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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몰랐던 홍콩…맛과 문화 아지트, 삼수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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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몰랐던 홍콩…맛과 문화 아지트, 삼수이포

입력
2018.12.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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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이포 페이호 스트리트(Pei Ho Street). 홍콩 센트럴의 세련됨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홍콩관광청 제공
삼수이포 페이호 스트리트(Pei Ho Street). 홍콩 센트럴의 세련됨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홍콩관광청 제공

홍콩을 제 집처럼 오가며 센트럴의 골목 골목을 꿰고 있는 여행자라도 낯설게 느껴지는 곳, 구룡반도 깊숙한 북서쪽에 삼수이포(深水埗ㆍSham Shui Po)가 있다. 삼수이포는 관광객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는 지역이었다. 도심의 화려한 빛은 희미해지고,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빌딩 아래로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펼쳐진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과 시끌벅적한 전통시장 풍경은 친근하면서도 낯설다. 삼수이포는 1950년대에 홍콩으로 망명한 중국 난민을 수용하던 판자촌이었고, 홍콩 최초의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선 이후에는 서민들의 주거지이자 공업단지로 역사를 이어왔다.

자키클럽 크리에티브 아트센터(JCCAC). 홍콩관광청 제공
자키클럽 크리에티브 아트센터(JCCAC). 홍콩관광청 제공
북구룡 법원을 개조한 SCAD 예술학교. 홍콩관광청
북구룡 법원을 개조한 SCAD 예술학교. 홍콩관광청

명품 매장이나 세련된 가게 하나 없는 삼수이포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젊은 예술가들 덕분이다. 버려진 공장을 개ㆍ보수해 아티스트의 거주지로 탈바꿈시킨 ‘자키클럽 크리에이티브 아트센터(JCCACㆍJockey Club Creative Arts Centre)’가 시작이었다. 젊은 디자이너와 예술학도들이 삼수이포를 찾기 시작했고, 낡은 거리에는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예술가들은 삼수이포 자체에서 날 것 그대로의 영감을 얻었다. 보통 사람들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생활양식은 때로 예술보다 흥미롭고 풍요롭다. 왕가위 감독은 바로 이곳에서 ‘일대종사’의 전통 의상 디자이너를 발견했고, ‘영웅본색’의 오우삼 감독은 자신이 태어난 삼수이포의 풍경에서 한없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홍콩 디자인을 세계에 알린 브랜드 G.O.D. 스튜디오 또한 이곳에 있다. 센트럴과는 다른 홍콩의 또 다른 모습을 거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삼수이포에서 JCCAC와 함께 꼭 가야 할 곳을 꼽는다면 고풍스러운 건물에 들어선 예술학교 SCAD(Savanah Colleage of Art & Design)다. SCAD는 미국과 프랑스 등 세계 곳곳에 캠퍼스를 둔 디자인 학교로, 네오클래식 형식의 옛 법원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건물의 역사를 지우지 않기 위해 SCAD는 법정과 감방 등의 공간을 보존하고, 문과 창, 벽의 원형을 그대로 살렸다. 인터넷 홈페이지(visitscadhk.hk)에서 방문 사흘 전까지 캠퍼스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2회, 매월 셋째 토요일에 견학이 가능하다. 전화로 사전 신청하면 예술과 디자인 서적을 방대하게 갖춘 도서관도 둘러볼 수 있다.

인파로 넘치는 페이호 스트리트 마켓. 홍콩관광청 제공
인파로 넘치는 페이호 스트리트 마켓. 홍콩관광청 제공
삼수이포의 길거리 음식점. 홍콩관광청 제공
삼수이포의 길거리 음식점. 홍콩관광청 제공

