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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가치’있는 일의 함정

입력
2018.12.12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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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비영리단체의 대표로 살아온 지 7년이 된다. 그간 TV나 지면, 포럼 등에 설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참 많은 청년들로부터 이메일을 받는다. 자신도 가치 있는 일을 함께 하고 싶으니 구성원으로 뽑아 달라는 것이다. 그 예쁜 마음들이 고마워 정성껏 답을 주긴 하지만, 한쪽에선 왠지 모를 씁쓸함이 새어 나오곤 했다. 이 기분은 뭘까? 한참을 고민하곤 했다.

작년 이맘때 쯤, 그 씁쓸함의 정체를 알게 된 사건이 있었다. 한 청년이 전화를 걸어왔다. 직접 말씀을 듣고 싶어 3개월을 수소문 했단다. 우리 상담소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며 자신이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했다. 월급을 못 받아도 좋고, 걸레질만 해도 좋다며 ‘채용’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물었다.

“우리 상담소에 대해서 어디서 알게 되었나요? 그리고 얼마나 알고 있나요? 우리가 ‘채용’이 없는 조직이라는 것을 모르는 듯 한데, 너무 아는 게 없이 너무 쉽게 꿈으로 정해버린 면이 있지 않나요?” “예? 채용을 안 하신다고요?” 당황한 채 말을 잇지 못하는 그에게 세 가지를 더 물었다.

첫 번째, 우리 상담소는 대표인 나를 비롯한 18명의 구성원 전원이 본업을 따로 가진 채, 주말과 퇴근 후를 이용해 자원봉사로 청년들을 상담하는, 비상근 자원활동가로 이루어진 조직이며 이 내용은 상당히 많은 미디어에서 소개했음에도 찾아보지 않은 것인지? 그 정도의 기반 정보도 없이 그렇게 간절한 꿈으로 삼아도 되는 건지?

두 번째, 만약 우리 상담소가 ‘채용’을 한다고 가정했다면 근로자가 되겠다는 것이고, 근로의 가장 중요한 권리는 급여를 받는 것인데, 왜 본인이 먼저 ‘한 푼도 못 받아도 좋다’고 말해, 스스로를 착취의 대상화 하는지.

세 번째, 혹시 우리 상담소 말고도 다른 ‘꿈’의 어딘가가 있는지. 세 가지였다.

조심스럽게 그는 말했다. “사실 꿈의 직장이 하나 더 있었는데요... 그곳에 가야할 것 같아요.” 전화를 끊으며 한마디를 얹었다. “제발 거기서는요. 뽑아 달라는 간절함을 월급 못 받아도 좋다는 말로 표현하진 말아요. 당신 하나가 채용되기 위해 그렇게 노동자의 권리를 포기하면, 당신의 동생이나 또래들에게 점점 착취가 정당화 되는 사회를 물려주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가 말한 ‘또 다른 꿈’인 곳.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은 청춘들에게 강연을 들려준 기획사 A에서 최근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났다. 오랜 임금 체불, 그 안에서 버티고 버티던 직원들은 결국 90명 중 60명이 집단 퇴사를 하는 사태. 꽤 오래된 일이어서, 지금 기사가 난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업계에서는 말한다. 석 달이 넘게 급여가 지급되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버텼던 것은 ‘우리는 세상에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믿음 때문인 것을 안다. 물론 해당 기업과, 구성원들은 분명 한국 사회에, 특히 청춘들의 강연 문화에 가치 있는 족적을 남겼다. 그들이 흘린 진정성과 땀을 안다. 하지만 세상의 가치를 일구기 위해, 자신의 가치를 학대하며 노동자의 기본권을 박탈당해도 참아내는 삶. 그리고 그 참아냄이 전승되어 엉망진창의 노동 현장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젊은이들이 빚어내는 또 하나의 가치 붕괴의 현장이 아닐까.

청년 대표들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너무 잦다. 이제는 본 칼럼에서 해당 주제를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을 정도라, 본편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래서 소망한다. 본 칼럼이, 내 간절한 바람이 한 명이라도 많은 취준생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20대여, 제발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치’ 있는 일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일’ 이다. 근로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은 모래사장에 원대한 꿈의 궁전을 세우지 않기를. 손 모아 기도한다.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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