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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낯선 형태의 말

입력
2018.12.28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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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와서 먹어. 라면이 (붇겠어, 불겠어).”에서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은? ‘붇겠어’다. 여기 들어갈 낱말의 기본형이 ‘붇다’이기 때문. 다만 ‘붇-’ 뒤에 모음이 올 경우에는 받침의 ‘ㄷ’이 ‘ㄹ’로 바뀐다. ‘라면이 불으니/불었다’에서처럼. 이렇게 활용하는 말로는 ‘걷다, 듣다, 묻다(問)’ 등이 있다.

이때 사람들이 ‘걷겠어, 듣겠어, 묻겠어’를 선뜻 받아들이면서도 ‘붇겠어’는 낯설어한다는 게 흥미롭다. 아마 ‘붇고, 붇겠다’ 등의 형태로 쓸 일이 ‘걷고, 걷겠다’ 등에 비해 드물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사람들이 ‘불겠어’를 자연스러워한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아예 이 낱말의 기본형을 ‘붇다’가 아닌 ‘불다’로 생각한다는 표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고, 불어서, 불으니’의 규칙적 활용은 ‘붇고, 불어서, 불으니’의 불규칙 활용보다 간명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붇다’를 기억하는 게 부담스러워질 수밖에.

“병든 잎이 (누레졌다. 누래졌다).”에서 맞는 말은? ‘누렇다’에 ‘-어지다‘가 결합한 말이니 ‘누레졌다’가 맞다. 그런데 ‘노랗다’에서 파생한 ‘노래지다’에 끌려 ‘누래지다’로 쓰는 사람이 많다. ‘누레지다’라는 형태가 낯선데다, ‘노래지다’와 ‘누래지다’를 하나의 짝으로 기억하는 게 편리하기 때문이리라. ‘뻘게지다’ 대신 ‘뻘개지다’를, ‘퍼레지다’ 대신 ‘퍼래지다’를 많이 쓰는 것도 같은 이유다.

“어제는 흐린 날씨에 미세먼지가 뒤섞여 하늘빛이 (뿌옜다, 뿌옇었다).”에서 맞는 말은? ‘뿌옜다’다. 그런데 과거의 사실임에도 ‘뿌옇다’를 쓰기도 하고, 과거임을 의식해 ‘뿌옇었다’를 쓰기도 한다. ‘뿌옜다’가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눈에서 멀어진 말은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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