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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해진 미국, 다급해진 북한… 뒤바뀐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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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해진 미국, 다급해진 북한… 뒤바뀐 입장

입력
2018.10.10 18:35
수정
2018.10.10 20:2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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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전용 헬기로 미 워싱턴 백악관을 나서기에 앞서 기자들 앞에서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전용 헬기로 미 워싱턴 백악관을 나서기에 앞서 기자들 앞에서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그동안 북한은 핵을 버릴 마음이 추호도 없으면서 늘 그런 척하며 협상을 질질 끌다 선물을 챙기고 나면 판을 엎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올 들어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북미 간 입장이 역전된 형국이다. 시간이 미국 편을 들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빠른 비핵화’를 강조하며 북한을 다그치던 협상 초기보다 한결 느긋한 모습이다. ‘바른(검증된) 비핵화’로 방점이 옮겨가면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초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2021년 1월 종료) 내 비핵화’를 거론하며 전향적 자세를 보였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시한을 설정하지 않겠다”며 짐짓 여유를 부리는 생경한 장면이 연출되기에 이르렀다.

그간 올 봄 시작된 북미 협상 과정을 되짚어 봐도 번번이 선제 조치는 북한 몫이었다. 미국은 ‘핵 시설ㆍ물질ㆍ무기 목록을 북한이 완전히 신고해야 상응하는 대북 안전보장 조치가 제공될 수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선 자기들의 핵 역량을 고스란히 노출하는 일괄 핵 신고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판을 깨기엔 북한도 너무 부담이 크다.

갈수록 조급해지는 쪽은 핵을 매물로 내놓은 북한이라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올 4월 노동당 회의 때 ‘핵ㆍ경제 건설 병진 노선’에서 ‘경제 건설 총력 집중’으로 전략노선을 전환한 뒤 생색을 냈어야 할 정권 수립 기념일(9월 9일)과 노동당 창건 기념일(10월 10일)을 빈손으로 흘려버린 김 위원장에게 사실상 마지노선은 노선 변경 1주년인 내년 4월이다.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외전략연구실장은 “시간 압박은 압축적 경제 성장을 이뤄야 하는 북한이 미국보다 더 크다”며 “미국은 비핵화 협상의 틀을 깨지 않으면서도 대북 제재라는 상황과 선(先)비핵화라는 정책적 입장의 지속적 유지를 통해 중간선거 국면을 관리해 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의 네 번째 방북 때 북한은 북미 정상의 재회가 중간선거 전에 성사됐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진다. 선거 결과에 따른 미 행정부 대북 정책 변화가 걱정되기도 했겠지만 하루 바삐 톱다운(하향) 식 ‘빅딜’이 이뤄져 자신들의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반대급부가 주어졌으면 하는 조바심이 더 컸으리라는 분석이다.

그래서 이번 풍계리 핵실험장 사찰 허용을 비롯해 핵심 핵 역량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며 국제사회 검증을 받는 ‘거점 폐기형 자발적 비핵화’는 최대한 비핵화 단계를 잘게 쪼개 보상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의 ‘살라미 전술’이기도 하지만, 서로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일괄 신고를 우회해 비핵화 속도를 높이려는 고육책으로도 볼 수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현재 영변이라는 북핵의 심장부뿐 아니라 핵탄두ㆍ핵물질ㆍICBM 폐기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됐다”며 “첫 북미 정상회담 때 내줬어야 할 종전선언을 안 주고 버티며 문턱을 높여 망외 소득을 얻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북한이라는 카드를 국내 정치에 여러 번 활용하겠다는 뜻의 트럼프식 살라미 전술을 시사하는 듯하다”고 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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