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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우려" 유럽 지열발전소 3곳 가보니 1곳만 성공적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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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우려" 유럽 지열발전소 3곳 가보니 1곳만 성공적 가동

입력
2018.11.23 04:40
수정
2018.11.23 15:1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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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바젤, 물 주입 직후 지진으로 사업 중단

독일 란다우, 작은 지진 54차례에 폐쇄 운동

프랑스 슐츠, 성공 사례지만 주민들 “안심은 못해”

[저작권 한국일보]스위스 바젤의 옛 지열발전 건설현장. 지난 2006년 물주입 도중 규모 3.4의 지진이 일어나 작업이 중단됐고 3년 뒤 영구 폐쇄 결정이 내려졌지만 이후에도 규모 1~2의 미소지진이 계속 발생해 철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바젤=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스위스 바젤의 옛 지열발전 건설현장. 지난 2006년 물주입 도중 규모 3.4의 지진이 일어나 작업이 중단됐고 3년 뒤 영구 폐쇄 결정이 내려졌지만 이후에도 규모 1~2의 미소지진이 계속 발생해 철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바젤=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지난해 11월 15일 경북 포항에서 일어난 규모 5.4 지진이 당시 인근에 건설 중이던 지열발전소와 연관이 있는지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소 연관성 분석을 위한 정부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둘 사이 연관성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가 국제학술지에 실리면서 지열발전소를 향한 의심이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다.

지열발전소는 원자력발전소나 화력발전소 등 기존 전력의 대체에너지로 각광받으며 세계 각지에서 앞다퉈 개발에 나섰지만 이 과정에서 인공지진을 유발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다.

지열발전소 건설 도중 지진이 발생한 스위스 바젤 등 유럽의 지열발전소 현장 3곳을 다녀왔다. 이로 인해 일부는 문을 닫았고, 일부는 보강작업을 거쳐 가동을 하고 있다. 지진 규모나 방식 등이 국내 사례와 일부 달라 포항 지진을 지열발전의 결과로 단정짓기는 무리지만, 국내 지열발전 연구의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 2006년 스위스 바젤시에서 지열발전소를 건설할 당시 전경. 바젤시 제공.
지난 2006년 스위스 바젤시에서 지열발전소를 건설할 당시 전경. 바젤시 제공.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는 ‘발전소=님비시설’이라는 인식이 깊은 한국식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도시의 외곽이 아닌 아파트와 학교, 성당 등의 건물이 밀집한 주거지역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서다. 지열발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바젤 환경관리공단이 부지 선정 때 별다른 검토 없이 공단 주차장에 첫 삽을 떴기 때문이다.

당시 스위스 정부는 2034년까지 모든 원자력발전소를 폐기하기로 하고 대체 발전소로 지열발전을 추진했다. 지열발전소는 지열이 많은 지하 약 4㎞깊이의 땅속으로 구멍 두 곳(주입정ㆍ생산정)을 뚫고 주입정으로 물을 넣어 땅속 지열에 가열돼 생긴 수증기를 생산정으로 빼낸 뒤 터빈을 돌려 전력을 생산한다. 바젤은 독일 란다우, 프랑스 슐츠와 함께 비교적 젊은 단층대인 라인지구대에 속해 있다. 단층 생성 시기가 짧은 덕에 스위스 내 다른 지역보다 깊이에 따른 땅속 온도가 높았고, 지열발전의 최적지로 낙점됐다.

원전을 대신해 야심 차게 추진됐던 바젤 지열발전 프로젝트는 2006년 12월 8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규모 3.4의 지진으로 운명이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주입정으로 물을 넣은 지 6일만에 일어난 지진은 지열발전 외에는 설명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바젤시는 모든 작업을 중지시켰고, 경찰은 15분만에 시행사인 지오파워(Geopower)사의 모든 서류를 압수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스위스 바젤의 옛 지열발전 건설현장. 지난 2006년 물주입 도중 규모 3.4의 지진이 일어나 작업이 중단됐고 3년 뒤 영구 폐쇄 결정이 내려졌지만 이후에도 규모 1~2의 미소지진이 계속 발생해 철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바젤=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스위스 바젤의 옛 지열발전 건설현장. 지난 2006년 물주입 도중 규모 3.4의 지진이 일어나 작업이 중단됐고 3년 뒤 영구 폐쇄 결정이 내려졌지만 이후에도 규모 1~2의 미소지진이 계속 발생해 철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바젤=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12년 전 일이지만 바젤환경관리공단 인근 주민들은 지진이 일어난 당시를 생생히 기억했다.

