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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설계 김중업이 지은 ‘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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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설계 김중업이 지은 ‘집’은?

입력
2018.10.29 04:40
수정
2018.10.2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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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이 1960년대 설계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이기남씨 주택’. 1층 벽돌집 위에 2층 콘크리트로 마감해 다양한 재료를 실험적으로 사용했던 김중업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볼 수 있다. 김태동 사진작가
김중업이 1960년대 설계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이기남씨 주택’. 1층 벽돌집 위에 2층 콘크리트로 마감해 다양한 재료를 실험적으로 사용했던 김중업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볼 수 있다. 김태동 사진작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택에 사는 이문호씨에게 계단은 놀이터였다. 계단 난간은 미끄럼틀이었고, 계단 아래 작은 공간은 숨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의 놀이터였던 계단은 그의 초등학생 딸 차지가 됐다. 그는 “집에서도 특히 형제자매들과 놀았던 ‘계단’이 가장 추억이 많이 깃든 곳”이라며 “추억이 많은 이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산다는 걸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씨의 집은 그의 모친 이기남(84)씨가 건축가 김중업(1922~1988)에 설계를 의뢰해 1968년 완공됐다. 주한네덜란드 대사관저로 잠시 사용됐다가, 이씨 가족이 이사와 지금까지 산다. 이씨의 추억이 깃든 보물 같은 공간이 27일 김중업 타계 30주년을 맞아 작품 답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대중에 처음 공개됐다.

김중업은 김수근(1931~1986)과 함께 한국 현대 건축의 문을 연 1세대 건축가다. 한때 한국 최고층 건물이었던 서울 종로구 삼일빌딩,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의 세계 평화의 문,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대사관 등을 설계했다.

한남동 초입에 위치한 이기남씨 집은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256.2㎡ 크기다. 밖에서 보면 벽돌로 지은 1층보다 콘크리트로 마감된 2층이 더 넓게 얹어져 있다. 그 옆으로 김중업의 삼각전타일(삼각형의 검은색 벽돌)이 촘촘히 박힌 굴뚝도 남아 있다.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면 김중업 특유의 콘크리트 차양이 남향의 2층 테라스에 위치한다. 벽면에 붙지 않고, 철골 3개로 떠받친 차양은 한옥의 처마를 연상케 한다. 최호진 지음건축도시연구소장은 “철골만으로 무거운 콘크리트를 지탱하게 한 디자인은 1960년대에는 흔치 않았다”라며 “디자인 부분뿐 아니라 차양을 통해 빛을 통과시키고, 그림자를 만드는 등 기능적인 부분도 빼놓지 않았는데, 이는 집은 거주하는 사람의 보호막이어야 한다는 김중업의 철학이 녹아 있는 것”이라고 했다.

건물의 뒤편에서 보면 김중업 특유의 2층 테라스에 설치된 콘크리트 차양과 삼각전타일을 사용한 굴뚝이 단번에 눈에 들어 온다. 김태동 사진작가
건물의 뒤편에서 보면 김중업 특유의 2층 테라스에 설치된 콘크리트 차양과 삼각전타일을 사용한 굴뚝이 단번에 눈에 들어 온다. 김태동 사진작가

내부는 사용자의 편의에 맞춰 일부 변형됐다. 원래는 거실 한 면을 통창으로 만들고, 내부에 삼각전타일을 붙인 벽난로 등이 있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나무와 기와지붕으로 이뤄진 한옥이 남아 있었던 주택 문화를 감안하면 파격적인 시도였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있는, 말뚝처럼 박힌 계단은 원형 그대로 보존됐다. 목수들이 대패로 나무를 다듬어 디딤판의 모양과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계단, 창문 등에 장식을 가미한 김중업의 특성은 이후 1980년대 건축물에도 많이 나타난다.

부동산 광풍의 시대를 지나면서 김중업이 설계했던 많은 건물들도 사라졌다. 서울 시내 그가 설계했던 개인 주택 20여곳 중 절반이 개발 논리에 따라 헐렸다. 이기남씨가 당시 김중업에게 의뢰했던 3채 중 2채도 이미 빌라로 바뀌거나, 원형의 일부만 남아있다. 이문호씨는 “집이 크고 관리하기 힘들어 새로 지을 생각이었다”라며 “하지만 우연히 김중업건축박물관을 방문하면서 작품으로서 보존해야 하는 의무감을 느껴 계획을 바꿨다”고 했다. 그는 “건립 초기에는 용산구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 등도 한눈에 볼 수 있었지만, 집 주변 풍경이 달라지면서 일조량이 줄고, 사생활 침해 등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이 많다”고 덧붙였다.

