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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반죽이 좋은 꼬마

입력
2019.05.01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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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한 지인이 아이의 학예회 영상을 보여 준 적이 있다. 무대에 나와 각자의 서툰 솜씨를 펼치는 아이들과 그 어떤 무대에도 박수와 함성으로 답해주는 어른들이 있는 따뜻한 장면이었다. 무대 위 꼬마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었다. 사람들 앞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용해 보이는 숫기 없는 아이도 있었고, 신나게 자기 맡은 바를 하다 너무 흥에 겨웠던 나머지 실수를 하고서도 이내 생글생글 웃으며 더 큰 박수를 이끌어내는 아이도 있었다.

언제 어디에서나 유들유들하고 천연덕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보통은 깜짝 놀라거나 당황스러워할만한 상황에서도 부끄러워하거나 화내는 일 없이 잘 대응하는 것을 보고 ‘변죽이 좋다’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뻔뻔스럽거나 비위가 좋아 주어진 상황에 잘 적응하는 성미를 가리키는 말은 ‘반죽’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나 놀림에도 부끄러움을 타거나 놀라지 않는 위와 같은 상황에서는 ‘반죽이 좋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살면서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도 실수를 웃음으로 넘기는 ‘반죽이 좋은’ 꼬마는 커서 더 씩씩한 어른이 될 것이다.

보통 ‘반죽이 좋다’를 써야 할 자리에 많이 쓰는 ‘변죽’은 ‘그릇이나 세간, 과녁 따위의 가장자리’를 가리키는 말로, ‘변죽을 울리다/치다’라는 관용구로 많이 쓰인다. “그렇게 변죽만 울리지 말고 빨리 묻는 말에 대답해.”와 같이 바로 집어 말하지 않고 둘러서 말을 한다는 의미이다. ‘변죽을 치면 복판이 운다’는 속담도 있다. “변죽을 치면 복판이 운다고, 엄마가 입만 열면 아빠는 바로 알아듣는다니까. 역시 30년 된 부부야.” 같이 직접 말하지 않고 조금만 암시를 주어도 눈치를 채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이유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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