주민 피터 캠버씨는 “지진이 일어난 날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한참 일을 하던 중이었는데 창문과 책상이 흔들려 깜짝 놀랐다”며 “바람이 불어 흔들릴 때와는 전혀 달랐다”고 말했다.

행정기관에 접수된 피해 건수만 2,700건. 대부분 지진 후 건물 외벽에 금이 갔다는 신고였다.

스위스 정부는 스위스는 물론이고 프랑스와 독일에서 손꼽히는 관련 전문가 12명을 불렀고, 조사에 들어갔다. 3년이 지난 2009년 조사단은 지진의 원인이 지열발전이고, 바젤 환경관리공단 주차장에 뚫은 발전소 건설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결과를 내놨다. 지오파워사는 지진피해 보상비로 900만 스위스프랑(한화 약 110억원)을 내놨다.

바젤 지열발전은 규모 3.4의 지진이 일어난 지 12년이 지났지만 지하 4㎞ 깊이에 박힌 주입공은 폐쇄되지 않았다. 구멍을 막기만 하면 끝날 것으로 예상됐던 규모 1~2의 미소지진이 작업 중단 이후에도 계속됐다. 스위스 정부와 바젤시는 또 다시 혼란에 빠졌다.

바젤시 관계자는 “모든 게 잘 끝났다고 생각한 그 이후 지진이 일어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며 “전문가들을 다시 불렀고 이제 어떻게 하면 (지열발전소를) 아무런 문제없이 폐쇄할 수 있을까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젤시에 따르면 지열발전 주입공에는 현재 1,100톤의 물이 남아 있다. 지난해부터는 바젤 환경관리공단이 직접 매달 1, 2번 소량으로 물을 빼내며 압력을 관리하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독일 란다우 지열발전소. 지난 2007년 가동에 들어갔지만 2년 뒤인 2009년 8월 규모 2.7의 지진이 발생한 뒤 압력을 줄이면서 전기생산량이 3분의 1로 줄었고, 이후 지반 침하 등이 계속 발생하면서 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시민단체가 결성됐다. 란다우=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독일 란다우 지열발전소. 지난 2007년 가동에 들어갔지만 2년 뒤인 2009년 8월 규모 2.7의 지진이 발생한 뒤 압력을 줄이면서 전기생산량이 3분의 1로 줄었고, 이후 지반 침하 등이 계속 발생하면서 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시민단체가 결성됐다. 란다우=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인구 5만 명의 독일 남서부 작은 도시 란다우시의 지열발전소는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 현장에서 라인강을 따라 북쪽으로 약 200㎞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란다우 지열발전소도 란다우시청에서 불과 2㎞ 거리의 시내 주거지역에 있다.

이달 초 찾은 란다우 지열발전소는 작동이 멈춘 상태였다. 란다우시 등에 따르면 2009년 규모 2.7의 지진이 일어난 후 압력을 줄이면서 전기 공급량은 3분의 1로 줄었고 이후 2014년 주입정 관에 균열이 생겨 압력이 새 나가면서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란다우 지열발전소는 독일의 첫 상업용 지열발전소로, 6,000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3㎿급 규모로 건설됐다. 란다우시는 산하 자회사에 에너지 관련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발전소 건설에 뛰어 들었다. 2004년 첫 삽을 떠 2007년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같은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이산화탄소 3,000만톤을 내뿜는 것과 비교해 획기적이고 친환경적인 발전소로 호평 받았다.

하지만 란다우 지열발전소는 2009년 8월 15일 오후 2시 규모 2.7의 지진이 일어난 이후 시민들의 큰 걱정거리가 됐다. 당시 경찰과 소방 등에는 200건의 신고 전화가 접수됐다. 지진의 원인으로 처음 인근 채석장이 지목됐지만, 주민들은 지열발전소를 의심했다. 불신을 갖게 된 주민들은 반대시민협회를 결성했다.

