랜드’(2017)를 보고 감명 받아 이별 노래를 쓰려 했다. 그러다 못말 시인의 시 ‘그거면 됐다’를 읽고 노랫말을 시처럼 썼다고 한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올해 최고 히트곡인 ‘사랑을 했다’를 낸 아이돌그룹 아이콘. 그룹 멤버인 비아이(뒷줄 가운데)는 영화 ‘라라랜드’(2017)를 보고 감명 받아 이별 노래를 쓰려 했다. 그러다 못말 시인의 시 ‘그거면 됐다’를 읽고 노랫말을 시처럼 썼다고 한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퀴즈 하나. 올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는 무엇일까. 아이돌그룹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이다. 올해 음원 사이트에서 사용자가 가장 많이 들은 노래다. 스트리밍(재생) 횟수가 1억 번을 넘어섰다. 가온차트가 2017년 12월 31일부터 2018년 12월 22일까지 멜론, 지니뮤직 등 국내 주요 6개 음원 사이트의 음원 소비량을 집계한 결과다.

‘사랑을 했다’의 숨은 인기 비결은 ‘문학’이다. 뮤직(musicㆍ음악)과 리터리처(literatureㆍ문학)를 접목한 ‘뮤터리처’(muterature)라고 부를 수 있겠다.

◇시인 찾은 비아이

‘사랑을 했다’는 ‘21세기 판 서동요’다. 백제 시대 설화처럼 아이들 입에서 입을 통해 퍼진 뒤 윗세대로 전파돼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계기로 중년이 지핀 ‘록밴드 퀸 열풍’이 10~20대로 옮겨 붙은 것과 역방향의 인기 행보였다.

‘사랑을 했다’는 “사랑을 했다~”로 시작하는 포인트 멜로디, 즉 후크로 듣는 이를 단번에 사로잡는다. 노랫말도 따라 부르기 쉽다. 히트곡엔 ‘플러스 알파’가 있기 마련. 주목해야 할 건 가사다. ‘사랑을 했다’의 노랫말은 여느 K팝과 달리 극적 짜임새가 있다. 사랑을 한 편의 연극에 비유해 “우리가 만든 러브 시나리오, 이젠 조명이 꺼지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 조용히 막을 내”린다고 표현했다. 뻔한 듯 하지만 가슴에 남는다.

‘사랑을 했다’의 가사는 시에서 따 왔다. 못말(김요비) 시인의 시 ‘그거면 됐다’를 읽은 아이콘 멤버 비아이가 시인 허락을 받아 시 일부를 인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사엔 시적 리듬이 흐른다.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며 3ㆍ2조 식으로 운율을 맞춘 가사는 비아이가 무심하게 툭툭 내뱉는 목소리에 얹혀 귀에 착착 감긴다. “네 앞에서 난 뿜뿜”(모모랜드 노래 ‘뿜뿜’)처럼 감탄사만 남발한 다른 K팝 보다 ‘사랑을 했다’가 다양한 세대의 사랑을 받은 이유다.

신인 가수 히스는 시를 낭송하듯 읽는 읽는 ‘이야기 음원’을 낸다. 포츈뮤직 제공
신인 가수 히스는 시를 낭송하듯 읽는 읽는 ‘이야기 음원’을 낸다. 포츈뮤직 제공

◇ 전자 음악에 ‘이야기 음원’까지 등장

대중음악이 문학에 러브콜을 보내는 것, 요즘 추세다. 쿵쿵거리는 비트, 말초적인 노랫말에 치여 실종된 ‘이야기’를 되찾으려는 시도다.

K팝 기획사들은 ‘문학 수혈’에 적극적이다. 아이콘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는 시인과 손을 잡았고, 방탄소년단을 기획한 빅히트엔터테인먼트(빅히트)는 등단한 소설가를 영입했다. K팝 기획사가 소설가를 창작팀에 들여 앨범을 만든 건 이례적이다. 방탄소년단은 ‘더 노트’를 앨범마다 수록했다. 멤버 7명의 가상 일기가 실린 얇은 책이다. ‘문학적’인 뮤직비디오와 함께 방탄소년단의 독특한 서사를 만들어냈다. 빅히트는 독일 문호 헤르만 헤세(1877~1962)의 소설 ‘데미안’을 모티프로 방탄소년단 앨범 ‘윙스’를 기획하기도 했다.

신인 가수 히스는 곡을 낼 때마다 ‘이야기 음원’을 따로 낸다. 곡에 맞는 글을 작가에게 받아 낭독한, 일종의 오디오 북이다. 지난 19일 공개한 낭독 음원 ‘인트로-M.D.M’에서 히스는 “오월에 고백했는데 지금은 시월, 어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가 첫 구절인 글을 시 낭송하듯 읽는다. 전자 음악과 ‘이야기 음원’을 함께 내는 시도를 한 건 히스가 처음이다. 그의 소속사인 포츈뮤직 이진영 대표는 “요즘 유행가에 이야기의 갈증을 느끼는 청취자가 적지 않다”며 “이 빈 서정을 문학적 감성으로 채우기 위해 이야기 음원 발매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은 문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음악을 만드는 대표적인 아이돌그룹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방탄소년단은 문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음악을 만드는 대표적인 아이돌그룹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시의 함축적 표현이 노랫말 쓸 때 큰 도움”

아이돌이 책을 안 읽는다는 건 편견이다. 일부 아이돌은 문학을 적극적으로 곡에 활용한다. 방탄소년단 멤버인 RM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를 읽고 “희망이 있는 곳엔 시련이 있다”는 문장에 영감을 받아 ‘바다’란 곡을 만들었다. 하루키가 쓴 문구가 후렴처럼 반복되는 곡이다. “두렵던 사막은 우리의 피 땀 눈물로 채워 바다가 됐어. 그런데 이 행복들 사이에 이 두려움들은 뭘까.” RM이 소설에서 찾아 낸 ‘희망의 이중성’이라는 모티프를 랩으로 바꿔 쓴 부분이다.

갓세븐 멤버인 진영도 책 읽는 아이돌이다. 그는 “데뷔 후 반복되는 일상으로 기계가 되는 것 같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인생의 책으로 꼽았다. 진영은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으로 덜컹거리는 일상을 ‘기억 속의 방지턱’에 비유해 ‘이별’의 노랫말을 썼다. 비아이는 시에 빠져 있다. 그는 “함축적인 표현이 노랫말을 쓸 때 큰 도움이 돼 다양한 시집을 즐겨 읽는다”고 말했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K팝은 휘발되기 쉬운 시각적 이미지로 소비된다”며 “아이돌이 문학을 만나면 문화 주체로서의 기반이 탄탄해질 수 있다”고 의미를 뒀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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