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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경의 무비시크릿]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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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경의 무비시크릿]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입력
2018.12.0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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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를 처음부터 보고 싶었던 건 아니다. 함축적인 영화 제목에 익숙한 탓인지도 모르지만, 안 봐도 내용을 다 알 것 같은 근거없는 자신감에 휩싸이게 하는 제목이었다. 게다가, 이미 지나간 과거 속 남자들과 다시 엮인다는 자체가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볼 때) 정서와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인 동명소설을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썼고 동양인 배우(한국계가 아닌 점은 아쉽다)가 주연을 맡은 점이 호기심을 자극했고 결국 이 영화를 만나게 됐다. 결론은? 소개팅도 기대없이 나갈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처럼, 이 작품과의 만남을 아주 소중히 간직하게 됐다.

주인공 라라진(라나 콘도르)은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다정한 아버지와 함께 사는 소녀다. 세 자매 중 둘째로 어리광을 피울 겨를이 없었고, 언니와 함께 어린 동생을 챙기며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해야 했다. 독립적이고 단단한 반면 방어심이 강한 그는 상처 받기 싫어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라라진은 짝사랑 전문이다. 지금껏 좋아한 남자는 다섯 명. 그들에게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쓰고, 상자 속에 고이 보관해뒀다. 상상으로 점철된 이 러브레터는 당사자에게 직접 보낼 것이 아니기에 더 감성적이고 적극적(?)인 표현이 동원됐으리란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편지들(봉투에 주소까지 써있던 게 화근이었다)이 5명의 남자들에게 배달되고 만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지금 그가 좋아하는 남자는 조쉬(이스라엘 브로우사드)다. 어린 시절 절친이자, 친언니와 교제했던 남자다. 라라진은 언니가 상처 받을게 두려워 조쉬를 향한 마음을 어떻게든 숨기고자 한다. 그래서 과거의 짝사랑남인 피터(노아 센티네오)와 계약연애를 시작한다. 라라진의 갑작스런 러브레터에 당황한 피터에게도 사정은 있다. 여자친구가 결별 선언 후 다른 남자친구를 만난 것에 대한 일종의 복수심이 발동한 것. 질투심을 자극해 재결합을 해보려는 앙큼한 계획을 짠 그는 라라진과 계약서를 쓰고 가짜 연애에 돌입한다.

두 사람은 보란 듯 손을 잡고 캠퍼스를 활보하고, 교내에는 금방 소문이 난다. 존재감 없던 라라진은 학교에서 유명한 킹카 피터와 만나면서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고 자신감을 얻는다. 진짜 연애처럼 보이기 위해 피터는 매일 라라진과 동생 키티를 픽업하고, 자연스레 가족들과도 서로 교류하게 된다.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라라진은 사랑에 서투르지만 피터와의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조쉬를 향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시작한 관계였는데 어느새 두 사람 사이의 정과 추억들이 쌓인다. 피터 역시 옛 여자친구의 질투심을 유발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원하는 목적들을 달성했는데도, 이상하게 이 관계를 멈출 수가 없다.

만약 이들이 사랑이란 감정을 안고 시작했다면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부딪히고 서운함이 쌓였을지 모르지만, 가짜 연애이기 때문에 이해의 폭이 다소 넓다. 또한 애써 잘 보일 필요가 없기에 둘만 있는 자리에선 누구보다 솔직하고 꾸밈 없이 존재할 수 있다. 비밀을 공유한 사이라는 점도 결속력에 큰 몫을 했다.

노아 센티네오 인스타그램 제공
노아 센티네오 인스타그램 제공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너의 감정에 충실하라'는 것. 시작이야 어떻든 감정을 깨달았다면 숨기거나 에둘러 말하지 말고 당당히 표현해야 한다. 본질을 숨긴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이 알아서 마음을 읽어주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깊이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작은 오해가 이별로 이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굉장히 단순한 이야기 구조지만, 특별히 이 영화가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건 순수하고 귀여운 캐릭터들의 조합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향수를 자극하면서 메마른 감성에 촉촉한 단비를 뿌려준다. 특히 이 작품을 통해 피터 역의 노아에게 '입덕'한 이들이 많다. 꽃미남 조쉬에 비해 처음엔 크게 부각되지 않으나 후반부를 향해갈수록 조쉬는 흐릿해지고 피터의 매력만 크게 남는다. 그는 또 다른 영화 '시에라 연애 대작전'에서도 활약하는데, 로코 남주인공으로 딱인 인물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 깜찍한 영화를 보면서 사랑했던 이들을 떠올려보는 재미도 있다. 마음 속에 담아둔, 부치지 못했던 편지는 누구나 한 장씩은 있지 않은가. 나이를 먹을수록, 상처 입기 싫고 시간낭비하고 싶지 않아 사랑을 기피하는 성향이 짙어지는 만큼 한번쯤 말랑말랑한 감수성을 되살려보기에 좋은 영화다. 단, 10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지라 유치한 걸 극도로 기피하는 이들에겐 추천하지 않겠다.

지난달 27일 '버라이어티' 등의 매체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속편 개발 논의가 진행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넷플릭스 측은 확정된 것이 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국내 팬들 사이에서도 속편에 대한 기대감이 솟아나고 있다. 라라진의 상큼하고 순수한 미소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지 기다려봐야겠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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