란다우 지열발전의 반대시민협회를 이끄는 베르너 뮐러씨는 “지열발전으로 일어나는 지진은 지하 10㎞깊이의 자연지진과 달리 3~4㎞ 깊이의 얕은 곳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규모가 작아도 실제 체감하는 지진의 크기는 자연지진보다 훨씬 크다”며 “지열발전에 무관심했던 시민들도 더 큰 지진이 올 수 있다는 두려움에 발전소를 그대로 놔둬선 안 된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반대협회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독일 란다우 지열발전소에 반대하는 시민들로 구성된 반대시민협회(Burgerinitiative Geothermie Landau-Sudpfalz e.V.)회장 베르너 뮐러씨가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란다우 지열발전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란다우(독일)=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독일 란다우 지열발전소에 반대하는 시민들로 구성된 반대시민협회(Burgerinitiative Geothermie Landau-Sudpfalz e.V.)회장 베르너 뮐러씨가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란다우 지열발전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란다우(독일)=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란다우시 등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7년 말까지 란다우에서는 규모 1~2의 미소지진이 54차례나 일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또 란다우에서 5㎞ 떨어진 인스하임시의 지열발전소는 발전소가 들어선 후 127차례의 지진이 일어났다

독일 정부는 수 차례 조사를 가졌지만 명확하게 지진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대신 더 이상 큰 규모의 지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계속 가동하기로 했다. 하지만 2014년 주입공 관이 파손되면서 발전소는 중단과 재가동을 위한 시운전을 반복하는 등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란다우시는 모니터링에 들어갔고 지진 발생 내용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실시간 공개했다. 또 지진발생에 대비해 5,000만유로(한화 약 644억원)의 보험에 가입했다. 란다우시는 발전소에 투자한 시 지분 90%를 발전회사에 모두 넘긴 상태다.

베르너 뮐러씨는 “란다우시와 정부가 발전소의 모든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하지만 시 산하 에너지회사가 지열발전을 추진했고 실제 자료 공개 등의 협조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며 “지열발전소가 완전히 문 닫을 때까지 인스하임 등 지열발전이 있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싸워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프랑스 슐츠 지열발전소 전경. 유럽 각국의 지질 전문가들이 참여해 연구 프로젝트 방식으로 건설됐다. 인공지진을 막기 위해 다른 지열발전소보다 2개 더 많은 4개의 시추공(왼쪽 붉은색)을 뚫었다. 슐츠=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프랑스 슐츠 지열발전소 전경. 유럽 각국의 지질 전문가들이 참여해 연구 프로젝트 방식으로 건설됐다. 인공지진을 막기 위해 다른 지열발전소보다 2개 더 많은 4개의 시추공(왼쪽 붉은색)을 뚫었다. 슐츠=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프랑스 슐츠지열발전소는 독일 란다우에서 남서쪽으로 35㎞ 떨어진 슐츠수포레라는 작은 마을에 있다. 란다우 지열발전소의 절반 규모인 1.5㎿급으로 건설된 이 발전소는 독일 란다우나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 현장과 달리 주택가에서 한참 떨어진 한적한 곳에 터를 잡고 있었다. 발전소 주변은 끝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넓은 옥수수 밭이었다.

슐츠 지열발전소는 2001년부터 추진돼 2008년 시운전을 거친 뒤 가동에 들어갔다. 슐츠 발전소 역시 초기 미소지진이 감지됐다. 이에 발전소는 여러 차례 보강 작업에 들어갔다. 주입정과 생산정 각 1개씩 외에도 2개의 구멍을 추가로 더 냈다. 그 결과 운영사는 목표로 한 지열 온도를 얻었고 미소지진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지열발전 가동에 안심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미첼 브로글리씨는 “지열발전소와 가장 가까운 마을에 살고 있지만 이곳에 발전소 전기를 쓰는 가구는 없다”며 “약간의 지진이 있었고 일부 주민들이 항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슐츠 지열발전소는 성공한 지열발전 사례로 부각되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지열발전프로젝트는 충분한 검증과 연구를 거쳐 이뤄지기보다는 실험적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광희 부산대 지질학과 교수는 “세계 여러 곳에서 지열발전소가 추진되고 있지만 지진을 유발하지 않는 기술을 갖춘 곳은 없다”며 “지열발전소를 지을 때 안정적으로 전기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스위스 바젤 등 중단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지열발전소 입지 선정부터 철저한 연구와 조사가 충분히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바젤(스위스)ㆍ란다우(독일)ㆍ슐츠(프랑스)=글ㆍ사진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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