김중업의 특징이 잘 묻어나는 이기남씨 주택 내부에 설치된 계단. 목수들의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디딤판은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김태동 사진작가
김중업의 특징이 잘 묻어나는 이기남씨 주택 내부에 설치된 계단. 목수들의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디딤판은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김태동 사진작가
김중업이 1967년 설계한 서울 성북동의 한국씨티은행 뱅크하우스. 삼각지붕이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뻗어 있다. 김태동 사진작가
김중업이 1967년 설계한 서울 성북동의 한국씨티은행 뱅크하우스. 삼각지붕이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뻗어 있다. 김태동 사진작가

김중업이 설계한 개인 주택 중 한 곳인 성북동 한국씨티은행의 뱅크하우스도 이날 함께 공개됐다. 개인 주택치고는 규모(연면적 627㎡)가 큰 편으로, 성북동 꼭대기에 위치한다. 1층은 돌 벽, 2층은 나무를 덧대어 표현한 석조건물 위로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뻗듯 설치된 삼각지붕이 김중업이 설계한 건물임을 단번에 알아보게 한다. 입구 위에 장식처럼 올린 콘크리트 차양도 어김없이 있다. 실내로 들어서면 1, 2층 모두 큰 창을 이용해 서울 남산과 성곽길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조망을 살리기 위해 서향으로 창문을 냈다. 지붕 끝에 매달린 쇠사슬은 빗물 등의 배수구와 연결돼 빗물이 한번에 떨어지지 않고 천천히 떨어지게 한다. 건축가의 배려가 깃든 장식이다. 최 소장은 “김중업이 건축물에서 보여줬던 조형성과 다양한 재료들의 중첩 등 여러 특징이 개인 주택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며 “쇠사슬 장식과 창문 등 사는 이들을 배려한 부분도 많다”고 말했다.

김중업의 건축에서 많이 보여지는 콘크리트 차양. 차양에 달린 쇠사슬은 빗물 등 배수구와 연결돼 물길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김태동 사진작가
김중업의 건축에서 많이 보여지는 콘크리트 차양. 차양에 달린 쇠사슬은 빗물 등 배수구와 연결돼 물길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김태동 사진작가

두 주택 모두 김중업의 초기 주택 작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1960년대 김중업이 설계한 개인 주택 중 서울 시내에 남은 곳은 7곳에 불과하다. 김중업은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 당시 정부의 도시계획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일간지에 실은 후 프랑스로 강제 출국됐다. 최 소장은 “추방으로 1970년대 그가 설계한 건축을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 건축사에서 가장 애석한 일 중 하나”라며 “그가 남긴 건축을 잘 보존해 그가 한국 건축에 미친 영향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건물을 보존하는 법적 장치로 등록문화재 지정이 있다. 하지만 개인자산일 경우 보상금 책정, 원형 보존 등의 문제로 문화재로 등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날 답사에 참여한 심영섭 인하대 교수는 “한국 건축의 새 장을 열었던 건축가를 기억하고, 그의 작품을 공공에 알려 후대에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계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중업 타계 30주기를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대규모 특별전 ‘김중업 다이얼로그’를 12월 16일까지 연다. 전시를 기획한 정다영 학예연구사는 “지은 지 대부분 30년이 된 김중업의 건축은 도시재생, 문화유산의 보존과 제도 등 건축을 둘러싼 여러 논의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한국 현대 건축의 거장 김중업.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한국 현대 건축의 거장 김중업.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프랑스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 건축 사무소에서 3년여간 일한 뒤 1956년 귀국 후 이듬해 서울에서 연 ‘김중업건축작품전’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김중업. 김중업건축박물관 제공
프랑스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 건축 사무소에서 3년여간 일한 뒤 1956년 귀국 후 이듬해 서울에서 연 ‘김중업건축작품전’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김중업. 김중업건축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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