홍콩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삼수이포 여행에서도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재래시장인 페이 호 스트리트 마켓(Pei Ho Street Market)은 낯선 향기와 색깔이 흘러 넘친다. 골목 모퉁이의 노천식당이나 전통 디저트 ‘띰반’을 파는 가게에서 홍콩식 B급 미식을 즐겨도 좋다. 홍콩 도심에 비해 가격은 놀라울 정도로 저렴하지만, 맛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조촐한 동네 식당에서 출발해 뉴욕까지 진출한 딤섬 가게 ‘팀호완(Tim Ho Wan)’ 본점도 이곳에 있다. 팀호완은 포시즌스호텔의 광둥식 레스토랑 렁킹힌(Lung King Heen)에서 실력을 쌓은 셰프가 14석의 작은 가게로 시작했다. 개점 1년 후 미슐랭가이드에서 별 하나를 받았고 현재는 하와이와 뉴욕에도 매장을 열었다. 삼수이포 본점은 40여 지점 중 오너 셰프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유일한 식당이다. 25개 메뉴 중 새우 딤섬 하가우, 연잎밥, 돼지고기로 속을 채운 차슈바오가 인기 있다. 팀호완의 차슈바오는 전통적인 조리법과 달리 바삭바삭하고 빵 안에 차슈를 넣었다. 달콤한 맛과 짠맛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저렴한 가격에 마음까지 따스해지는 음식도 있다. 바로 ‘두부 푸딩’이다. 1960년대 가난한 사람들은 치즈케이크나 아이스크림 대신 시럽을 뿌린 두부로 일상의 고단함을 풀었다. 중ㆍ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맛이 홍콩 젊은이들 사이에서 다시 인기를 얻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삼수이포의 ‘컹와 빈커브 팩토리(Kung Wo Bean Curb Factory)’는 4대째 운영하는 두부 푸딩 가게다. 60년 전 창업자의 방식 그대로 지금도 맷돌로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든다. 두부 푸딩의 가격은 10홍콩달러, 한국 돈 1,500원에 불과하다. 입 안에서 녹아 내리는 두부는 부드럽고, 생강 시럽은 감미롭다.

삼수이포 밤거리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다이파이동’이다. 다이파이동은 노천식당을 일컫는 광둥어다. 저녁 무렵 상점의 셔터가 닫히면 그 앞에 좌석을 펼쳐놓고 요리를 낸다. 1956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오이만상(Oi Man Sang)’은 홍콩 5대 다이파이동으로 꼽힌다. TV 예능프로그램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서 백종원은 이국적인 분위기에 취한다고 표현했다. 그의 선택은 마늘을 듬뿍 넣은 게볶음과 쇠고기간장볶음이었다. 대략 60~130홍콩달러면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다.

삼수이포의 다이파이동 요리. 홍콩관광청 제공
삼수이포의 다이파이동 요리. 홍콩관광청 제공
가난한 시절을 대표하는 음식 ‘두부 푸딩’이 최근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홍콩관광청 제공
가난한 시절을 대표하는 음식 ‘두부 푸딩’이 최근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홍콩관광청 제공
‘룩람디저트’ 가게의 망고 푸딩. 홍콩관광청 제공
‘룩람디저트’ 가게의 망고 푸딩. 홍콩관광청 제공

열대과일 마니아라면 망고 디저트를 놓칠 수 없다. 30년 전 문을 연 ‘룩람디저트(Luk Lam Dessert)’는 낡고 평범한 가게지만, 홍콩식 망고 디저트로 이름난 곳이다. 망고 주스와 열대과일 포멜로를 끼얹은 망고 푸딩의 새콤달콤한 풍미가 일품이다. 가격은 20홍콩달러 안팎이다.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달콤하게 졸인 팥과 타로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두부 푸딩도 인기가 높다.

삼수이포를 산책하듯 걷다가 ‘셔터 아트 프로젝트’와 마주치면 자동으로 휴대폰 카메라를 켜게 된다. 문 닫은 상점 셔터 위로 젊은 작가들이 그린 벽화가 펼쳐진다. 선명한 색감과 재미있는 그림에 ‘인생사진’은 기본이다. 색다른 감각을 원하는 여행자에게 삼수이포는 이제 겨우 문을 열기 시작한 신세계다.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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